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머물던 진초록자리에
따가운 햇살을 붓삼아
수채화 물감 흩뿌린 들판에
가을은 넉넉하게 우리곁으로 왔다
요란한 소나기 뚫고
기어이 버텨낸 코스모스는
진빨강 물감 뒤집어 쓰고
가느다란 바람도 못 이기는 듯이
이 가을을 즐기고 있다
아침나절 재잘대던 산새들
산넘어 마실 간 사이
빨간 고추잠자리 파란하늘 거울 삼아
하늘자리 돌며 또 돌아도
언제나 그자리엔 가을이 있다
가을장마 언저리
갈갈대는 노래소리에
자그마한 도랑은 어느덧 그득해지고
이내 가을은 가슴에도 젖어들어
어디론가 가야할 것같은 이 계절에
설레는 마음 다잡아 절로 옷깃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