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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곰 Apr 03. 2024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개는 얼마나 좋을까.

뉴질랜드에 살면서 한국과 다른 점을 종종 느끼는데, 그중 한 가지가 애견 문화다. 뉴질랜드에서 우선순위는 노인과 어린아이, 여자, 그다음이 개, 그리고 남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애견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뉴질랜드는 섬나라고, 나는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 걸어서 5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는 거리라 자주 산책을 가는데, 그곳은 사람에게도, 개들에게도 행복한 장소다.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생소하게 느낀 건 개들이 목줄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덩치가 큰 개든, 작은 개든 모두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개의 주인은 공이나 나무 막대를 던지고 개는 그것을 잡기 위해 달린다. 그리고 잽싸게 낚아채 다시 주인 발아래 내려놓는다. 그럼 주인은 다시 그것을 힘껏 던진다. 해변 쪽이든, 바다로 던지든, 공을 놓치는 법이 없다.


나무 막대기를 물고 다니는 개도 있는데 간혹 자신의 몸 크기보다 5배, 아니 10배는 더 큰 나무 막대를 물고 가는 개도 있다. 나름 진지한 막대 사랑을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새어 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가 없다. 주인은 익숙한 듯 그 커다란 막대를 빼앗아 바다로 던진다. 개는 소중한 막대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바다로 뛰어든다. 그리고 막대를 물고 주인의 뒤를 따른다. 주인이 막대를 차에 싣고 집으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뉴질랜드의 흔한 바다 산책 풍경이다. 이쪽 해변에서 저쪽 해변 끝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운이 좋으면 50마리의 개를 만날 수 있다. 개와 사람이 목줄 없이 한데 어우러져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긴다. 목줄을 왜 안 했냐고 하는 사람도 없고 목줄이 없어 제어가 안 되는 개도 없다. 처음엔 목줄 없는 큰 개가 옆으로 지나가거나 저 멀리서 나를 향해 달려올 때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개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오직 공이나 다른 개를 향해 갈 뿐이다. 그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넓은 해변을 제 놀이터로 삼는다. 위협적이게 크게 짖는 개도 없고 싸우는 모습은 더욱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간혹 다른 것(나무뿌리나 해파리 등)에 빠져 주인의 애타게 부르는 소리도 무시하다가 목줄이 채워져 끌려간 개가 있을 뿐이다. 끌려가는 개는 아쉽고 나는 그 장면이 귀엽기만 하다. 


내 나무막대야!


언젠가 잔디밭에서 훈련을 받는 아기 개와 주인을 본 적이 있다. 아기개는 목줄이 채워져 있었고 여러 가지 훈련을 받는 것 같았다. 천방지축인 어린 개를 다루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닌 듯 보였다. 그것이 바다에서 다 큰 개들이 목줄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유였다.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개는 초록색이나 노란색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 초록색은 2022/2023년 등록된 개의 메달 색깔이고 2023/2024년의 메달은 노란색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개의 주인은 자신이 키우는 개를 매년 재등록을 해야 하며 그것은 개가 걸고 있는 메달 색으로 알 수 있다. 개를 등록할 때는 등록비도 들고 도시에서 2마리 이상의 개를 키우려면 따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책임 있는 개 주인'(RDOL:Responsible Dog Owner Licence) 자격증을 받으면 등록비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개를 등록하고 키운 지 1년 이상 지났어야 신청 자격이 주어지고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개를 키우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구체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이곳의 개들은 지나가는 다른 행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나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번 쓰다듬어주고 인사하고 싶은데, 타인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는 훈련을 받는 것 같다. 어느 날 산책로에서 러닝 후 녹초가 된 걸음으로 걸어가던 중 저 멀리서 개 한 마리가 달려왔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큰 개가 이젠 두렵지 않았다. "HI"하고 인사했더니 나에게 온다. 저 멀리서 주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는 나를 향해 달릴 뿐이다. 달려오는 개와 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 때쯤 주인은 자신의 개에게 멈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않게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개는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고 나는 털끝도 만지지 못했다. 어쩐지, 뉴질랜드 개들은 해맑은데 가까이 오질 않더라니. 주인 외에 타인에게 관심이 없던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었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애견 환경은 여러 가지가 다르다. 뉴질랜드에도 개물림 사고가 있다. 이건 개와 인간이 함께 살기를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이다. 다른 점은 뉴질랜드에서 넓은 잔디밭은 동네 어디를 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대부분의 주거지는 마당이 있는 주택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섬나라이기 때문에 바다가 많고 덤으로 굴러다니는 나무막대도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구 밀집도가 한국보다 확연히 낮다는 점이다. 아마 이게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뉴질랜드는 정말 넓고, 사람이 없다. 축구장만 한 잔디밭에 누워 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곳이 이곳이다. 지난 주말 묘지 옆 넓은 잔디밭 공터에 누워 시간을 보냈는데, 바람소리와 새소리 말고는 개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한참 후에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와 아빠가 지나갔을 뿐이다. 이런 행복한 곳에서 개는 뛰어놀고 훈련받고 행복하고 건강해진다. 한국은 시골이 아닌 이상, 건물도 많고 사람도 많다. 도로와 인도는 모두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덮여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잔디 공터 같은 장소가 많지 않다. 게다가 아파트가 주된 주거 형태이고 마당을 가진 집은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사는 한국은 그런 문화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킬만한 장소도 없고 개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된다는 생각도 그리 많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밥을 주고 사랑을 주면 다인줄 알았다. 산책의 중요성이나 냄새를 맡은 행위가 갖는 의미를 몰랐다. 그렇게 키우던 개가 18년을 살다 죽은 지 5년쯤 지난 지금, 한국도 애견 문화가 많이 성장했다. 개를 키우지 않지만 강형욱 유튜브를 자주 본다. 언젠가 다시 키울지도 모르니 미리 공부해둬야 한다.


뉴질랜드에 오고 바다에서 뛰어노는 개는 나에게 뉴질랜드 이미지의 한 조각이 되었다. 그들은 매우 자유로웠고 행복해 보였다. 목줄을 하지 않아도 불안해하는 사람 한 명 없었고 이것은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약속되고 지켜온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 같은 것이었다. 언제 우스갯소리로 나보다 저 개가 더 행복해 보인다고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개로 태어난다면, 기왕이면 뉴질랜드 바닷가 근처에 사는 주인을 만나고 싶다. 매일 수영하고 물기 좋은 막대를 수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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