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정동진 마을
정동진 마을 앞의 작은 바닷가로 슬슬 산책하듯이 나오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서 바다 그 자체로 그냥 기분이 몽글몽글하게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이곳은 정말 바닷가 치고는 크지 않은 편이라서 작은 해변을 거닐면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힘찬 파도와 크고 작은 검은 바윗돌 몇 개 그리고 해변가에 잔뜩 깔려있는 고운 모래, 이 정도뿐이다. 휴가철이 아닐 때는 평소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라서 진짜 동네 마실처럼 편하게 바람 쐬러 나올 때면, 참 소박한 바닷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특성 때문인지 오히려 옆집 이웃 보듯이 친근하게 정겨운 느낌도 든다. 이렇게 아담한 모습 속에서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은근히 반짝거리고 있는 작은 물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해변가에 좍 늘어져있는 고운 모래들이었다.
모래알갱이들 입자가 고우면 고울수록 그 크기는 더욱 작은 모래들이다. 작고 고운 모래들은 그만큼 강하다는 흔적일 거다. 거칠고 세찬 파도를 오랫동안 견딘 덕분에 비록 겉모습은 매우 작아져서 고운 자태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리 고운만큼 거센 파도를 그동안 힘겹게 맞서왔다는 증거니깐 말이다. 파도와 함께 어우러져서 부딪혀온 세월이 길수록 모래알들은 점점 더 곱게 갈리고 작아졌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원래부터 아주 작은 모래였던 것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울퉁불퉁했던 거친 모래나 커다란 암석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강한 파도를 버텨낸 덕분에 더욱 고와졌으리라. 그 덕분에 어떤 작은 채로 걸러내도 빠져나갈 수 있는 생존력 강한 고운 모래가 되었으리라.
이렇게 작지만 힘찬 모습을 띄고 있어서 그런지 정동진 해변의 고운 모래알갱이 하나하나는 마치 ‘강소 기업이나 강소 개인’을 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동진 모래들은 원래부터 이렇게 고왔을까? 처음에는 그저 다른 모래시계 속 모래알들처럼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투박하거나 거칠었을 수도 있겠다. 평범하거나 투박한 모래알의 시간들이 흐르면서 그 세월을 묵묵히 버텨오는 동안 정동진 모래들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일반적인 시간의 흔적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작지만 강한 ‘강소 개인’의 기운이 우러나오게 됐을 것이다. 비록 시간의 무게를 견뎌오느라 겉으로는 곱고 작은 모래의 형태일지라도, 내면적인 속성이나 자아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차츰 맑고 단단한 기운의 쏘울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맑은 바닷물의 거센 파도 물결을 오랫동안 마주한 덕분에 강건해진 고운 모래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정동진 모래알들이 ‘고운 모래’의 형태를 가지게 된 시간적 과정처럼, 그 모래들의 ‘맑고 강한’ 특성과 쏘울(soul) 또한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힘든 시절을 지나쳐온 시간의 힘과 그 고된 세월을 온몸으로 버텨온 인고의 과정으로 이루어냈으리라.
정동진 모래들이 점점 더 ‘맑고 강해진’ 특성으로 되어가는 과정처럼, 평범한 우리들의 쏘울(soul) 형성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을 내서 여행을 떠나올 때면 종종 경험했었던 3단계 정화 과정이 바로, ‘맑은 강인’의 쏘울(soul)로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셀프(self) 여행 중에는 나 자신한테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3단계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데,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어느새 다시 맑고 강해진 쏘울로 형성되어 있는 나 자신을 느끼고는 한다. 여행 떠날 때의 상태에 따라서 여행에서 돌아올 때의 상태도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분명한 것은 출발할 때보다 돌아올 때의 상태가 어떤 식으로든 훨씬 더 많이 나아져 있다는 점이다.
