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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12. 2024

부산행, 오랜만에 다시 딸네 집을 찾았다.

(딸네 집을 다녀오면서)

봄철에 많이 나는 도다리 회가 좋다는 소식, 부산에 사는 딸이 내려오라는 말이다. 철이 바뀌면 회를 좋아하는 아비생각이 난다니 늘 고마운 딸이다. 거기에 사위의 철저한 사전준비로 언제나 알찬 부산여행을 한다. 세시간여를 운전해야 하지만 아직은 끄떡없어 다행이다. 언제까지 운전을 하며 이 거리를 오갈 수 있을까? 힘이 있을 때 부지런히 오가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아이들은 어떤 생각 일까도 궁금하다. 긴 운전 끝에 도착한 부산은 역시 좋았다. 횟거리가 풍부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으니 더 좋을 수밖에. 저녁에 좋아하는 횟집에 들러 푸짐한 식사를 했다.


사위의 사전답사로 회가 곁들여진 충분하고도 넉넉한 식사 후, 소위 입가심을 한다며 맥주집에 들렀다. 사전에 찾아 놓은 그럴듯한 맥주집이다. 젊은이들이 가득한 술집, 오랜만에 맛보는 즐거움이다. 아이들이 아니면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변하는 세월을 따라갈 수 없는 늙어가는 청춘, 오랜만에 즐거움을 누린다. 듣고 보도 못한 맥주 맛을 보고, 젊은이들 틈에 끼어 신세대의 맛을 누려보는 저녁이다. 이튿날도 일정은 빡빡하다. 여기저기 시내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렀다.  

아이들의 보살핌 속에 앉은 식당, 여기저기에 사람이 많다. 살기 어렵다는 말은 시골에서나 하는 말인 듯이 손님이 가득이다. 무엇을 먹을까 언제나 더듬거리는 세월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식사메뉴는 늘 당황스럽다. 눈치를 보는 사이 얼른 메뉴판을 들고 딸이 설명한다. 대충 눈여겨본 메뉴를 선택했다. 맛이야 거기가 거기 아닐까 하는 어림짐작에서다. 순간, 맞은편 식탁에 눈이 멎었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딸이 온 모양이다. 어떻게 우리와도 그렇게 비슷할까? 어린 손녀가 둘이고 딸 그리고 친정아버지인듯한 차림이다. 눈길에 머문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 할아버지도 나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세월은 이렇게 만들었다. 주인과 객이 바뀐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 순식간이었다. 가끔 찾아가는 딸네집이지만 늘 조심스러운 이유다. 혹시, 딸아이가 부담스러워하면 어떻게 할까? 늘 딸과 사위가 계절 따라 내려오라는 전갈이지만 생각이 많아진다. 살아감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까 두려워서다.


가능하면 먹거리도 가득 싣고, 주머니도 가득 채워간다. 식당에선 먼저 지갑을 열고,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일식으로 식사를 하고 나온 오후는 대형마트에서 많은 물건을 사고 나온 직후였다. 아내는 부산에 와서까지 먹거리를 걱정한다. 아침 식사를 해 줘야 하고, 점심도 가끔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점심은 친구들과 먹으려 하는 이유는 아내도 부담스러워할까 걱정에서다.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살림살이는 단출하다. 마트에 가도 몇 만 원으로 장을 봐도 충분하다.

오늘은 전혀 달랐다. 아이들과 함께 장을 봤으니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구매한 날이다. 기십만 원을 딸이 얼른 지불한다. 아내 옆구리를 찌르며 얼른 계산해 주라 하니, 아내도 수긍하며 계산해 줌이 편한 모양이다. 부산까지 내려오라는 부름만으로도 고마운데, 아비로서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다. 떠나는 날은 언제나 새벽에 슬며시 출발이다. 아이들도 편하게 하루를 쉬게 하고 싶어서다. 손녀가 할아버지를 찾았다. 월요일 아침에 가면 안 되느냐고. 하루를 더 있다 가라 하는 손녀, 일이 있어 가야 한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나 할아버지가 오길 기다리고, 하루라도 더 있길 바라는 어린 손녀다.


새벽에 일어나 출발준비를 마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언제나 아침이건 저녁이건 하는 짓이다. 혹시라도 노인네가 묵었다 간 흔적이 남을까 염려에서다. 창문을 활짝 열고, 잠을 잔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 한다. 편히 쉬고 가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이부자리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새벽에 떠나는 더 큰 이유는 혹시, 아비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다. 오래전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 올라서다. 세월이 만들어 준 당신의 뒷모습, 허전한 뒷모습에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부산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왕이면 바닷바람이라도 한 모금 더 마시고 와야 하겠다. 바닷가로 길을 잡아 돌아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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