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에서 초파리가 피어나듯이
무탈한 하루, 돌연 슬픔에 붙잡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명처럼 슬픈 일 없이 슬픔이 탄생했다. 바나나에서 초파리가 태어나듯이.
그럴 때 그 슬픔은 누구의 것인가.
슬픈 일을 겪지 않은 나는 슬픔의 소유를 주장한 적 없으나 슬픔은 첫 숨을 토해내자마자 내게로 와 구멍 난 마음에 엉겨버린다. 구멍만큼 가벼워야 구멍인 것 같은데 내 마음은 구멍만큼 무거워진다.
그럴 때 그 슬픔은 기체인가 고체인가.
창밖에는 얼룩소 모양의 구름이 떠있다. 눈물을 찍어낸 클리넥스의 무늬처럼.
꼭 쥐고 있었으나 미처 응고되지 못한 감정이 지혈되지 못한 자리엔 웅덩이가 생긴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이 장기를 하나 잃어버린 기분이 든다. 종종 웃기도 했던, 아무쪼록 괜찮은 날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