즉, 나만의 모래시계 안에 있던 평범한 시간의 모래알들이 ‘셀프 여행’ 같은 특별한 시간에 투입됨으로써, 여행이 끝난 후에는 그 전의 모래들과는 한층 더 다른 내면의 쏘울들로 변화되어 있는 모래알들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 정화되어 맑아진 쏘울이거나 더 단단해진 내면의 모래알들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여행 직후에 일상으로 복귀하면, 이렇게 단단하게 충전된 맑은 자아(自我)의 쏘울(soul) 힘으로 당분간은 잘 지낼 수 있게 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버틸 수 있는 나의 내면적인 힘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도 여행 직후에만 반짝 형성되어 잠깐 지속되었다가, 다시 희미해지거나 소멸될 수도 있다. 물론 내면이 단단하게 충전된 사람일수록 그 효과는 비례하여 더 오래 지속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초기에는 그 쏘울의 힘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인 이상 아무리 평범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나도 모르게 일상적인 삶의 먼지가 쌓이거나 때가 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써 힘들게 복구한 ‘맑은 강인’의 쏘울이 또다시 도로아미타불로 증발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성장된 쏘울로 더 견고해진 모래들을 또다시 일상의 힐링 활동이나 여행 같은 시간에 재투자함으로써, 이런 과정을 시도하는 노력을 계속 반복한다면 ‘맑은 강인’의 효과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게 된다. 어느 정도의 고정적인 특성으로 굳어지게 되면서 맑고 강한 쏘울이 한동안 유지되어 지속가능한 성향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 지속성의 강도는 노력한 정도와 빈도 및 시간의 길이에 비례한다. 투입되는 ‘노력의 강도’와 ‘시간의 힘’에 따라서 맑은 강인의 쏘울이 보존되는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쏘울 보존의 힘이 지속가능하게 된다면, 이는 결국 나만의 모래시계 안에 있는 모래알갱이 입자 자체가 변화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원래는 나의 일반적인 시간 흐름만 나타내던 평범한 모래였다면, 나중에는 그 모래알갱이들 하나하나가 더 단단해진 자아 정체성으로 변화되어 ‘맑은 강인’의 쏘울로 발전된 것이니 말이다. 이때부터는 예전과 다른 내공과 쏘울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시간의 질(quality) 자체가 달라져서, 동일한 시간의 흐름일지라도 과거보다 더 향상된 결과나 현상이 나올 때가 많아지게 된다. 이게 바로 ‘시간의 힘’이고, 이에 따른 ‘보존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간의 힘이 ‘맑은’ 쏘울의 특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외에도 꽤나 많은 특성들이 시간이라는 ‘독립변수’에 비례하여 증가되는 ‘종속변수’로서, ‘시간의 힘’을 아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아래의 표 박스를 보게 되면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표를 보면 시간의 힘이 적용되는 4가지 성향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다른 성향들이 더 있겠지만, 여기서는 ‘맑다, 단단하다, 곱다, 탁월하다’와 같은 대표적인 성향들 위주로 정리해 보았다. 지금껏 언급했었던 ‘맑음’의 성향에 ‘시간의 힘’이 작용되는 것을 이 표를 통해서 먼저 살펴보면, 다른 나머지 성향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아의 기본 쏘울이 맑아지도록 시간을 투입하면 그만큼 ‘맑음’의 정도가 강해진다. 여기서 ‘맑음’이란, 원래의 상태가 손상되지 않은 ‘온전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맑음’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는 다른 특성으로는, 자아를 의미하는 ‘쏘울’ 이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게 바로 2번째 열의 ‘세부적 특성’에 제시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다. 즉, ‘바탕 쏘울(original soul), 마음, 정신, 의식, 영혼, 에너지, 아우라, 기운’ 등의 특성들은 노력과 시간의 투입에 따라서 ‘맑음(온전함)’의 성향이 높아지는 것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투입할수록 ‘단단함’의 강도가 높아지는 세부적 특성에는 ‘고유 쏘울(unique soul)'뿐만이 아니라 ‘중심, 가치관, 기질, 내공’ 등이 있다. 이런 특성들은 노력과 시간에 비례하여 더욱 굳세게 견고해지는 성향들이 있어서 ‘단단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맑음’의 세부적 특성들이 거의 그대로 ‘단단함’의 세부적 특성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하나, ‘쏘울(soul)’의 디테일한 유형만 다를 뿐이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맑은 쏘울’이란, 본래의 근원적인 '바탕 쏘울(original soul)'을 의미하는 것이고 ‘단단한 쏘울’이란, 나만의 특정한 ‘고유 쏘울(unique soul)’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쏘울(soul) 또는 자아(自我)’라고 불릴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의미가 다소 다르므로, 그것들의 성향을 나타내는 서술어 표현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을 투입하여 ‘바탕 쏘울’을 맑게 정화할수록 마음 바탕색이 투명해져서 맑음의 두께와 강도는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쏘울을 맑게 보존하는 힘이 커지면 그만큼 나 자신은 강해지는 것이다. 