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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Feb 20. 2024

골짜기에 봄을 심었다.

(봄맞이 행사)

햇살이 가득 내린 골짜기에 언제 눈이 왔느냐 묻는다. 흔적조차 녹아든 대지는 벌써 봄이 와 있었다. 골짜기의 혹독한 겨울이 그냥 둘리 없는 대지를 놓아준 것이다. 잔디를 비집고 잡초는 벌써 고개를 내밀었고, 겨울이 언제였느냐 한다. 자연의 신비함에 넋을 놓는 사이 나뭇가지엔 물방울이 가득이다. 밤새 언 겨울이 녹아 대롱대롱 열려있는 봄이 찬란한 아침이었다.


서서히 찾아올 봄을 준비해야 했다. 오늘은 기어이 작은 텃밭 손질을 해야 한다. 봄비가 오기 전에 손을 봐야 기름진 텃밭이 될 듯해서다. 미리 준비한 퇴비를 텃밭에 뿌려야 했다. 비록 열 평 내외의 텃밭엔 일 년의 행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상추가 그렇고 토마토가 그러하며 쑥갓이 그리워지는 텃밭이다. 텃밭에 싱싱한 시금치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달큼함을 전해주는 시금치가 봄을 설레게 한다. 봄을 준비하러 나선 문 앞, 벌써 이웃이 왔다 갔나 보다. 대문 옆에 놓인 비닐봉지에 하얀 뿌리가 싱싱한 냉이가 가득이다. 늘 시골에서 만나는 인심이다.

꽃잔디는 벌써 봄을 준비했다.

어디서 이런 냉이를 맛볼 수 있을까? 봄철에 만나는 냉이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겨울을 버티기 위해 모은 당분이 가득하고, 깊게 뻗은 줄기가 먹음직스럽다. 귀한 냉이를 캐다 이웃을 생각해 준 것만으로 충분히 살만한 골짜기다. 어떻게 갚아야 할까? 일 년 내내 신세만 지고 살아온지라, 가끔 과일로 갚아 오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냉이가 가득한 된장국도 생각해 보고, 하얀 뿌리가 누워있는 무침도 생각하며 봄을 준비한다.


엊그제 준비한 퇴비를 가득 뿌렸다. 시큼한 퇴비 냄새가 온 집을 둘렀지만 시골에선 거리낌 없는 냄새다. 언제나 대수롭지 않은 냄새가 봄을 알려준다. 텃밭에도 뿌려주고 작은 화단에도 뿌린다. 혹시 감이 열릴까 하여 감나무에도 인심을 쓰고, 모과나무 밑에도 듬뿍 묻었다. 이젠 텃밭을 깊게 파서 퇴비로 땅심을 돋워야 한다. 온전히 삽으로  해야 하는 일, 운동으로 몸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남아 있는 근육이 있어 온몸으로 텃밭을 정리했다. 다시 화단 정리를 해야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감나무를 감싸 주었고, 대추나무도 둘러 주었다. 보온 덮개를 벗겨내자 나무들 큰 한숨을 쉰다. 긴 겨울을 무사히 버티어 낸 한숨이다.

용케도 살아남은 바위취

한 동안의 노동으로 텃밭이 말끔하게 정리되었고, 화단 정리도 끝이 났다. 오랜만에 쓴 근육은 여기저기서 꿈틀 거린다. 단련되지 않은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무 밑에 가을 흔적이 가득하니 정리를 해야 했다. 우선은 나뭇가지를 정리해야 했고, 혹시 퇴비가 될까 하연 쌓아두었던 낙엽을 치우기로 했다. 커다란 포대로 낙엽을 내준 앞산에 인심을 썼다. 퇴비로 변해 나무의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서서히 화단이 정리되자 시골집은 단정해졌다. 텃밭이 정리되고, 나무가 단정해졌으며 화단은 단아한 모습으로 변했다. 남은 것은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봄은 도랑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소곤대는 도랑물 소리를 따라 산자락부터 내려오고 있는 봄바람, 벌써 훈훈함에 소매를 걷어 올렸다. 맑은 도랑물이 조금은 차가워도 겨울과는 전혀 다른 차가움이다. 푸름을 머금은 꽃잔디는 훨씬 푸르러졌다. 지금이라도 꽃을 피울 자세이고, 어느새 바위취는 파란 잎을 내밀었다. 바위틈에 용케도 살아남은 바위취가 벌써 봄을 알아 채린 것이다. 봄단장이 끝난 시골집, 참새는 벌써 집 걱정이 앞서 있나 보다. 처마밑을 오가며 집을 짓느라 여념이 없다. 주인 생각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집을 짓는 이웃이다. 가지런히 봄을 준비하는 골짜기의 풍경이 오늘따라 설레는 한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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