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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제주, 세월따라 맛과 느낌이 달랐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by 바람마냥

여행은 삶의 재미였다.

살아오면서 여행은 삶의 재미였다. 해외를 드나들고, 국내 여행을 즐기면서 삶의 재미를 찾아냈다. 낯선 도시에서의 저녁은 늘 궁금했다. 이 도시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불빛이 밝은 도시를 만나면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뭐 그리도 궁금했을까?


외딴섬에 살아가는 노부부는 어떤 의미로 하루를 보내실까?

여행을 하면서 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화두였다.

어느 날 항공사에서 날아온 소식, 마일리지가 소멸된단다. 소멸되면 소멸되는 대로, 남아 있으면 그런대로 무관심했던 마일리지다. 수없이 해외를 드나들며 남아 있던 마일리지, 그냥 두면 누구의 몫이 될까?


이렇게 시작된 여행이 제주도였다. 남아 있는 마일리지를 이용한 제주도 여행, 아내와 함께하는 제주도는 오래 전의 기억뿐이었다. 아이들과도 찾았고, 동료들과도 찾았다.

수학여행을 인솔하면서도 찾아갔던 제주도는 의미는 때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다른 맛이었다.


항공편과 렌터카 그리고 숙소를 예약했다.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마라도 배편도 예약을 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아침은 가볍지만은 않다. 모든 것을 예약했지만 모두 잘 이루어질까도 염려스럽고, 여행기간 동안 운전도 부담스러워서다. 젊음엔 생각하지도 않던 일이 고민이 된 세월이다.


여행은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한다.

낯선 곳에서 먹고사는 것을 손수해결해야 함은 어렵다. 모든 것이 낯설고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서 서다. 국내여행, 늘 비싸다는 생각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울릉도 여행이 그렇고, 제주도 여행이 그랬으며 여수 여행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늘 바가지요금은 여행에서 양념처럼 끼어 있었다.


해외여행에서 겪는 갖가지 돈거래, 국내여행이라고 온전하지 않다. 이만 원짜리 파전 한 장은 어이가 없었다. 종이 몇 장 얹어 놓은 듯한 파전이 2만 원, 누구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얼마 전에 삼겹살로 몸살을 앓았던 곳에서의 경험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도착한 공항은 바쁘게 돌아갔다. 얼른 탑승구를 찾아 탑승 순서를 기다렸다. 핸드폰으로 예약하고, 체크인을 하며 모바일 탑승권을 받았다. 어렵게 핸드폰을 주물덕거리며 얻은 승리의 쾌감이다.

고희의 청춘은 젊은이들 틈에 얼쩡거리기도 어려워 버벅거리면서라도 배워야 했다. 모든 것을 발로 뛰며 하기엔 세월은 성큼 흘러가 버렸다. 잠시도 쉼이 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다.


순식간에 도착한 제주도는 무더웠다. 렌터카 회사에 도착해 수속을 밟았다. 구차한 서류작성이 아닌 운전면허를 무인 단말기에 얹어 놓는 것으로 끝이었다. 말이 필요 없고 서류작성은 오래전의 이야기다.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신기한 세상임을 느끼며 차를 인수받았다.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낯선 동네에서 운전은 불안했다. 의자도 불편하고 동네도 어리둥절하다.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함은 고희라는 세월이 알려준다. 천천히를 목표로 안전한 운전만이 최선의 방책이다.

얼마간의 운전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안심된다. 아직도 아내는 불안한 눈빛이다. 내 차를 운전하는 것과는 너무도 달라서다.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운전, 이런 것이 또 여행의 맛이 아닌가?


어디로 가야 할까? 곳곳에 산재한 여행지, 낯선 곳에서의 새로움의 만남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2박 3일, 모든 여행은 아내가 원하는 곳으로 조율했다. 오래전에 찾은 여행과는 느낌이 다르고 보임이 달랐다. 여유와 느긋함이 가득한 여행인데 경로우대라는 팻말에 눈이 가고, 쉬운 경로를 택하게 됨은 무엇을 의미할까? 제주도 동쪽방향의 여행을 끝내고 리조트로 들어왔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개운하다.


아내가 하고 싶은 제주도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이튿날, 다시 찾은 마라도여행은 날씨가 가로막았다. 언젠가는 출항도 못했는데, 접안을 하지 못해 되돌아오고 말았다. 아쉬움에 남은 여행을 서둘러야 했다.

고단한 여행길보다는 미술관과 박물관에 관심이 간다. 늙음이 주는 여행지였다. 김창렬 미술관, 추사유배지 등을 찾아가는 새로운 여행이다. 새로움과 신선함을 맛보며 거니는 제주도 여행, 여기에 맛거리 여행도 무시할 수 없다.


유명 맛집을 찾아 드나드는 밥집, 여기에도 불황은 있는 듯했다. 인적이 드물고 여행객이 많지 않다. 식당의 물가는 쉽지 않았다. 소위 착한 가격이라는 말은 찾기 힘들었다. 제주에 왔으니 맛을 봐야 하는 갈치와 옥돔, 착한 가격에 어울리는 값은 아니었다. 세월따라 맛과 느낌은 전혀 달랐다. 다시 찾아 오는 여행지로서의 제주는 아쉬웠지만 역시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찾은 제주도의 여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여행은 될 수 없을까?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세월이 준 몸뚱이가 조금은 무거운 여행길, 어렵지만 아직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머리가 온전하니 다행이란 생각이다. 오랜만에 떠난 제주도 여행, 고희의 청춘은 아무 일이 없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왔다(2025.10.10일 오마이 뉴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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