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에서 '이타주의'로
"너 이제 차석이야, 축하해! 좋겠네!?"
'차석'은 사전적 정의로 수석 다음 자리, 해당 부서나 업무에서 두 번째의 위치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팀의 차석이 된다는 것.
1. 팀장 부재 시 권한 대행
2. 팀장과 팀원들의 가교 역할 수행
3. 내 업무는 '정'의 역할, 그 외 모든 일에는 '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 확보
=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
10~14명의 팀으로 구성된 영업본부 영업지원팀 차석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한 기간입니다.
첫 1년간은 무게 때문에 정신 못 차렸고, 이후 1년 3개월은 회사 생활 약 8년간의 기간 동안 '가장 성숙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단계별로 순서대로 밟아야 탈이 없죠?
아이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듯, 글자를 배우고 단어를 익히고 책을 보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한 계단 한 계단씩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 걸음마 떼고 이제 걷고 있는데 달려야 하고, 글자 배웠는데 책 읽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규 부서 영업팀 막내에서 영업지원팀 차석으로 '퀀텀점프'를 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영업 성장 속도에 맞춰 지원 역할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원 부서를 세팅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인원들이 반, 신규 충원이 반이었지만 지원 부서는 팀장을 제외한 전원이 '사원'이었습니다. 그 역시 진급을 앞두긴 했지만 '사원'이었고요.. 네, 바로 제 얘기입니다.
아이템에 대한 공부, 매뉴얼 및 전산 제작 참여, 영업 브로슈어 제작, 보고 자료 작성, 기준 정립 및 영업 심사 등.
팀의 차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차석의 임무를 한 가지도 수행하지 못합니다. 제 앞가림하기에도 버거워했죠.
사고 치고 수습하고, 사고 치고 수습하고의 연속.
말 그대로 '이것이 카오스인가'를 생각했고, 결국 팀장에게 한 마디 하게 됩니다.
"팀장님, 진급 전까지만 좀 봐주세요..!"
'회사에 대리가 많아야 잘 된다'
이런 얘기 들어보셨나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이제 뭔가 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열정이 넘치는 시기가 대리 진급 후 1~2년 차 일 때입니다.
저 역시 사고 치고 깨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심리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조금 단단해지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차석 같지 않았던 차석 시절이 딱 1년이 지날 즈음 그제야 팀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내 것 하기도 벅찬 시기 → 내 것만 하는 시기 → 내 것은 좀 하는 시기 → 팀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저 친구는 왜 A만 하면 되는데 왜 B도 하고 있지?'
'저 친구는 업무 속도가 빠르구나'
'저 친구는 전화 대응하는데 잡아먹는 시간이 너무 많구나' 등
이때부터 후배 동생들과 '대화'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말을 듣는다는 것, 조언을 해준다는 것.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저마다의 생각과 상황이 다르기에 똑같은 말을 해줄 수도 없었고,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딱 한 가지의 약속을 스스로 했습니다.
'적어도 하루 한 번, 이 친구들과 대화해보기'
날이 갈수록 투자한 시간 대비 업무 처리 속도는 빨라졌고, 그 덕에 약속을 계속 지킬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근무시간에 중간중간 티타임을 가지면서 20~30분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자리 비운다고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팀장의 신임은 더 높아졌고, 후배 동생들에게도 '없는 선배, 도움 안 되는 선배'에서 '들어주는 선배'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동생들의 업무를 알게 되었고 '부'의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부당한 요청'에 싸워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일보다 동생들의 일을 도와서 처리했을 때 더욱더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팀에 너무 오래 있었나 봅니다. 대표이사 지시로 신규 사업부가 만들어지면서 아주 급하게 인사발령이 나게 됩니다.
'감사' 느낌의 신규 부서. 그렇기에 '사원'이 없는 부서.
막내에서 차석으로, 차석에서 다시 한번 막내로 돌아가는 상황을 맛보게 됩니다.
다시 하러 갑니다..! 그리고 소위 '싸움닭'으로 변신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차석의 역할을 한다는 것.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존감을 굉장히 드높여 줍니다.
처음에는 그 무게가 감당하기 버거울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어느 순간 무게를 감당하고 있고 심지어 들고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게가 더해지기도, 쉬었다 가기도 하지만 그만큼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저도 못할 줄 알았습니다. '내 것도 못하는데 누가 누굴 챙겨'라는 생각에 피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 말 맞더라고요.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리에서 다 처음 해 본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거니까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