나의 원래 ‘자아’에 해당하는 ‘바탕 쏘울’이 다시 맑아져서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유 쏘울’의 색상을 그 바탕에 입히게 되는 경우, 나의 색과 결이 변질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자아가 훼손되지 않고 나만의 ‘고유 쏘울’이 단단하게 지켜진 만큼 강해진 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기본적인 자아에 해당하는 '바탕 쏘울'이 만약에 변질되어서 맑은 상태가 아니라면, '고유 쏘울'에 해당하는 정체성이 원래의 내 모습대로 우러나올 수가 없는 것과 같다. '바탕 쏘울'이 만약에 원래의 맑은 하얀색 바탕이 아니라 이미 파란색으로 변질되어 있다면, 나의 '고유 쏘울'인 빨간색을 입혔을 때 나의 정체성이 붉은 모습 그대로 나오지 않고, 파란색에 섞여서 보라색으로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표 박스 아래 부분의 ‘곱다’와 ‘탁월하다’ 성향도 이런 방식으로 금방 체크할 수 있다. 시간을 투입할수록 ‘고움’의 강도가 높아지는 세부적 특성에는 ‘지혜, 혜안, 성격, 개성’ 등이 있다. 이런 특성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더욱 유연해지는 성향들이다. 그래서 정동진 바다의 고운 모래들일수록 어떤 힘든 모래시계든 어떤 작은 채의 모양이든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한 게 바로, 이런 유연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탁월함’ 또한 투입한 시간이 증가할수록 더욱 우수해지는 성향을 나타내는 세부적 특성들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능력, 역량, 지성, 스킬’ 등은 시간을 들여서 노력한 정도가 길어질수록 향상되는 지표들이다. 여기서 살짝 의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탁월함’의 특성들은 노력한 시간들보다도 타고난 재능이나 천부적인 천재성에 의해 더 좌우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맞다. 타인과의 비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 범위 안에서만 성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재능이나 특성을 타고났든 간에 표 박스 안의 저런 대표적 성향들은 모두, 개인의 시점 기준에서 봤을 때는 시간 투입에 따라 과거보다 미래에 더 향상되는 특성이라는 점에서 누구한테나 유사하게 적용될 것이다.
가령, IQ(지능 지수)나 EQ(감성 지수) 같은 선천적 특성에 더 가까운 요인들조차도, 노력과 시간의 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서 개인적 기준에서는 저런 시간의 힘이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지능 지수나 재능 또한 자신의 타고난 능력 범위 안에서는, 투입한 노력 및 시간에 따라 증감이 가능할 수 있으므로 탄력적 변동의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머리도 안 쓰면 녹슬어서 굳어지고 둔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저 평범했던 사람도 머리를 쓰면 쓸수록 잘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도 괜한 착각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러한 지능 지수(IQ)처럼 구체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정량적인(quantitative) 특성들을 업무적인 스킬과 관련지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보통 ‘하드 스킬(hard skills)’이라고 한다. ‘탁월함’의 성향에 포함되는 특성들은 대부분 수치로 측정 가능한 지표들이라서 이런 ‘하드 스킬’에 해당되는 역량들이다. 그리고 ‘탁월함’ 이외의 나머지 다른 성향들은 거의 모두 수치화하기 힘든 정성적인(qualitative) 특성들로서,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곱다’의 성향은 ‘유연하다’는 뜻을 내포하는 특성들인 만큼, 이런 ‘소프트 스킬’에 가장 가까운 역량에 해당된다. 물론 ‘맑음’과 ‘단단함’ 또한 수량적인 특성이 아닌 질적인 성향이라서 기본적으로 소프트 스킬과 관련이 있지만, 이와 동시에 소프트 스킬의 대표적인 성향인 ‘곱다’의 특성들에 꽤나 도움이 되어주는 밑거름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업무 수행 및 효과성’과 직결될 수 있는 하드 스킬만 타고난 특성과 관련성이 높은 게 아니라 ‘업무 문화 및 효율성’에 도움이 되는 다른 소프트 스킬들도 태생적인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성향들이 이렇게 다들 선천적인 요인들과 연관성이 높은데 ‘우리가 굳이 시간을 들여서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각각의 성향들이 모두 타고난 요인들과 관련이 있다고 할지라도, 연관된 ‘선천성’의 종류에 따라 살짝 미묘한 차이들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다. ‘하드 스킬’은 각자 담당한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필요한 지적 능력이나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소프트 스킬’은 이런 각각의 업무들이 합쳐져 있는 프로젝트나 과업이 전체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관리 능력이나 조정 능력에 가깝다. 