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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01. 2024

끼니를 굶더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아침 운동 이야기)

입춘이 지나고 설도 지났으니 마음에는 이미 봄은 왔다. 오늘도 숨을 쉬고 있으면 가야 하는 곳은 헬스장 나들이다. 시골에 있는 나의 체육관은 일 년 내내 운동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일요일도 상관없고 늦은 시간도 문제없다. 문이 잠겨있으면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면 되지만 일 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문이 닫혀있을 때가 없다. 늘 회원들이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달랑 만원으로 즐기는 체육관, 어디에 이런 체육관이 있을 수 있을까? 엊그제가 구정이었으니 체육관이 잠겨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다. 


몇몇 회원들이 아침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많은 회원들이 운동을 하고 간 흔적이 입구에 놓인 출입명부에 가득하다. 가볍게 명절인사를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언제나 가느다란 음악이 흐르던 체육관이 오늘은 조용하다. 가끔은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더러는 감미로운 발라드가 나오며 어느 때는 흘러간 팝송도 등장하는데 아직은 입을 닫고 있다.


체육관은 연초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수능이 끝나면 또 한 철을 맞이한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인원이 줄어들고 쌓이는 것은 주인이 없는 듯 있는 운동화뿐이다. 새롭게 마음을 잡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헐렁해지고 그예 운동을 포기한다. 어디 체육관뿐이던가, 새로운 분야의 입문이 쉬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국영수가 젊음의 필요조건이었다면 늙음엔 예체능인데, 이 분야에 적응은 그리 녹녹지 않다.

 

울퉁불퉁한 근육에 질리고,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에 당황스럽다. 쓱쓱 그려대는 붓질이 예사롭지 않은데 나의 붓질은 어설프기만 하다. 며칠을 발버둥 쳐 보지만 어림도 없음에 기가 죽는다. 더 해야 할까 말까를 수없이 망설이다 그예 포기하고 만다. 어떻게 이 난관을 이어갈 수 있을까? 섣부른 연주를 어떻게 이겨내고, 우락부락한 근육을 어떻게 붙여내야 한단 말인가? 그럴듯한 수채화는 한없이 어려워 보인다. 어떻게 버티며 해야 할까는 모든 사람이 갖는 고민이고 숙제거리다.


어려운 난관을 어떻게 버티어 냈을까? 수강료가 문제가 아니었고,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으며 오러지 나와의 약속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헬스장 출입이 그러했고, 색소폰 동호회가 그러했다. 서툰 화실 출입은 너무나 어려웠다. 젊은이 틈에 끼여 머릿결이 희끗한 늙은이가 선을 긋고 있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었다. 동해안 일주를 나선 자전거길, 중간에 돌아올 수 없었다. 하프마라톤을 출발했는데 그냥 돌아올 수는 더 없었다. 나와의 약속이 있었고 출발점엔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 보기 좋게 붙어 올라오리라는 근육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은 버티어 낸 것이 은퇴 후의 삶이 된 것이었다. 


서둘러 근육운동을 마치고 러닝머신으로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프마라톤을 했던 기억을 되살려 버티어 낸다. 하프도 무난했었지만 고희의 청춘은 5km를 뛰는 것도 쉽지 않다. 하프코스를 벗어나 10km만 달렸으나 무릎이 골을 부려 5km로 줄여야 했다. 왜 이리 5km가 먼 거리인지 알 수가 없다. 한참을 뛰어도 2km밖에 뛰지 못했고, 땀을 한참 흘렸어도 4km도 뛰지 못했다.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하나둘을 세어보기도 한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의 홀가분함을 기다리며 무거운 발을 들어 올린다. 


열심히 팔을 앞뒤로 휘젓는다. 4km가 넘어가면서 땀이 흘러내린다. 상의가 흠뻑 젖었고 얼굴엔 땀이 범벅이 되며 숨이 차다. 아직은 멈출 나이가 아니기에 달려야 한다. 아직 버티어 내야 한다며 견디어 본다. 언제까지 이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창문 앞에 보이는 죽은 듯하던 단풍나무도 봄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새 푸름이 흘러내리는 나무줄기다. 쉼 없이 겨울을 버틴 결과이리라. 먼 하늘엔 하얀 구름도 버티어야 볼 수 있다. 유유희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나의 삶을 생각해 본다. 어기적거리며 뛰고 있는 고희의 청춘을 어떻게 바라볼까?


허리가 구부정해 걷는 모습도 어설픈 친구를 생각하면 멈출 수 없다. 아직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달려야 한다. 한참의 인내 끝에 뛰고 난 몸은 힘이 들지만 마음만을 흐뭇하다. 오늘도 열심히 버티며 완주하고 말았다. 언제까지 이 거리를 고집해야 할까? 아직은 근육이 살아 있고, 거친 숨도 비티여 낼 수 있다. 근육이 쇠잔해질까 들어 올려야 하고, 가뿐 숨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뛰어야 한다. 


사람들이 가끔은 나이 아닌 연세를 묻는다. 조금 망설이다 보면, 60대 아니냐는 말에 미소를 짓는다. 운동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위로의 말인지는 알지만, 듣기 좋은 소리임엔 틀림없다. 서서히 푸름이 돋아나려는 계절이 돌아왔다. 운동하기가 너무 좋은 계절이 오는 것이다. 겨울 동안 끊임없이 체육관을 드나들었고, 동절기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철저한 동계훈련만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쉬이 버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찾아오는 봄철, 이젠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동절기에 강화훈련을 열심히 했으니 창고에서 쉬고 있던 자전거도 무난할 것이고, 가파른 산에 오르는 것도 문제는 없으리라. 살아 있으면 해야 하는 운동, 밥은 먹지 않아도 해야 하는 운동이다. 하루라도 더 건강하려면 늙고 젊음에 상관없고, 춥고 더움에도 구분이 없다. 운동만이 늙어가는 청춘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한 끼를 굶더라도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 운동은 시와 때도 없고 늙음과 젊음에도 구분이 없으며 살아 있으면 해야 하는 평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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