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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Oct 24. 2024

외로움 그리고 어머님의 세월

(오래 전의 기억들)

초록이 가득하던 봄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퇴직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나서는 자전거길, 늘 싱그러움과 상큼함에 포기할 수 없다. 멀리서 대청호가 넘실거리고 하늘에는 푸름이 가득한 봄날이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 내려가는 비탈길, 옆으론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한 번쯤 쉬어 보고 싶은 푸름 속에 한 가족이 나들이를 왔다. 자식 들인듯한 서너 명의 어른들과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오랜만에 보기 좋은 풍경과 만났다. 갑자기 페달을 멈추고 바라본 풍경, 너무도 부러웠다. 내 어머니에게 왜 이런 것 한 번 못 해 드렸을까?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런 소풍 길 한번 제대로 해 드리지 못했다. 먹고살기 힘겨웠던 젊은 시절, 우선은 아이들 뒷바라지와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약간의 서러움을 끌어안고 달려가는 길, 푸름이 서글픈 기억을 주워주진 못했다. 힘겹게 언덕을 내려갔다 되돌아오는 길, 소풍 나온 가족들은 여전히 그 자리다. 하지만 소풍 나온 가족의 모습, 오순도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아니다.


자식인 듯한 어른들은 누운 듯이 편하게 앉은 의자에서 핸드폰에 눈이 가 있다. 사람이 지나도 모르고, 자전거가 지나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홀로 휠체어에 앉은 어르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르신을 모시고 나온 소풍길에 자식들은 핸드폰에 진심이고, 할머니는 멀찌감치 홀로 앉아 계신다.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갑자기 어머님의 오랜 기억이 소환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님의 전화다. 다짜고짜 염소를 한 마리 사야겠다는 전화다. 웬 염소냐는 말에 그냥 길러보고 싶어서라는 말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염소를 기르려 하실까? 심심하니 그러려니 하면서 염소를 한 마리 사드렸다. 풀을 베어다 주고 밥을 주면서 염소를 돌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어머님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염소를 두고 출타하실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고민 끝에 염소를 팔았지만 끝내 서운해하시던 어머님이셨다. 왜 그렇게도 서운해하셨을까? 세월이 흘러 어머님의 세월이 되었다.


그림도 그리며, 음악도 즐기는 자그마한 취미가 있다. 가끔은 운동을 하면서 해외여행도 빼놓지 않는 일상이다. 그런대로 괜찮은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세월, 하지만 외로움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몸도 오래 전의 몸이 아니고, 긍정적이던 생각도 점점 희미해진다. 외로움이었고 쓸쓸함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외로움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이다.


언제나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할 수는 없다. 시간도 필요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자식들이 있지만 그들의 삶이 있다. 만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삶이 있으니 언제나 동행할 수는 없다. 세월 따라 몸도 달라지고, 삶의 방식도 바뀌어가는 시절이다.  선뜻 떠 오르는 것이 어머님의 외로움, 염소가 생각난 것이다.


시골에서 홀로 계셨던 어머님,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염소를 사달라 하셨을까? 길러내기 어렵지만 염소를 팔아야 하는 어머님의 서운한 심정,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철부지 아들이었다. 세월이 흘러갔고 어머님의 세월이 되어서야 어머님의 외로움이 떠 올랐다. 부모가 돌아가셔야 철이 든다는 것, 긴 삶 끝에 만난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핸드폰에 진심이 자식들, 휠체어에 홀로 앉아 있던 이름 모를 어르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염소를 기르며 외로움을 달랬던 내 어머니가 선뜻 떠 오르는 명절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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