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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 Oct 22. 2023

(1-5)_살아있는 역사_(feat. 정동진역)

feat. 정동진역


주변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모래시계 공원’ 산책을 나갔다가 예상치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대형 모래시계’ 추모까지 하게 될 줄이야. 그 덕분에 모래시계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시간의 힘에 따른 ‘보존의 힘’까지 사색 타이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다. 갑자기 너무 의식의 확장을 해버린 것 같아서 다시 현실 세상으로 돌아왔는데, 정동진 기차역을 스쳐 지나가다 또 연관되어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쩌면 그곳을 진정으로 추모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 모래시계는 그저 예전의 완전한 기능 중에서 일부분을 잃어버린 거니깐, 그래도 반쯤은 살아있는 형태라서 실질적인 진짜 추모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반쯤은 죽어있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으니, 온전하지는 못한 그런 미비한 상태를 안타까워해준 것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동진역’은 어쩌면 이제, 과거의 역사(歷史)로 아예 한발 물러서서 ‘현재의 역사(驛舍), 기차역’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즉, 실제로 진정한 추모대상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근처에 새로운 기차역이 들어서게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얼마 전에 동네 사람들한테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밤기차 없어진 것도 매우 애석했는데 현재의 정동진역까지 사라진다는 소식을 연달아 듣는 것은 마치,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이별을 연타로 겪어야만 하는 심리적 공황 상태로 순간적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 같았다. 나랑 평소에 자주 보던 사이도 아니었고 내가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심하게 빠져드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나름 이성적인 유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왜 그리 서운한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거의 십 년 만에 연달아 세 번이나 계속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유도 혹시, 정동진의 지금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동진이의 메시지를 느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연속 세 번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던 그때부터 이미, 신축 공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던 시기였다는 것도 뒤늦게 이번에야 알았다. 



‘아이고야, 동진아...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네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너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거니? 


자꾸만 최근에 왜 그렇게 네가 문득 생각나면서, 

한걸음에 달려오고 싶었던 건지...

신기하기만 했는데...


뭔가, 우리만의 텔레파시라도 통했던 건가?’



이런 감성적인 위안들만 수십 번 한들 실제로 없어지는 게 사실이라면, 그게 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애써 담담하게 이렇게 약간의 낭만적인 위로들로 침착해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불쑥 더 안타까운 마음들도 올라오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ㅠㅠ 

우리 그냥 이대로 허망하게 이별하지 않도록 말이야. 너 같은 진귀한 보물을 발견했다고 좋아라 했던 그때가 나한테는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갈 때까지 그동안 제대로 한번 찾아오지도 못해서 미안해.ㅠ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니... 그만큼 나도 너무 힘들었단다... 발견해 놓은 보석도 한번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뭐가 그리 힘들기만 했는지 시간만 야속하게도 쏜살같이 흘러가더라고. 그래도 다시 오겠다던 그 약속을 이제라도 지키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다시 만나자마자 헤어져야 한단 말이냐..

나 이제야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좀 너랑 함께 숨 쉬고 싶은데.. 종종 너 옆에서 너의 숨결에 위안받고 싶은데..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단 말이냐. 도대체 누가 너의 흔적을 없애고 해치려 한다는 거냐. 내가 혼내줄까? 어찌할꼬...’  




나는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여행 일정을 계획할 때면, 그때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서 가고 싶은 바다를 중심으로 여행지를 선택하는 편이다. 정동진으로 떠나올 때도 항상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기는 했지만, 그만큼 ‘정동진역’ 또한 바다처럼 만만치 않게 너무 좋았던지라 어딘가 모르게 고향의 향수 같은 느낌에 끌려서 찾아오기도 했던 곳이다. 나는 도시가 고향인 사람인데 왜 여기서 뭔가 흔치 않은 그런 평온함과 아늑함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작고 소박한 모습이 평범한 시골길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를 은근히 끌어당기는 정동진역만의 특별한 운치가 분명히 있었다.      


나를 정동진역에 내려준 기차가 떠나가면서 점점 희미해지는 경적 소리는, 오솔길을 닮은 기찻길의 향기 속으로 나를 들이밀면서 드디어 나의 포근한 아지트에 도착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런 따스한 공기가 나를 에워싸는 분위기, 옆에 늘어진 소나무들 사이로 느껴지는 솔바람, 작은 라디오에서 힘차게 들려오는 듯한 바닷가의 파도소리, 기찻길과 함께 다정하게 서있는 신호등의 풍경에서 우러나오는 빈티지한 색감과 특유의 아련함 등이 서로 함께 어우러져서 마치 독립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져 나온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이곳만의 그런 유니크한 느낌과 정취가 있다.     



