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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Jan 18. 2023

제과점에서

롤케익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아련하고도 흐릿하게 떠오르는 것은 틀림없는, 어떤 낭만적인 왜곡일거다. 기억의 좁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세피아톤이 칠해지고  위로 나즈막한 말소리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성기게 내려앉은 것이,  때의 모든 것이었을리는 없다. 그다지  곡해를 교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긴 하지만서도.



그런 기억의 색과  어울리는 맛이 있다면 단연코 '제과' 것이다-'' 좋고 '과자' 좋지만, '제과'라고 한껏 높여 불러본다. 왜냐하면 '제과'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빵은 지금보다는 낯선 존재였다. 일단 집에서 엄마가 직접 차려주는 항목이 아니라는 데에서 어린이의 마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건 적법한 끼니를 위한 음식이 아니었다. 간식이었고, 특식이었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

그런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일반적일 때라 빵은, 밀가루는 이중적인 취급을 받았다. 그것은 이국적인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고 동시에 쓸쓸함과 허접함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잘사는 친척이 고소한 버터냄새가 진동하는, 영국 국기가 그려진 에쁜 틴캔의 과자를 가져오기도 했고 동시에 '빵으로 식사를 떼우'는 것은 불쌍한 일이기도 했다. 어느쪽이든 어린이한테는 신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어릴  살던 동네의  길가 코너에는 커다란 제과점이 있었다- 컸을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기억 속에서는 커다랬다. 우리는 주로 곰보빵, 단팥빵, 콘브레드, 카스테라 이런 것들을 골랐다. 곰보빵은  위에 소보로를 딱지 떼듯 떼먹다가 잔소리를 들었고, 단팥빵은 나보다는 엄마를 위한 것이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콘브레드는 너무 뻑뻑해 와구와구 먹다보면 목이  막히기도 했지만, 그때는 차고  우유를 꿀꺽 크게 들이키면 노란빛 빵조각들이 꼬순맛을 풀어내며 우유를 타고 뱃속을 누볐다. 카스테라도 말도 못하게 좋아했다. 진한 계란맛이 듬뿍 담긴 카스테라는 녹진한 단맛까지 나서,  덩어리가 뚝뚝 떨어져나갈 때까지 우유에 담갔다 숟갈로 떠먹는게 제일 좋았다. 이때에도 카스테라 껍질을 살살 떼다 먹는  물론이었다.


가끔 크고 무거운 옥수수빵을 골랐다. 옥수수빵은 미묘한 데가 있었는데, 내가  빵을 좋아했냐면 아닌  같다. 나는 그빵이 축축해서 싫었다.  젖은 느낌이,  가라앉은 느낌이 시무룩해서 싫었다.  빵만 촌스러운 은박지 접시를 타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간혹  빵을 사게되면, 꽃잎같은 모양으로 구워진 조각을 떼어내 하나씩 차지하고는 베어물었다. 그러면  안에 옥수수들이  후두둑 사정없이 떨어져서 나를 신경질나게 했다.


아, 그 당시 제과점이라면 소시지빵을 빼놓은 순 없겠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소시지빵은 질색하기 때문에 생략한다. 소시지나 케첩의 얄팍한 맛이 섬세한 밀가루 반죽을 사정없이 침범하는 그 조합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리장. 계산대 근처의 유리장에는, 그러니까 굳이 두꺼운 유리로 된 장에 한 번 더 넣어둘 정도니까,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고 그말인즉슨 더 비싼 빵들이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역시 꽃은 케익이었다. 흰 크림을 정교하게 두른 1호 3호 케익들은 설탕으로 만든 단단한 분홍꽃과 초록잎으로 치장하고 주인처럼 유리장에 앉아 있었다. 그런 케익들은 삽모양의 희고 옆면이 울퉁불퉁한 플라스틱 케이크칼로 잘라내면 대개 비슷한 모양이었다. 연노랑색의 케익 시트지 사이에 흰 크림이 한 층 혹은 두 층 쌓여있고 알록달록한 과일 조각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과일은 무조건 통조림 과일이어야 했다. 절인 파인애플 절인 복숭아 그리고 절인 체리. 따로 '후르츠 칵테일'을 사먹는 일이 별로 없었던지라, 그 직설적인 설탕맛조차 케익이 주는 황홀함의 일부분이었다. 동화 같은 케익을 열면 그 안에서는 보물 찾기가 벌어졌다. 때로는 아직 잘라내지 않은 케익 조각 옆면의 과일을 파먹어서 소소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미끌거리는 크림 한 입, 달콤한 과일 한 조각, 마른 시트지 한 조각을 번갈아 입에 넣다보면 금색 케익 받침 위로는 흰 플라스틱 심지가 꼿꼿하게 드러나며 축제의 끝을 알렸다. 그 심지는 볼때마다 '생일빵'을 한다고 누구 얼굴을 세게 케익에 처박았다가 그 심지에 눈이 찔려서...로 시작하는 괴담이 떠올라 정신이 호다닥 들었다.



