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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땅연필 Dec 05. 2020

잊혀진 그들의 이름. 그들의 또 다른 이름 부모님.

어머님 아버님 감사합니다.

  기억 저편에 우리들의 울음을 시작으로 그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누구나 겪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삶의 고됨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사랑으로 탄생한 작은 생명이 지금의 우리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삶을 선물해주었다. 그 대가로 그들의 이름은 종이 위의 글씨를 지우듯 점점 흐릿해진다. 그들의 이름은 이제 부모님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존재도 점점 흐릿해진다.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아이는 세상의 중심이 된다. 스스로 몸을 뒤집고, 일어서고, 말이 트이고 이런 작은 행동이 그 어떤 성공보다도 대단하게 여겨진다. 아이에게 낮춰진 기대감 이면에는 세상의 모든 부담을 부모님들이 대신 짊어진 것이다. 그들도 부모가 처음이지만 서툴 순 없다. 바쁘게 돈 벌어야 하고, 완벽하게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 그 일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아무도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는다. 그들의 실수는 이제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완벽한 존재, 아니 그래야 하는 부모가 되어간다.


  아이들은 부모의 젊음을 먹으며 자란다.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들은 점점 늙는다. 아이에게 모든 시선을 뺏긴 그들은 스스로 늙어가는 줄 모른다. 아이들은 자신의 성장에 바쁘다. 아직 부모들의 늙어감이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의 희생은 아직 당연하다. 부모도 뒤돌아볼 여력이 없다. 세상에 나와 부딪히랴, 집에 와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느냐 온전히 자신일 시간이 없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지나오다 보면 어느새 그 아이는 다른 아이를 데리고 온다. 그렇게 아이였던 그들은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난다. 그제야 부모들은 거울을 본다. 그제야 많이 늙은 본인을 마주한다.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는지, 청춘의 시절이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들의 청춘은 어른이 된 아이에게 대물려주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집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난다. 이제야 어딘가 빈자리가 크게 보인다. 자신의 삶에 시선을 빼앗긴 체 살아오던 날들. 자신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인생은 그 빈자리 때문에 가능했던걸 새삼 느낀다. 그 빈자리로 들어오는 삶의 풍파를 겪고 나서야 그동안 내 삶의 풍파를 대신 막고 있느냐 수많은 흉터를 남긴 부모님의 인생이 눈에 들어온다.


항상 옆에 있어 당연했던 존재 부모님.

내가 빼앗은 그들의 젊음.

내가 빼앗은 그들의 시간.

내가 빼앗은 그들의 이름.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빼앗긴 젊은 과 시간. 그리고 그들의 이름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될 순 없지만 부모님들은 그저 전화 한 통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싸구려 목소리 들려주는 짧은 시간이 뭐가 대수랴. 오늘은 전화 한 통 드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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