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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Feb 06. 2023

아무튼, 명상

명상 100일 차의 단상

명상을 시작한 지 오늘로 100일 차가 됐다. 보통날일 뿐이지만 곰도 사람이 된다는 ‘백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의 삶이 평온해졌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가치 있는 삶』 을 쓴 마리 루티는 불안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뉴에이지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현대사회의 이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는 것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닌데 “불안에 맞서 규칙적인 일상이라는 요새를 구축해 자신의 삶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정돈된 삶을 살지 모르겠으나 동시에 약간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 무사안일한 일상에도 조바심이 나는 기묘한 마음도,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무질서해지는 일상도 무죄다. 평온과 정돈을 강박적으로 좇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최근 명상이 대중화되면서 ‘리추얼’ 용어가 많이 쓰이는데, 그 패셔너블한 단어 대신 ‘수행’이 통용되길 바란다는 한 명상 전문가의 글을 읽었다. ‘명상’이 가볍게 여겨질 것을 우려하는 전문가의 입장을 고려하면 수긍이 간다. 자의로 시작했음에도 강제성 없이 오래 못할 것을 알기에 스토리로 명상 날짜를 기록하며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기 때문. 수행인데 예쁘게 올리려는 건 보여주기 식 아닌가 vs. 이왕이면 예쁘면 좋고 리추얼은 원래 형식이지, 하는 식이다.


자기 검열적 의문이 시소를 탄 결과 ‘수행’이든 ‘리추얼’이든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이면 그걸로 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오노 요코의 말에 슬쩍 기대어.




덧붙여 명상에 대한 적당한 비유를 들었다. 명상 이전이 ‘세탁기 속 빨래’라면 명상 이후에는 세탁기 밖에서 돌아가는 ‘빨래를 바라보게 된다’는. 즉 평소의 나는 주로 빨래라는 뜻이다. 빨래는 세탁기를 벗어나기 위해 코끼리 앱을 이용하는데, ‘환희지’ 명상 안내자를 좋아한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톤에 꾸밈없는 어투가 듣기에 거부감이 없다.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묻는 친구들에게 주뼛거리며 명상 사실을 알렸던 날 “수면에 명상이 그렇게 좋다더라 “는 주제의 이야기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알고 보니 불면으로 고통받는 인구가 상당하더라는 것. 수면 클리닉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혹 세탁기 비유에 솔깃하셨거나 불면으로 고생해 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하루 중 언제든 명상을 권해드린다. 눈이 빨개지도록 피곤해도 낮잠을 못 자는 편이라 극도로 예민해지곤 했는데 이 앱을 사용하고부터는 10분씩 깔끔하게 쪽잠을 자는 진귀한 경험도 했다.




시간은 언제든 상관없지만 내 경우 새벽 다섯 시 반쯤 일어나 30분 정도 한다. 내내 하는 것은 아니고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자리에 앉아 앱을 열고 오늘 마음이 끌리는 명상 안내를 선택해 10분 정도 듣는다. 좋았던 안내는 다음 날 반복해 듣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 무선노트(노트의 종류는 무관하다)에 오늘 든 잡념과 반성을 간단히 메모하고 (어쩐지 좀 쑥스럽지만) 긍정 확언도 적는다. 새로운 행동을 습관화하려면 최소 21일이 걸린다고 해서 3주 정도는 꼭 시간을 지키는 편이었는데, 피곤하면 혼자 있는 점심시간에 할 때도 있다. 새벽에 명상한다고 일어나 앉아서 잠든 적도, 물론 있다.


혹자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 세계의 부자들을 거론하며 성공을 위한 습관으로 명상을 꼽는다. 잘은 모르지만 성공한 사람이 그것을 했을 뿐 명상을 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명상도 비슷하다. 좋음을 ‘얻으려’ 한다기보다는 나쁨을 ‘멀리하려’하는 소극적 행위에 가깝다.


시작이 어렵지만 일단 사랑에 빠지고 나면 사랑을 멈추기가 되려 힘들다. 그리하여 지금은 한낱 수행빨래일 뿐이나 언젠가 어엿한 수행자가 되겠다는 큰 꿈을, 여기에 작게 적어본다. 명상으로 특별해진 보통날을 자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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