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연락을 온 지인은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왜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는지 2주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이별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을 실제 겪게 된다면 감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어림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걸 그려보고 싶어요.”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첩 폴더에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예쁜 꽃 사진도 보여주었고, 장화가 나란히 놓인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린 딸아이를 목마 태워 다니는 아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찬찬히 보여주며 말했다.
“늘 이러고 다녔네요... 이 사람 진짜 좋은 사람이었어요.”
사진을 보여주는 손길과 사진 속 풍경에만 시선을 향했는데도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손끝만 더 바라보았던 것 같다. 가끔 미술 수업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자신의 온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이들에게 과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어서이다. 그림을 어떻게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벗어나 버린다. 초등학교 이후로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라고 했을 땐 그건 전혀 상관없다고 단번에 말할 수 있다. 이 사람 장화였어요. 이제 신을 수 없겠네요. 이걸 그려보고 싶다고 할 때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그리움을 그리고 싶고, 추억을 그리고 싶고, 안타까움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할까 걱정이 되곤 한다. 그릴 대상이 같더라도 그리는 마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날 지인은 꽃을 한 송이 한 송이를 그려나가며 그림 그리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고 했다. 마음속 감정을 하나씩 꺼내고 있는 듯했다. 그림이 고마운 순간이다. 마음 같아선 며칠 합숙이라도 하며 같이 그림만 그리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릴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선으로 하나씩 옮길 때면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의미 있는 대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작품 하나를 완성해 가는 과정은 온 마음의 일부라도 옮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준다. 직접 그린 그림은 그 어떤 그림보다 특별한 애착이 생긴다.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요?”
“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데요. 하고 싶은 걸 그때마다 하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요.”
행복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매 순간의 행복을 놓치면서 나중의 행복을 위해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어른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다. 힘든 일이 나이가 들어도 끝없이 찾아올 줄 몰랐다. 조금만 참으면 행복한 날 오겠지, 이것만 해내면 행복해지겠지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친구들이랑 옛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예전에 힘들었던 기억도 그때가 좋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잠시 위안 삼을 뿐이다. 잠시의 위안을 뒤로하고 지금을 무덤덤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덜 힘들어서가 아니라 견디는 힘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힘듦을 견디고 극복하는 것만큼, 내려놓는 것 역시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곁에 맴도는 행복을 놓치게 된다. 행복을 가까이 두기 위해선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좋은 감정이 생기는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로 시간을 채워야 후회가 없다. 먼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 하루하루 급급하게 살아가다 보면 매번 그때가 좋았지라는 잠시의 위안만이 남아버릴지 모른다. 괜찮은 척하는 것은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행복한 삶은 위안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진짜 행복으로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려볼까 마음먹고 언제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걸 내팽개치고 훌쩍 떠나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월급을 올리는 일보다 쉬운 일이고 승진을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그리운 사람을 잊는 것보다 쉬운 일이고 미운 사람을 용서하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 혼자 조용히 앉자 종이와 연필을 꺼내고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면 된다. 동그라미 하나 그려 놓고 달이라 한들 잘못된 게 아니지 않은가. 해라면 해이고, 달이라면 달이고, 얼굴이라 하면 얼굴이 되는 것이다. 그림이 어렵게 생각되는 것에는 멋들어지게 그려야 한다는 마음도 포함된다. 우선, 내려놓고 시작해 보는 것이다. 영 시원찮은 솜씨 때문에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이 시키는 일은 절대 싫지 않은 법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지인은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바로 전화를 했었다. 그림을 초등학교 이후론 그리지 않아 걱정했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림을 시작하자 그리는 시간이 너무 좋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다음 수업 시간이 오기 전에 그려보고 싶은 걸 카톡으로 보내줄 때도 있다. 메시지와 함께 보내준 사진들이 하나같이 예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꽃이 피는 느낌이 든다. 딱 하나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그게 그림이라고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림이 그리고 싶다던 의미가 진심으로 와닿았었던 이유를 알아서일까.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오도 가도 못 하는 깊은 슬픔이란 이런 것일까.
“언제부터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오세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오라는 대답뿐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다르다.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음을 깨달았다. 삶을 살아가고 있는 누구든 한 가지 감정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오도 가도 못 하는 무엇에 빠지게 된다면 누구에게는 그림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림이 필요한 순간이 그림을 시작할 타이밍이기도 하다. 그림을 언제 시작하면 좋을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하나다. 지금이라고. 행복을 미루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