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끝까지 버텨본 적 있는가』 中
많은 사람들, 아니 세상 사람들 전부가 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공'이라는 단어.
사전적 의미로는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목표하는 바를 이룸으로써 우리는 '성공했다'라고 말하고, 그러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사람마다 목표가 다르며 그 목표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기에 성공을 평가한다는 자체가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붙여 말한다.
그리고 그 평가의 기준은 대게 '부'와 관련되어 있다.
'부자'는 곧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고, '성공 = 부자'의 등식이 통용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수저계급론'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 일부 사람들은 수저계급론을 운명으로 표현하며, 불공평한 현실을 욕하지만 이내 인정하고 바꾸려는 노력 없이 살아가고 있다.
"저 사람은 금수저니깐. 나는 흙수저니깐." 이런 식의 이유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공은 분명히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하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목표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내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누구든지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것, 귀농을 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 생김새가 각자 다르듯, 목표도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즉각 이뤄낼 수 있는 것을 '목표'라고 부르진 않는다.
지금의 내가 미래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향'을 우리는 보통 목표라고 말한다.
이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려면 돈을 벌 수 있는 지식, 종잣돈을 불릴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아이와 끊임없는 교류가 필요하다.
귀농을 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 역시 귀농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지식을 쌓아야 하는 것이고, 지식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쌓을 수 있다.
지인 중 한 명이 회사생활로 승승장구를 하던 중 큰 병을 앓고 1년 이상 병원에 누워있었다. 겉으로는 승승장구하고 있어 보였지만, 속은 큰 스트레스와 피로감 등으로 가득 차 병이 생긴 것이었다.
다행히도 치료를 잘 마쳤으나, 치료 중 그는 회사생활을 접고 귀농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의 결심은 단호했고 귀농 준비에 전념을 다했다.
1년 이상을 준비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어려움과 불편함이 그와 그의 가족들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가족들과 버티고 버텼다.
약 4년 정도 흐른 지금 그는 주변 지인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그리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성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이처럼 성공은 금수저만의 전유물도, 부자들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꾸준하게 잘 버텨온 자에게 주어지는 '보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