그런데 이런 귀한 보물을 굳이 폐쇄하고 옆에다가 새로운 기차역을 커다랗게 짓는다니. 그것도 순전히 경제성이 목적인 것 같다. 예전보다 관광객이 다소 줄어들게 된 주요 원인을 바로, 지금의 오래된 정동진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차역을 통해서 관광 산업을 더 육성하고 키우려나 보다. 예정대로 그리 된다면 현재의 정동진역은 이제 과거의 건축물로서 아예 뒷전으로 물러서줘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철거하려던 초기 방향이 재조정되어 철거까지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된 것 같지만 기차역으로서 실질적인 운영을 하지 않게 된다면, 하나의 관광형 모조품에 불과하게 되어 주변 근처의 흔한 건물들 중 하나처럼 전락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더 이상 현재의 기차역 기능은 사라질 테고 그저 과거의 유적지처럼 관광 조형물로서 남게 될 것이다. 



비록 건축물 공간이 숨을 쉬는 생명체는 아닐지라도 어떤 용도로 쓰이고 활용되느냐에 따라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나 대상물이 달라지므로, 곳곳에 스며드는 사람들의 발길과 물체의 흔적들에 따라서 그 공간의 공기 자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게 바로 현장의 분위기와 느낌을 형성하게 되고, 그 공간에 퍼져있는 공기의 온기까지 결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정동진역이 기차역 기능을 잃어버리고 그저 장식용 건물로 남게 된다면, 예전부터 오가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과 흔적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지금의 정동진역에서 느껴지는 그 공간만의 기운과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같이 소멸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즉, 현재의 정동진역만이 지니고 있는 향기와 매력이 점차 사라지게 되면서 차차 생명력의 기운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보존하는 가치가 과연, 앞으로 대체되는 ‘경제성’의 가치와 비교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생명이 없는 무생물인 건물이나 공간도 이러한데, 생명체인 인간 자체는 오죽할까.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성별, 나이, 세대, 고향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지만, 성별이나 나이가 동일하다고 해서 절대로 똑같은 분위기나 느낌을 발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만의 ‘세대력(generation history)’처럼 비슷한 시대를 지나쳐온 만큼 같은 세대끼리 공유하는 사건이나 경험들이 있어서 비슷한 또래만이 지니는 공통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별로 풍겨져 나오는 고유한 분위기와 향기는 모두 각자 다른 느낌의 모습들이다. 같은 세대끼리는 비슷한 시대를 거치면서 비슷한 역사 속에 있었는데도 각자 자신이 처했던 환경과 경험들이 또 다른 만큼 개별적인 역사(history)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각기 다른 고유한 분위기와 느낌과 매력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타고난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쌍둥이조차도 각자의 성향과 지나쳐온 인생이 다른 만큼, 자신만의 분위기와 매력이 서로 다른 경우가 꽤 있지 않은가. 음식에 비유한다면, 각 요리마다 들어간 조미료와 식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른 향과 맛이 우러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자체가 이렇게 다양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물체인 인간과 동식물들이 오고 가는 공간이나 건축물 또한 그들한테서 우러나오는 생명력 기운의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지은 새로운 집과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의 공간은 확실히 그 느낌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내 방이나 오피스 등의 공간은 나의 발길과 온기, 숨결과 향기 등이 모두 스며들어 있어서 그곳만의 독특한 느낌과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막 만들어진 새집에서 우러나오는 시멘트 공기만의 공간과는 그 차이를 정말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과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는 과정은 결국, 이러한 자신만의 ‘살아있는 역사(history)’로부터 영향받는다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생명체는 자신의 역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고, 무생물은 그들과 함께 지내온 생물체들의 역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뿐일 테니 말이다. 





이런 면에서 지금의 정동진역은, 그냥 정동진역이 아니다. 물론 다른 기차역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속내와 사정이 있겠지만, 현재의 이 정동진역은 힘든 생존형 산업을 바탕으로 시작된 작은 탄광 마을을 위해 탄생되었고 그 이후에도 커다란 고비를 맞이하여 존폐 위기의 기로에 섰었던 힘겨운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삶의 여러 굴곡을 지나쳐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런 특별한 분위기와 느낌을 풍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라왔던 대단한 생명력과 치열한 열정을 지닌 곳이 흔치 않을 텐데. 


그냥 무력하게 무너져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거룩한 쏘울(soul)을 증발시켜 버리면 과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정동진역 또한 자신이 겪어왔던 사건 및 경험들이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하나의 역사(history)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삶의 흔적들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신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독특한 시그니처 느낌의 운치가 만들어진 것일 거다.     


