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현 Jan 05. 2023

사랑이 빚어내는 수많은 무거운 것들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2)>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2)>


✔ 영화 정보 

케빈에 대하여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개봉: 2012.7.26

감독: 린 램지

장르: 드라마, 스릴러, 서스펜스

국가: 영국, 미국





마음이 바깥으로 나와 있지 않다면, 입 안이나 목구멍처럼 피부가 없이 어떠한 관의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상상한 적있다. 군데 군데 부어오르거나 곪거나 헐어서, 허옇고 누렇게 변하여 따갑고 을씨년스러운 것을 이내 다시 매끈한 선홍빛으로 돌려놓는 음료를 우린 사랑이라 이야기 하고 헹구고 삼킨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매번 새로운 세포가 돋게하는 적당한 온도의 무해한 액체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사랑이 지난한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우린 사랑을 음료처럼 섭취하지만, 그 성질은 여러 순간 둔갑하고, 변모한다. 이따금씩 화학책에서나 봄직한 치명적인 액체가 되어 새살을 돋도록 하기는 커녕 되려 멀쩡한 살을 도리고, 상처를 더 깊게 녹여낸다. 어느 때는 정말 생뚱맞도록 도꼬마리처럼 되어 여지 없이 찌른다. 선홍빛을 진한 빨강으로 물들인다.


케빈은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케빈은 사랑을 위해 애썼다.


사랑은 엄마에게서, 태어나 사랑을 처음 접하는 아기에게 직렬의 형태로 흐른다. 탯줄은 끊어냈지만, 애정의 끈이 직접 이어져 있다. 모나지 않은 사랑의 형태를 꼼꼼히 빚어 흘려보낼 시기에 에바는 안일한 사랑을 했고, 케빈은 뒤죽박죽 얼기설기 기워진 사랑으로 헹구고 삼켰다. 사랑이 그리 생겼겠거니 하며 삼켰고, 마음은 붓고 곪고 헌채로 핏빛이 되었다. 아프고 쓰라린 채 그대로 실천한 사랑은 어느새 케빈을 괴물로 만들었다.


에바는 그저 옷의 단추를 한 두개 빠뜨리고 채운 듯 굴었지만, 그것은 케빈에게 묵시록 같은 것이었다. 케빈은 오이디푸스를 자처했고, 기묘하게 고요하다, 기괴한 한방으로 모조리 쏴죽여 없앤다. 엄마만 빼두고.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사랑은,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관계를 맺으며 우리가 빈번히 범하는 실수는 바로 진심에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다. 허나 사고가 온전히 자라지 않은 아기도, 부모의 사랑이 가짜라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진심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으며, 꾸미거나 연기하기란 불가능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바이처와 모든 것, 모든 곳을 한번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