담당한 업무가 꼭 총괄적인 역할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맡은 업무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유연하게 조정하면서도 단단하게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일을 스무드하게 진행시키는 성향들 또한 소프트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드 스킬은 타고난 ‘적성이나 재능’적인 측면과 연관성이 높지만, 나머지의 소프트 스킬은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적인 측면과 더 관련이 있는 무형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들 때문인지, 하드 스킬(hard skills)을 향상하기 위해서 투입하는 노력이나 시간 비용은 초기 시점에 '진입장벽이 다소 높은 편'이고,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의 향상을 위해서 초기에 투입하는 노력과 시간은 이에 비해서 '다소 낮은 편의 진입장벽'인 경우들이 많다. 하드 스킬이 전문적인 지식 및 기술과 관련된 만큼 ‘초기에는’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나 시간이 보다 많이 필요할 수가 있다. 하지만 성향적인 특성에 가까운 소프트 스킬은 그저 새롭게 마음먹고 굳게 다짐만 해도 이를 위한 수양의 첫걸음이 될 수 있으므로, ‘초기에는’ 비록 그 지속성이 짧을지언정 진입 자체가 그리 어려워 보이는 편은 아니다. 물론 성격이나 기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프트 스킬은 성장 과정이나 배경에서 이미 형성된 부분들이 꽤 많은 차지를 하지만, 그 이후에도 새로운 경험이나 활동들에 의해서 계속 성장하거나 변화될 수도 있는 특성이므로 이런 면에서 하드 스킬과 상대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스킬들이 형성되거나 보존되는 과정에서는, 초기 시점의 ‘진입장벽’ 상황과 좀 다르게 흘러갈 수가 있다. 소프트 스킬은 단시간에 갑자기 형성되는 특성들도 아닐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차근히 시간과 공을 들여서 탄탄하게 잘 구축해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어떤 외부적 상황들로 인해서 쉽게 무너질 확률이 하드스킬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초기의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었던 소프트 스킬의 성벽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령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지속가능한 ‘맑은 강인’의 쏘울로 형성했을지라도, 예측 불가한 요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취약성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얇거나 물렁물렁한 성벽이었던 것을 나중에 단단한 쏘울로 두텁게 만들었어도, 환경적인 외부 요인들이나 타인들의 침범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언제나 내재되어 있는 연약한 특성들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지켜온 나의 평온한 쏘울이나 정체성이 갑자기 변화된 업무 환경이나 조직에 의해서 쉽게 흔들리거나 훼손될 수도 있고, 리더십이 아주 잘 발휘되고 있던 프로젝트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어쩔 수 없이 차선의 방향으로 바꿔야만 하는 경우들은 의외로 주변에서 많이 볼 수가 있고, 나 자신 또한 저런 경우들을 아예 마주치지 않을 거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진입 장벽이 다소 높아 보였던 하드 스킬은 초기에는 좀 힘들어도 막상 쌓아 올려서 한번 형성해 놓으면, 성벽 자체도 높고 두터워서 다른 기타 요인이나 환경들에 의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요새가 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외부적 요소나 타인에 의해서 불시에 타격받을 수 있는 소프트 스킬과는 다르게, 나 자신만 열심히 애쓴다면 어느 정도 노력한 만큼은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제2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련 시험 성적을 얻거나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 자격증을 획득했다면, 이런 것들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들에 의해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다. 설령 해당 시험이나 자격증 제도가 없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동안 갈고닦아온 실질적인 실력만은 이미 자신의 것으로 보유된 것이니깐 말이다. 이렇게 하드 스킬은 ‘보존의 힘’이 약하지 않은 편이다. 나 자신 이외에도 제3의 요소들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보존의 힘’이 약한 소프트 스킬에 비해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하드 스킬’이 노력한 시간만큼 보존 가능성이 높아져서 시작할 의욕이 더 솟을지도 모르겠지만, 타고난 능력이나 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유리하므로 초기의 진입 장벽은 높은 편이다. 