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쿠바에서 만난 사람들)
친구가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오래전에 같이 은퇴한 친구를 만났다. 언제나 먼저 하는 인사는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는 안부다. 은퇴했으니 하는 일이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요리 학원에 등록을 했단다.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라 한다. 갑자기 웬 요리냐는 말에, 평생을 아내에게 얻어먹었으니 자기 차례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요리 학원에 등록했다고. 나는 요리를 배우면 안 되느냐며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고, 갑자기 넋이 나가 한 소리였다는 말로 가름했다. 어떻게 하겠나? 잘했다. 해도 너무 잘했다. 살아남아야 할 긴 세월을 편리하게 살아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머릿속을 언뜻 스치는 생각이다.
평생을 함께 한 아내, 많은 걱정거리가 있었다. 맞벌이를 하면서 살 집은 있어도 늘 새벽밥을 해야 했고, 빨래와 육아를 맡아서 해야 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은 간편하게 먹는 법과 살아가는 방법으로 바꾸어 보고 싶었다. 한 시간여를 지지고 볶아 아침밥을 차려 놓으면,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출근한다. 아내는 또 설거지를 하고 출근해야 했으며, 시도 때도 없어 벗어 놓은 빨래로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고민했다. 어느 날 과감하게 바꾸어 보기로 한 것은 아침 식사였다.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밥을 한 시간 일찍 일어나해야 하는 수고가 아쉬워서다.
간신히 해결책을 찾았다.
우선은 식생활 개선이 필요했다. 언제나 밥과 국이 있어야 하는 아침 상, 5분이면 먹어치우고 출근한다. 아침부터 지지고 볶는 일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한 시간의 노동이 너무나 허무해서다. 고민 끝에 일식 삼 찬을 주장했지만 거절당했다. 세 가지 정도면 충분한데 아내의 체면과 자존심인가 했다. 얼마 후엔 40여 년 고집스레 먹어 온 밥을 대신해 과일이나 빵으로 대체하자 했지만 소화를 핑계로 미루어졌다. 고집스러운 위가 허락지 않아서란다. 긴 고민의 터널이 지나고 햇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의 세월이 흘렀고 60 즈음이 되면서 아내도 생각을 바꾸었다. 아침식사로 빵이나 과일 그리고 야채 등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간단한 가래떡이나 찰떡도 좋다 했다. 식사 준비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설거지도 금방 끝이 났다. 더불어 아내가 하던 설거지, 빈 그릇을 들고 나서자 아내가 깜짝 놀란다. 시어머니한테 혼난다며 말리지만 속으론 좋은가보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간단한 아침 식사에 설거지까지 해결하니 몸과 마음까지 후련했다. 간소하고 단순한 삶이 얼마나 좋은지 금방 알아냈다. 삶이 바뀌었다.
세월은 흘러가면서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빨랫감을 내놓는다. 자전거를 타거나 헬스장을 드나들며, 하프 마라톤에 수 없이 산을 오르내린다. 운동을 마친 후 나오는 빨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늘 아내의 손을 빌린 것은 땀에 젖은 몇 가지 운동복을 모아 놓을 수가 없어서다. 옷가지 몇 개로 세탁기를 돌릴 수가 없어 기만원이라는 말에 소형 세탁기를 구입했지만 허사였다. 선전문구에 현혹되어 구입한 쓸모가 없는 세탁기였다. 학창 시절을 기억하며 손수 빨래를 하기로 했다. 샤워를 하기 전 운동복을 손빨래로 해결하고, 운동 후의 흔적을 없애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삶의 모습에서 벌어진 혁명이었다.
은퇴 후의 삶도 편해졌다.
시내 볼일을 보고 들어 오는 길, 신선한 과일과 빵을 들고 온다. 가끔 떡을 사 오기도 하고, 텃밭 채소를 뜯어 온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텃밭에서 가꾼 상추며, 쑥갓 그리고 케일이 있다. 철 따라 방울토마토가 일렁인다. 간단한 야채샐러드와 과일이나 빵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얼른 일어나 설거지를 하는 남편, 하루의 삶이 편리해진 아침이다. 은퇴 후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아침 식사, 아이들도 깜짝 놀란다. 아빠가 설거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의식의 전환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수시로 운동을 나서도 부담이 없다. 운동하고 나온 간단한 옷가지를 늘 아내가 해결했지만 손수 해결하면서 운동하는 부담이 없어졌다. 언제라도 자신 있는 발걸음이다.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서 식사를 준비한다. 냉장고에 숨어 있는 과일 한 덩이에 빵 한 개와 물 한 병이 전부다. 드넓은 들판에 펼쳐진 진수성찬, 여기에 시원한 커피 한잔이면 천하일품 밥상이다. 넓은 들판에 시원한 바람이 있고 신선한 식사가 있다. 고집스러운 밥상이 멀어졌고, 걸쭉한 국생각이 사라졌다. 얼마간의 더부룩하던 배가 한없이 편해졌다.
간단한 식사는 점심상에도 이어졌고 저녁상까지도 전염되었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로 해결하는 밥상, 전혀 문제없는 삶이었다. 해외여행도 문제 되지 않는다. 빵과 과일 그리고 야채를 식사로 전 일정을 소화한다. 세월 따라 몸이 달라졌으니 대응법도 변해야 했다. 지나는 길에 홀로 슬쩍 해결하기도 하고, 술안주가 아닌 반찬으로 여기는 삼겹살이 되었다. 언제나 동석하던 소주병을 멀리 하게 되었고, 신선한 야채는 거북한 배를 쉬게 해 주었다. 세월 따라 변한 의식의 전환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요리 학원 등록한 친구와 가끔 만난다. 요리를 잘되느냐는 말에 열심히 배우는 중이란다. 아직은 서툴지만 언젠가는 멋진 요리사가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이다. 벌써부터 과일과 야채가 곁들여진 식사를 하며 설거지는 내가 책임지고, 잔빨래를 한다는 말에 그것도 하지 않고 먹고 사느냐며 핀잔이다. 저는 벌써부터 하는 일인데 돌아가신 엄마한테 이른다며 웃는다. 긴 세월 속에 생각은 누구나 같았다. 함께 늙어가는 아내도 좋아하고, 아이들까지도 응원해 주는 의식의 전환이 가는 세월 속에 삶을 편하게 해 주었다. 늙어가는 청춘이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늦게서야 깨닫게 된 고희를 넘긴 철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