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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곰 Apr 10. 2024

여름에 올인, 뉴질랜드!

잠을 자다가 눈이 떠졌다. 블라인드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방을 서서히 밝히고 있는 중이다. 시계를 보니 5:57분이다. 알람은 7시에 맞춰있으니 1시간이나 일찍 잠을 깬 것이다. 아니, 사실은 제시간에 일어났다. 내 몸은 일어날 때를 스스로 알고 잠을 깼으나 시곗바늘이 한 시간 느려졌다. Daylight Saving Time이 끝났다. 일요일에 끝이 났으니 이제 4일이 지났다. 4일째 매일 아침 6시에 눈이 떠진다. 나이가 든 게 틀림없다. 나는 이렇게 정확한 시간에 눈을 뜨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렇게 되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한 번 깬 잠은 다시 쉬이 들지 않는다. 고작 한 시간이 뒤로 늦춰진 것인데, 4일이 지나도록 적응을 못하고 있다. 나이 든 사람은 변화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시곗바늘 시간'에 벌써 익숙해졌다. 여전히 11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난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만의 문제인 게 맞다. 7시가 넘어야 밝아졌던 하늘은 이제 6시에 밝아지고 있고 대신 7시에 지던 해는 6시에 서둘러 서쪽으로 넘어간다. 아침과 저녁이 빨라졌다. 그리고 한국과 시차는 3시간으로 줄었다. 


Daylight Saving Time의 유래를 찾아보니 세계 1차 대전 중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독일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전쟁 중에 시작된 것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생각됐다. 시간을 당겨 태양이 떠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활동 시간도 많아지고 늦게 찾아오는 어둠덕에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도 에너지 절약이 이유가 될 것 같진 않다. 더욱이 뉴질랜드는 원래 일찍 잠드는 나라다. 한국의 환한 밤과는 180도 다르다. 밤 9시만 되어도 우리 집을 제외하고 앞집, 뒷집, 옆집의 불은 모두 꺼진다. 간혹 캄캄한 한밤 중 저 멀리 불이 켜진 네모난 빛을 보면 동지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니 Daylight Saving Time을 하는 이유에 에너지 절약의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고작 한 시간 차이라고 하더라도 수면 리듬이 깨져 몸이 무거운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Daylight Saving Time을 시행하고 있는 것일까?


잠깐 이곳의 날씨에 대해 말하자면, 남극과 가까이 붙어있는 뉴질랜드는 일 년 동안 기온의 변화가 한국처럼 크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오클랜드는 겨울에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에도 25도를 넘지 않는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뉴질랜드의 겨울을 내심 기대했었다. 작년 겨울을 보내고 내 기대는 모두 헛된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영상의 기온에서도 동사로 죽는 사례가 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나는 확실히 세상의 다양성을 더 많이 인정하게 됐다. 그것은 경험을 통한 것이다. 지난 6월, 10도의 날씨에 집안에서 파카를 입고 영상 통화를 하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해한다. 남편은 뉴질랜드의 겨울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나도 사람이 영상의 기온에서 왜 동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이곳의 겨울은 5월부터 시동을 걸어 9월까지 이어진다. 장장 5개월 동안 춥고, 바람 불고, 습하고, 5시면 깜깜해지는 우울한 겨울인 것이다. 해지는 공식적인 시간은 5시쯤이나 한겨울엔 4시만 되어도 어두컴컴하다. 무려 5개월, 이건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겨울 중 하루 평균 태양이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시간은 4시간이다. 그리고 한 달 평균 20일 동안 비가 내린다. 기온만 영상일 뿐이지, 이곳의 겨울은 우울하다. 무척.


반면, 겨울이 이렇게 우중충하고 긴 만큼, 11월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뉴질랜드의 여름은 말 그대로 천국이다. 뜨거운 태양, 미세 먼지 하나 없는 쨍한 색감, 눈을 어디로 돌려도 초록빛 자연이 살아 넘친다. 게다가 그늘은 또 시원해서 더위에 지치거나 기력이 달리는 느낌도 없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여름은 매일매일이 쨍하고 아름답다. 긴 겨울을 견딘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그들은 여름을 누릴 자격이 있다. 게다가 Daylight Saving Time까지 적용해 아주 길게 누릴 수 있다.


나는 깨달았다. 

뉴질랜드는 여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Daylight Saving Time까지 적용해 한 시간을 앞으로 당겨 7시에 지는 해를 8시에 지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여름을 원 없이 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7시에 바다에 나가도 수영을 할 수 있게 말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 자전거를 타고 러닝도 하고 일광욕도 한다. 신나게 놀 수 있다. 모든 게 완벽한 여름이다. 8시가 넘어도 대낮같이 밝다. (한 여름엔 9시가 가까운 시간까지 밝다.) 섬나라인 만큼 수많은 해양 스포츠 대회도 여름에 열리고 각종 행사와 이벤트도 개최된다. 여름을 신나게 즐겨야 한다. 여름이 지나면 길고 긴 우울한 겨울이 올 것이다. 최대한 길게, 여름의 한가운데서 인생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학교도 아름다운 여름을 즐기기 위해 12월에서 1월, 2달 동안의 긴 방학이 시작된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파티다!



그래서 나는 억울하다.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다.

나는 12월에 한국에 간다. 긴 방학이니 한국 가기에 딱 좋은 때다.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일 년 동안 못 먹은 한식을 보충한다. 이제 막 우중충한 겨울을 보냈는데, 다시 겨울로 가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긴 겨울을 보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여름의 보상을 나는 받지 못한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 움츠러든 어깨가 펴질 틈도 없이 한파가 휘몰아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결국, Daylight Saving Time은 나에게 수면 장애만 안겨줬다. 오늘도 몸이 무겁다. 나이가 들면 서럽다는 말이 의도하지 않게 저절로 나온다. 겨울이 오고 있다. 집안 공기가 차가워졌다. 요즘 들어 발이 많이 시리다. 연말까지 쭉 이어질 우중충함이 벌써 걱정이지만, 어쩌겠는가! 겨울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봐야지.

나이가 든 건 서럽지만 그만큼 이해하고 수용하는 마음도 같이 넓어졌으니, 참 다행이다. 나이가 들어 뉴질랜드에 온 것도 다행이다. 넘치는 혈기가 없으니 올해도 어떻게 지나가겠지.


석양이 멋있는 3월이 지나면 이제 겨울이 서서히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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