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조용히 끝났고, 남은 것은 ‘생산’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늘 경계의 대상이었다. 게으름, 낭비, 비생산.
우리는 쉬는 시간마저 회복을 위한 준비로 사용했다. 다시 일하기 위한 휴식.
이렇게 살면 시간을 효율성 있게 사용하겠지만 깊이가 사라진다.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는 상태다.
이 상태에서 생각은 흩어지고, 연결은 느슨해지며, 의외의 판단이 생겨난다.
고독하고 불안하지만 바쁘게 움직일 때는 보이지 않던 방향이 게으를 때 드러난다.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들은 대부분 기록되지 않는다.
산책, 멍 때리기, 쓸데없는 검색, 계획 없는 독서.
그러나 불안한 시대에 나의 선택과 내공은 이 시간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시간낭비는 결과가 정해지지 않고 실패해도 되는 실험이다. 그래서 생산적이다.
낭만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가장 먼저 제거된다.
하지만 낭만이 사라진 생산은 오래가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 나의 마음에 드는 물건, 괜히 지키고 싶은 내 삶의 방식.
이 사소한 낭만들이 나를 다시 그 자리로 불러온다.
낭만은 사치가 아니라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나는 시간을 아끼기만 하지 않고 일부러 낭비도 해본다.
모든 시간을 성과로 환원하지 않고, 모든 노력을 증명으로 바꾸지 않는다.
게으름, 시간낭비, 낭만.
이 세 가지는 나의 재생산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다음 스텝을 용기 있게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