즉, 어떤 수준 이상의 초과적인 탁월함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래도 관련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에게 유리한 게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하지만 어떤 하드 스킬을 기초적인 업무 역량 수준까지만 키우는 것은, 교육이나 훈련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 정도의 기본적 범위까지는 ‘시간의 힘’으로 충분히 탄탄한 성벽을 형성할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유지 관리만 잘한다면 ‘보존의 힘’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되는 편이라서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소프트 스킬’은 진입장벽이 처음에는 낮아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도 한 번쯤은 마음먹고 시도해 볼 만한 특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나 자신한테만 집중하면서 마음가짐과 쏘울(soul)을 단단하게 해 보는 셀프 노력부터 시작하다가, 점점 주변 사람들이나 업무에도 적용 가능한 여러 소프트 스킬들로 범위를 넓혀가면서 더욱 연마하거나 실행해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소프트 스킬들은 타인에 의한 단기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쌓을 수 있는 특성들이 아니다. 대부분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 직접 수양해야 하는 연마의 과정이라서, 단기간의 벼락치기로 확 끌어올릴 수 있는 점수처럼 쉽게 생성되는 특성들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셀프 수양과 훈련으로 꾸준히 애써서 오랫동안 쌓아 올린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내공의 고수나 달인의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은 이상, 갑작스러운 환경적 요인이나 외부적인 타격에 매우 취약하기 쉬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마치, ‘아름다운 유리의 성’ 같다고나 할까? 하드 스킬은 뾰족하게 높은 호리병 모양이지만 단단한 철근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 성곽 같다면, 소프트 스킬은 옆으로 넓게 퍼져있는 낮은 높이의 대접 모양이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 재질로 만들어진 성곽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소프트 스킬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거나, 처음에만 조금 해보다가 쉽게 중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특성들이다! 보존의 힘이 세지 않은 만큼 지속적으로 지키는 것이 꽤 힘들 수도 있어서, 이런 소프트 스킬을 제대로 형성하여 굳게 잘 지켜내기만 한다면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드 스킬보다 더욱 빛나는 무형의 자산이 되어줄 수도 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더욱 막강한 효과를 낼 때도 있는 법이다. 획일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다는 특성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나만의 독보적인 특성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의미니깐 말이다.
이렇게 소프트 스킬이 형성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지속적인 유지의 힘겨움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해외에서는 소프트 스킬을 매우 중시한다고 한다. 연약한 유리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소프트 스킬을 외부 타격으로부터 보존하면서 꿋꿋이 지켜내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가치를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진정으로 중요하고 귀한 게 무엇인지 간과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의 의지와 안목이 내심 멋져 보이기도 한다. 소위 ‘스펙’이라고 일컫는 온갖 계량화된 ‘하드 스킬’만 중시하다 못해, 너무 그런 것들에만 꽂혀 있어서 맹목적으로 수치 값만 쫓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얘기 같아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진짜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놓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 그래도 이런 의문들이 요새는 더욱 스쳐 지나가고 있던 참이었는데, 얼마 전에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아마존(Amazon) 채용 철학을 우연히 발견했다가 살짝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나의 의문이 그저 의문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 살아있는 산증인 같은 인물을 실제 사례로서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조스가 직접 밝힌 아마존의 채용 철학 3가지를 살펴보면, 내가 왜 그런 기분이었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소프트 스킬들이었다. 아주 세부적이고 직접적인 채용 평가 기준들이라기보다는, 채용 관련한 전체적인 마인드나 쏘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이므로 기본적으로 소프트 스킬들과 더 연관성이 높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홈페이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재상’처럼 말이다. (그저 기업 이미지를 위한 간판용처럼 별로 크게 실효성이 없어 보일지라도 말이지.)