그런데 어여쁜 공주님 같은 케익보다도 만나기 어려운 녀석이 있었는데 그건 롤케익이었다. 롤케익은 내 마음속에서 유리장 밖 세상과 유리장 안 세상의 매개자 정도되었다. 가격이 그 정도였다. 흰 원형 케익과 기다란 롤케익은 사실 임무가 달랐다. 원형 케익은 부모의 면을 세워주었고 기다란 롤케익은 손님의 면을 세워주었다. 그래서 롤케익을 만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거나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롤케익을 사는 부모님을 따라가 그게 도화지로 만든 반듯한 상자에 담기는 것이야 종종 보았지만, 그 롤케익이 내 생일상에 오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색에 별 예쁘지도 않은 롤케익에도 늘 슬쩍 시선이 갔다. 롤케익의 얇은 껍질 안으로는 시트지가 돌돌 말아져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는 찐득한 잼과 함께 건포도가 박혀있었다. 건포도! 건포도는 어른의 맛이었다. 거무스름하고 쪼글거리는, 바퀴벌레를 연상케 하는 모양새에 건포도를 환영하는 어린이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그 정석의 롤케익을 지나면, 정말 어린이의 마음을 빼앗는 롤케익도 있었다. 롤 안쪽으로 흰크림으로 빈공간을 채우고는 색색깔의 사각형이 보석처럼 박혀있었다-마치 김밥의 속재료를 넣듯이 말이다. 그건 무지개떡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마구 설레게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그 와중에 떡보다 더 유해한 케익이 그런 알록달록한 색깔이라니! 완벽한 환상이었다. 시시한 어른이 된 지금이야 그 알록달록한 사각형이 그저 색소를 넣었을 뿐 롤케익 겉과 똑같은 시트지인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때는 꼭 그 사각형이 색마다 다른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롤케익 한조각을 받아들면, 사각형을 하나씩 따로 맛보았다. 딸기맛 분홍색, 초코맛 갈색, 그렇게. 엄마는 인공 색소는 건강에 안좋다며 그런 롤케익을 내가 먹는 걸 내켜하지 않았으므로 그 맛은 한층 더 대단했다.



동네 제과점은 장사를 접었다. 큰 길 안쪽으로 브랜드 제과점이 생기고 나서 한 두 해가 지난 이후였다. 아쉽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된 이름을 멋드러지게 뽐내는 브랜드 제과점은 깨끗하고 환하고 이전에 못봤던 빵도 많이 팔았다. 유리장 안에는 분홍꽃 초록잎을 단 흰 크림 케이크말고도 더 세련된 용모의 케이크가 진열되었다. 그 제과점이 집에서 더 가까웠고 나는 브랜드 제과점이 우리 동네에도 생겨서 좋았다. '매일매일'이라는 의미의 이름이, 프랑스인이 보면 조금 웃기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동네 제과점에서 팔던 빵은 거진 브랜드 제과점에서도 팔았으니까. 그래도 지하철역을 지나다가 동네 빵집이 눈에 띄면 슬쩍 눈길이 간다. 옹기종기 빵들이 모여앉아 있는 그 어딘가에, 소보로를 떼어먹던, 카스테라를 우유에 적시던, 롤케익을 다시 둘둘 풀어내던 어린 날의 내가 어른거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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