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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E Jan 15. 2023

내 자신이 역겨워지지 않도록

드라마 <엘피스> 리뷰

오지 않는 나중을 위해, 지금 진실에 직격하는 드라마. 이 작품은 일본 사회의 언론과 정치의 결탁관계를 다루는 드라마이다. 작품의 배경은 한 방송국으로, 신입 PD가 누명을 쓴 사형수의 사연을 알게 되며, 스캔들로 인해 좌천된 아나운서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좇아나가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이다. 이들이 이 사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데, 그것이 흥미롭다. 단순한 정의감이 이들의 동기는 아니다. 두 사람이 보이는 심리와 행동의 입체성을 관찰하며 작품을 감상하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더불어 이 작품의 제작기는 이 작품의 서사를 완성시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이나믹하다. “이 드라마는 여러 실제 사건에서 착상을 얻은 픽션입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굴곡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PD는 사노 아유미다. 그녀는 본래 일본의 메이저 방송국인 TBS 소속 PD였으나, TBS에서는 언론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간사이 테레비는 이 작품이 사회에 필요한 작품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렇게 사노 아유미 PD는 간사이 테레비로 이직하여 <엘피스>를 완성하였고, 이는 후지 테레비에 편성을 받아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 과정에는 무려 6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내용도 연출도 좋아 흡인력이 좋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쉬운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일단 주조연급의 인물 하나가 불쾌한 대사를 너무 많이 친다. 그 또한 권력의 횡포에 보도국에서 좌천된 인물로, 두 사람과 함께 프로그램을 꾸리는 중년 남성 PD이다. 그는 회식 씬이나 여성인 주인공 아사카와 에나와 붙는 씬에서 성희롱적 대사를 너무 많이 하는데, 이 또한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게다가 주연들이 보도인으로서는 좋은 선배라고 감싸는 것도 짜증났다… 일드를 사랑하는 일은 참 힘들다^^ 두 번째로 아쉬운 건 핸드 헬드가 너무 많다는 것. 이 또한 사회파 드라마로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선택이긴 하지만, 핸드 헬드가 과하게 사용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취사 선택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아쉬운 건 이 정도고, 나는 이 작품을 2022의 드라마로 꼽을 정도로 재밌게 봤다. <엘피스>가 웨이브에 업로드 되는 목요일을 기다렸을 정도. 제일 좋았던 건, 이 작품이 그래서 무엇이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단정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엘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다양한 재앙이 튀어나온 것으로 알려진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희망 혹은 재앙’의 징후를 말한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옳아보이는 일도 미래에 보면 그른 일이 될 수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작가인 와타나베 아야가 말하듯, 무엇이 좋고 나쁜지, 무엇이 희망이고 재앙인지는 모두 자신(수령인)의 판단에 달려있다. 물론 지켜야 할 선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걸 배제하고 하는 말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이 작품에서 꽤나 인상적이게 봤던 장면은 초반에 매너리즘에 빠진 아나운서 에나가 종종 견딜 수 없는 상황에 헛구역질을 하던 순간이다. 결국 이 작품을 보고 느낀 바를 거칠게 응축시키다면, 이 작품은 내 자신이 역겨워지지 않도록 현재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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