아마존의 저런 채용 철학들도 그저 관념적인 이상이나 이미지에 해당되는 것인지, 실제로 채용 시에 진지하게 추구되는 진정한 철학인지는, 나는 실제 아마존 멤버가 아니라서 정확한 실정은 모르겠지만 그런 여부를 떠나서 저런 항목들의 관점과 사고의 발상 자체가 우리와는 너무 달라 보여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와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그런 이색적인? 마인드가 신기해서 순간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제프 베조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마인드의 배포가 남달라 보여서 내 눈길을 더욱 끌었던 것 같다. 왜 내 눈에는 베조스가 ‘지향하고자’ 하는 저 철학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지양하는’ 철학들처럼 보였던 걸까?
1번의 ‘존경할 만한 사람인가?’는 그저 좋은 가치라고 여기면서 단순히 쓱 지나치기 전에, 베조스가 CEO였다는 입장을 생각해 보면 절대 가볍게 볼만한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다. 리더가 훌륭한 신입 직원을 속으로 몰래 괜찮게 생각하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존경하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가짐의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래에도 조직을 성장시킬 수밖에 없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것일 거다. 직원의 직급이나 조건, 연령에 상관없이 개개인 스스로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런 점들을 추구하면서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까지 내재되어 있는 것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과연 아랫사람을 존경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나 문화가 존재하기는 할까? 설령 속으로는 인정을 한다 해도 회사에서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도 아니고 ‘존경한다는 마인드’를 가진다는 것 자체를, 오히려 심기 불편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리 아랫사람이 잘났어도 당연히 윗사람이 존경을 받아야지 어떻게 아랫사람을 거꾸로 존경해야 하냐면서, 많이들 의아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2번의 ‘조직 평균 효율성’ 또한 이런 성향들과 자연스레 연결되어서, 조직 문화 구조상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일 때가 많다. 물론 조직의 CEO 입장에서는 당연히 2번처럼 점점 더 좋은 직원을 뽑고 싶어 하겠지만, 우리나라 조직 문화상으로는 관리하거나 통제하기 쉬운 직원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신입직원의 연령을 능력만큼이나 혹은 더 많이 고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분위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종종 들렸는데 그런 현상들이 계속 변화되지 않는다면, 언제나 하드스킬 스펙만 화려한 신입들만이 입사하게 될 테고 이는 상대적으로 업무적 경험이나 스킬이 다소 부족할 수밖에 없는 직원들만 선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된다. 결과적으로 Street-smart 인재들은 계속 걸러지게 되고 Book-smart 인재들만 양산하게 되는 책벌레 공장처럼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일수록 점점 더 엄청난 국가적 손실 요인이 될 것 같다. 다른 특유의 경력이나 스킬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만약 업무 포지션과 다른 종류의 경험이거나 덕분에 나이가 더 있는 경우라면,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소프트 스킬은 경시되거나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해당 포지션과 직결되지 않는 방해 요인으로 볼 수도 있다.
위아래의 통제 문화와 측정 가능한 수치 값의 하드 스킬에만 더 매몰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다양성을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2번처럼 조직의 평균적 효율성 증가는 이루어지기 힘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평균적 스펙 증가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의 구조에서 어떻게 감히 용기 내어 다른 도전이나 색다른 일과 경험을 해볼 수가 있겠는가? 대박 성공이 아니라면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경로들이 나중에는 살아있나? 그냥 정해진 루트대로만 쭉 따라가도 안전할까 말까인 이 구조를, 어찌 누가 감히 벗어날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기회비용이 엄청 커지는데? ‘청년들이여, 도전하라?!’ 그 뒤의 책임은 누가 지려고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렇게 3가지 철학이 알게 모르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면서, 순간 씁쓸한 느낌이 올라왔던 것 같다. 3번 또한 베조스가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열린 성향의 큰 그릇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추구할 수가 없는 가치일 테니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아래의 말단 직원이 슈퍼스타가 되길 원하는 조직이 있을까나 모르겠다. 무조건 우직하고 충실하게 뒤에서 잘 따라오기만을 바라는 문화가 짙게 깔려있는데, 감히 부장님을 제치고 신입 따위가 슈퍼 스타급의 성향을 가지고 표출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마음씨 넓은 호인 부장이 아닌 이상, 그 신입은 바로 나대는 직원으로 찍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나마 부서의 ‘수장급’인 팀장은 잘 걸리면 귀엽게라도 봐주겠지만, ‘사수급’이나 기타 등의 사람들이라면? 슈퍼스타 신입은커녕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도 혹시 존재감이 꽤나 느껴지는 경우라면, 감히 신입답지 않게 눈에 띄었다는 중형죄로? 여러 공격에 노출되기도 쉬울걸? 거기다 기본적인 표현만 하는 것조차도 나대는 것으로 오인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데, 감히 높으신 분보다 더 튀려고 한다고? 나대는 것을 무지 좋아하지 않는 코리안 특성상, '슈퍼스타'급은 거의 정서적인 사형감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
괜찮겠어? 어딘가에 슈퍼 스타급 신입이 있다면, 제발 무사히 잘 살아남기를.
