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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Jun 17. 2024

신은 실수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에이미 엘리스 넛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 표지도 제목도 예쁘다. 원제는 Becoming Nicole. 소년으로 태어난 와이엇이 소녀인 니콜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큐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그 중심에는 가족의 신뢰와 사랑이 있었다. 쉽지 않은 소재, 책의 두께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담담하고 아름다운 서술에 좋은 글의 힘을 실감했다. 언론인 겸 작가 에이미 엘리스 넛이 썼다.


선천적 성역할. 가족의 지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여성성 혹은 남성성은 학습보다 유전이라는 것. 그리고 가족의 신뢰와 지지가 있다면 영원한 절망이란 없다는 것. 와이엇은 아들 쌍둥이 중 하나로 태어났지만 염색체의 부조화로 여성 정체성을 갖고 자라난다. “내 고추는 언제 떨어져요?”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시간만 흐르면 정말 와이엇이 여자가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고 책은 적고 있다.


7,8세 남매를 키우고 있다. 성별이 다른 두 아이를 기르며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것인지 내심 궁금했다. 옷 하나를 사도 여아 옷은 핑크, 남아 옷은 푸른 계열인 것이 일반적이니까.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취향을 알기도 전에 성 역할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합리적 의심은 남매가 커갈수록 잦아들었고, 점차 칼 융이 말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심상처럼 여자다움, 남자다움이 존재한다고 믿게 됐다. 이 책으로 믿음은 확신이 됐고. 엄밀히 말해 와이엇은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게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와이엇은 여자아이였다. 여자애들이 으레 그러듯 예뻐지길 바라고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길 원하며 언젠가 남자와 결혼하길 꿈꾸는 여자아이.” p.111


의학계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젠더 정체성장애’로 분류하지만, 막상 장애로 다루지 않으며 보험사에서도 성별확정수술을 미용목적으로 분류한다. LGBT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 이들의 41퍼센트는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는 일반인의 25배에 해당한다고.


견고한 사회적 벽 앞에서도 와이엇이 니콜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한 데는 가족의 역할이 컸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원더》에서는 안면 기형 장애를 안고 있는 어기가 어머니의 헌신과 가족의 지지로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라난다. 하반신 마비로 성장이 멈춘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은 어머니의 열렬한 정서적, 물질적 지원으로 물랑루주의 핵심 인물이 되기도 하고. 이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공통점은 가족의 사랑과 지지다.


특히 마음을 울린 부분은 와이엇 아버지 웨인의 태도였다. 니콜(와이엇)이 페이스북에 ‘나는 영원히 혼자일 것’이라고 쓴 일기에 그가 남긴 댓글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여느 ‘딸’을 대하는 흔한 아버지일 뿐인데도.


“예쁜 우리 딸, 아빠가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너는 아름답고, 놀라우리만치 똑똑하고, 나이에 비해 강인하고, 유쾌한 사람이야. 언젠가는 아빠를 떠나 누군가의 곁으로 가게 되겠지. 아빠가 ‘언젠가’라고 말한 건 네가 다 커서 아빠를 떠나는 모습을 볼 준비가 아직 안 됐기 때문이란다.” p.342


6월은 성소수자 인권의 달인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다. 매년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토론토, 브라질 상파울루 등 세계 대도시에서 퀴어 축제가 열린다.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다양성이 평화롭게 인정되고 공존하는 세상을 희망한다. 우리는 다르기에 아름답다. 레이디가가 노래 가사처럼, 신은 실수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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