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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13. 2024

가우디의 도시, 그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바르셀로나의 거리풍경)

여행의 별미는 한가함이다. 현실을 벗어나 아무 생각 없는 현지인들과의 만남은 늘 신선하다. 우리도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여행에 진심인 한국인들을 또 만났다. 세계 곳곳을 다녀도 늘 만났던 사람들,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내 투어는 가이드와 동행함이 편할 것 같아 현지투어에 동참했다. 모든 여행객들이 모여든 곳은 유명한 '까사 바티오', 까사가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나 바티오의 집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 모이기 편한 곳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하는 순간, 벼락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가우디의 도시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은 순식간이었다. 가이드가 설명한다. 세계 3대 소매치기 장소를 설명하면서 바르셀로나를 논하고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가 한 여자의 가방을 채어 달아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오토바이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가우디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여행을 시작하려는 아침에 잠이 훅 달아났다. 여권과 휴대폰 그리고 돈까지,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남편과 동행한 여인이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무관심한 듯이 여행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가우디, 천재적인 건축가다. 상상할 수 없는 두뇌를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문화와 수학과 과학이 혼재해 있는 건축, 여기에 자연이 어우러진 이런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까바 바티오가 있고 까사 밀라가 있으며 구엘공원이 있다. 구엘저택이 있고 여기에 세기의 건축물이 성 가족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직도 건축 중이다. 가우디의 도시의 풍경이 그리웠고, 상 가족성당을 다시 보고 싶어 찾은 도시는 변함이 없었다.


가우디, 1852년  카탈루냐의 레우스에서 태어났고, 구리세공 집안에서 태어나 17세 때부터 건축을 공부하였단다. 바르셀로나를 온통 그의 발자국으로 남겨 놓은 천재적인 건축가다. 문화양식이 포함되고 과학과 수학 없이는 불가능한 건축, 여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포함되어 아직도 현대인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카사 바티오에서 받은 신기한 건축물,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 언젠가 만났던 기억을 되살리며 옮긴 몸은 까사 밀라에 와 있었다. 건축물을 보기보단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여행객들 사이에 햇살이 찾아왔다. 맑고도 밝음 속에 만난 까사 밀라, 마치 바닷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 속이다. 대단함에 성스러움까지 곁들여진 천재 건축가의 작품은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하루동안의 단체여행에 익숙해져야 했다.

순식간에 구엘공원으로 실려갔고, 숨 막히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구엘공원을 거닐으며 까바 바티오 그리고 까사 밀라는 다시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까바 바티오 그리고 까사 밀라, 언제 또 찾아오겠는가? 한 번도 오기 힘든 곳을 두 번 찾았으니 자세하게 즐기자는 생각이다. 한 사람이 한 도시를 풍요롭게 해 놓는구나!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 모아 풍요 속의 고단함을 겪는 카날류나 사람들이었다. 버스에 실려 찾아간 곳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렸던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이다.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보이는 곳,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엄청난 풍경을 알려준다. 한가롭게 거니는 언덕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바르셀로나의 백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이다. 


아직도 짓고 있는 성당의 웅장함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완성이 되면 172.5m, 하느님이 만든 몬주익 언덕의 173m를 넘을 수 없어서라는 가우디의 설명이란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야심작은 1881년에 착공한 이래 143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 중이며,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1926년에 완공목표하고 한다. 고딕성당의 전통을 되살리면서도 가우디의 천재적인 독창성을 보인 건축물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이들과 다시, 가우디의 성스런 작품들을 찾아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언제나 여행지에서 부러운 모습, 한가한 식사 풍경이다. 오늘은 맥주파티를 즐겨보기로 했다.

언제나 주저거림은 언어의 두려움이다. 수많은 나라를 어떻게 배낭을 메고 헤맸을까? 기어이 60여 개 나라를 다녔으니 대단한 '나'이기도 했다.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입, 오로지 먹는데만 진심인 입이었다. 더듬거리며 말을 하고 세상을 구경했지만 지금도 한이 되는 언어의 벽이다. 아이들이 쉽게 해결해 주는 식사, 한없이 부러운 그들의 삶이었다. 어떻게 저렇게도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 서두름이 없고 거리낌이 없는 그들의 삶, 언제나 부러움이 가득이다. 아이들이 있어 쉬이 만날 수 있는 카탈루냐의 문화숙에 하루를 보내고 있다. 

노천 식당에서 한 끼를 이어가는 발걸음은 역시 한국인이었다. 서두름이 필요 없는 시간을 서두르고, 질보다는 양을 중시함은 배고픔이 아니었다. 몸 깊숙이 배어 있는 한국인의 문화, 어쩔 수 없는 몸짓이었다. 서둘러야 했고, 빠르게 반응해 줘야 속이 시원했다. 서두름 없는 여유를 즐기고 싶은 여행을 이번에도 반은 망치고 있다. 아이들은 느긋한데 늙은 아비는 서두르고 있다. 안전한 삶이 우선이었고, 서두름이 언제나 배어있는 삶이었다. 조금이라도 서두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여행에서도 어쩔 수 없음에 또 좌절하고 만다. 며칠 간의 가우디의 도시를 벗어나 더 한가운 섬으로 가야 했다. 거긴, 마요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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