건투를 빈다. 개콘으로 재취업을 하시든가. 파이팅.
이렇게 우리의 조직 문화랑은 너무나 방향성이 달라 보이는 아마존인데도, 지금 현실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최고의 조직 중 하나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참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우리의 일반적인 조직 문화랑은 거의 다 반대 방향이었던 아마존인데 지금은 세계 제일 최고의 조직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추구하던 철학의 ‘소프트 스킬’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였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 같지 않은가?
더구나 그의 채용 철학들은 최근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들도 아니다. 1999년도 주주 서한에서 베조스가 직접 밝힌 내용들로서 거의 20년 넘게 일관적으로 분명하게 제시해 왔다는 점이 더 대단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해당 기준들은 실제로도 진정성 있게 꾸준히 추구해 온 진짜 철학이자 가치가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더욱 든다. 아마존 규모가 크지 않았던 설립 초기 시점에는 베조스가 직접 채용 전 과정을 모두 관여했다는 사실을 비추어 봐도, 처음부터 베조스가 직접 설정하고 지금껏 내세우는 철학들인 만큼 꽤 중시하는 실질적인 가치들일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베조스의 혜안이자 지혜라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부터 어떤 가치들이 소중한지를 먼저 내다보는 통찰과 지혜가 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교과서적인 지식만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현상은 여전한 것 같다. 물론 그런 하드스킬의 지식도 기본적으로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혜안이나 지혜 같은 소프트 스킬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경시되고 있는 분위기가 오래 고여 있어서 아직도 경직되어 있기만 한 것 같은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머리 좋은 걸로 유명한 사람들이 그 좋은 머리 덕분에 오히려 다른 더 좋은 가치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 못하는 장님처럼, 그 비상한 머리들 개발에 발목이 잡혀서 오늘도 여전히 수치화되는 목록들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저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당장에는 득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추구되어야 하는 ‘지향’점으로 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오늘 하루도 열심히 자신만의 모래시계 안에서 모래를 떨어뜨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혹시 목적도 의미도 없는 ‘모래시계 모양의 쳇바퀴’ 인지도 모르고 그 안에서 그저 죽도록 모래알만 떨어뜨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모래알을 지금 내가 왜 떨어뜨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그냥 남들이 그렇게 하니깐,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까 봐, 영문도 모른 채 모래시계 쳇바퀴를 죽어라고 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우리의 동진이는 역시나 뭔가 달라 보이는 것 같다. 정동진 바다도 그동안 오랜 세월을 버텨오면서 마을을 지켜온 덕분에, 그런 ‘보존의 힘’으로 바닷물도 그리 맑고 모래도 그리 고운 것이 아니었을까. 힘찬 파도 또한 그리 세찬 기운의 에너지로 그 마을과 바다를 든든하게 지켜온 것이 아닐까. 맑고 곱고 단단하다. 거기다 탁월한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갖췄다. 그런 탁월함으로 많은 관광객까지 유치해 온 덕분에 저 많은 장점들도 지켜냈으리라. 물론 기차역의 편리한 교통까지 그 우수한 잠재성을 드러내면서 든든한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해줬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힘들고 아픈 세월을 잘 견디고 지켜온 덕분에 말이야. 진정으로 ‘보존의 힘’을 몸소 실천해서 모든 좋은 특성들을 지니게 된 살아있는 작품인 것 같네. 동진아, 너는 ‘하드(hard)’ 스킬과 ‘소프트(soft)’ 스킬을 다 가지고 있네? 게다가 단단하면서도 동시에 맑고 곱구나. 모든 걸 다 가진 너가 정말로 멋지다!
우리도 언젠간 너를 점점 더 닮아갈 수 있겠지? 그대들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