새로운 기차역을 짓는다면 새로운 신선함 측면에서는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시간의 힘에 따라서 겹겹이 쌓여온 여러 가지 느낌이 믹스되어 흘러나오는 듯한 특별한 분위기는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만큼 앞으로 60년 이상의 동일한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정동진역이 지금까지 겪었던 동일한 히스토리가 새로운 기차역에도 그대로 똑같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전혀 다른 분위기가 형성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즉, 현재의 정동진역이 자아내고 있는 그런 느낌 있는 운치와 감각적인 정취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동진역만의 특유의 분위기와 아우라는 오랜 세월을 거쳐 내적으로 축적되어 있던 것들이 겉으로 우러나오면서,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기운이나 에너지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정동진역만이 지니고 있는 ‘정체성이자 쏘울(soul)’이라고 할 수 있다. ‘시그니처(signature)’라는 표현 자체가 ‘정체성(identity)’이라는 뜻을 아주 격하게 내포하고 있는 용어인 것처럼 말이다. 반면에 새로운 기차역 신축 공사로 인해서 예상되는 ‘경제성’은, 거대한 예산 투입으로 단기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다면 확 끌어올릴 수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책의 방향이나 투입되는 자금력의 사이즈가 관건이므로, 정동진역의 운치나 분위기처럼 오랜 시간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즉, 신역사(新驛舍)의 ‘경제성’은 일종의 ‘하드 스킬(hard skills)’ 같은 특성인 것이고, 구역사(舊驛舍)의 현재 정동진역이 지니고 있는 분위기와 매력의 ‘정체성’은 일종의 ‘소프트 스킬(soft skills)’ 같은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서 힘겹게 보존해 온 정동진역의 분위기와 매력... 그리고 위기 때마다 간신히 극복해서 살아남은 덕분에 장기간동안 숙성시켜 온 그런 공간의 쏘울과 향기... 이런 ‘소프트 스킬’ 타입의 소중한 특성들을, 단기간에 투입할 수 있는 돈으로 그냥 밀어버린다고?? 그렇게 거대한 예산 금액으로 ‘하드 스킬’ 타입의 경제성 수치 값만 끌어올리는데 올인하겠다고?? 



오 마이 갓... 속으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래. 뭐, 다시 낙후되어 가는 정동진의 관광 산업을 다시 되살리려고 하는 좋은 의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관광업 활성화의 방법이 과연 오로지 그것밖에 없을까? 만약에 엄청 외진 곳에 숨어 있는 시골 동네라서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면, 관광업을 육성하기 위한 초기 방안으로는 그런 시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는 그래도 ‘정동진’ 아닌가. 초기에는 아주 치열했던 삶의 현장이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한때 스타 도시까지 갔었던 정동진이라서 사람들이 많이들 알고는 있지 않은가. 그렇게 최소한 인지도는 있는 동네라는 거다. 더구나 그냥 유명하기만 한가. 아름다운 자연과 해돋이의 관광 자원 덕분에 그 유명세를 더 타게 된 것도 있고, 나처럼 정동진역의 운치에 반해서 오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바로 옆에 다양한 유인책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매력들을 듬뿍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이미 가지고 있는 매력과 장점을 살려볼 생각은커녕 오히려 그런 것들을 제거하고 다른 통계적 수치의 향상에만 집중을 하려고 하다니. 그런 느낌과 분위기는 가지고 싶어도 억지로 가질 수가 없어서 안타까운 동네들도 많은데, 어째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까지 더 살리지는 못할망정 눈 뜬 장님들처럼 그런 복을 스스로 차 내려고 하는 걸까. 

그런 타고난 아름다움과 세월로 숙성된 매력과 분위기를 더 향상하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시도해 본 후에, 이제는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하드 스킬 타입으로 방향을 돌린 거라면 그나마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 기사들 몇 개만 살펴보아도, 여기 정동진이 모래시계로 뜨기 시작했을 때 관광업 육성 방안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기도 했지만 대형 모래시계 공원 이외에는 대부분 별로 추진되지 못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결국은 다시 이곳을 살리려는 시도가, 그나마 갖고 있던 장점의 매력까지 깎아먹으면서 그저 돈만 투입해서 사람들을 유치하려고 한다는 게 참 씁쓸했다. 


넓은 공간으로 편하게 이동해서 많은 사람들의 편리성이 높아지면 뭐 하는가. 와서 볼거리는 계속 줄어든다면? 이곳의 매력과 향기가 예전만도 못하다면? 그런 방법으로 여기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도로 다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겹겹이 쌓인 시간의 향기와 정취를 잘 보존하여 정동진의 ‘살아있는 역사(歷史, history)’를 계속 잘 이어나간다면, 지금처럼 운치 있는 분위기를 지닌 기차역으로서 ‘살아있는 역사(驛舍, Train Station)’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폐쇄하여 운영을 중단한다면 그 생명력을 쉽게 잃어버리고 그저 ‘과거의 역사(歷史, history)’ 속으로 사라지게 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정동진역만의 숨결이 남아 있지 않게 되면서 현재처럼 ‘살아있는 역사(驛舍, Train Station)’로서 너를 만나기는 힘들겠지. 나는 앞으로도 계속 너를, 지금처럼 살아있는 상태로 만나고 싶은데 말이다. 정녕, 내가 너를 진정으로 추모를 해야 한단 말이냐.     


아, 비통하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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