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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현 Jan 01. 2023

슈바이처와 모든 것, 모든 곳을 한번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리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 영화 정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개봉: 2022.10.12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장르: 액션, 코미디

국가: 미국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당대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꾸준히 인류애 실천에 대한 위인으로 거론되는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의사이자, 철학자이며 실제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했던 그는, 삶의 생김새에 대한 다양한 건반을 누르며 수없는 장단조와 계음 사이를 오고갔다. 그리하여 직조한 통찰은 그가 없는 21세기에도 과묵하고 지혜로운 고서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신비롭게도 슈바이처가 사유하고 출산(出産)해낸 말들은, 다니엘 콴 감독의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삶에 관한 따뜻한 골자들과 조립되어 읽힌다. 어김없이 의미란, 동서고금간 끊임없고 유연하게 우리 곁을 흐른다.




1. 조부 투파키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에 앉는다. 그때까지 혼란을 비웃고, 순간을 위해 살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음을 알라. - 알베르트 슈바이처


인간이 고차원의 무언가를 지향한들, 어느 곳에서는 늘 쳇바퀴 돌듯 미숙함으로 회귀한다.


우선 정답을 달라고 채근하며, 확실함이 선사하는 안정감에 몸을 담그고 있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픽셀 하나까지도 매우 선명한 확실함 속에 놓이게 되었을 때는 그 전보다 훨씬 큰 번민에 빠지게 된다. 영화 <컨택트(Arrival, 2016)>와 관련한 글에서 미래를 미리 알게 되는 것이 결국 한 개인에게 재앙임을 이야기한 적 있었다.


언어와 시간, 불안과 소통, 그리고 외계생명체 - 컨택트 (Arrival, 2016) 리뷰  

https://blog.naver.com/hyeon0202c/221957097478

            

<컨택트(Arrival, 2016)>에서 뱅크스(에이미 아담스)의 이야기가 한 인간으로써 매우 숭고히 여겨지듯, 자신에게 있을 비극의 정체를 이미 알고 하루 하루 돌진하는 것만큼 가혹한 벌은 또 없을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에서 조부 투파키가 베이글 속으로 훌쩍 떠나버리려는 이유 또한 매한가지다. 그녀는 본인이 세상 모든 형태의 경험과 진리를 깨우친 상태에 도달했다 여겼고, 어쩌면 그 상태가 평범한 인간이 소원하는 상태일것인데, 그러나 결과는 극심한 허무주의에 갇혀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본래 주어진 능력을 초월하여 필요 이상의 것들을 알게 됨은 필경 개인에게 재앙이다.



2. 에볼린


달에 도달하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발 아래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지 못한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그러니까 영화 속 에볼린은 모든 멀티 버스를 통달하여 넘나드는 전능한 능력을 가진 조부 투파키 조차 깨우치지 못한 진리를 깨우쳐 발화한 셈이다. 모두가 거창한 모양의 진리를 올려다 보며 추앙할 때, 바로 곁의 아름다움('소소하다' 불리지만, 각각이 알맞은 때 응집하여 결국 인생의 행복을 모두 구성하는)을 너무 손쉽게 놓치는 실수를 범한다. 에볼린은, 두 시간 남짓의 러닝타임간 냉소로 가득찬 허무주의의 자아와 생동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따뜻한 삶 속의 자아를 오고가며 자신의 딸의 모습과 함께 공명하는 명제를 찾아냈다. 위에서 올려다 보면 천편일률처럼 여겨질지도 모를 삶의 순간들을 '소중히 하는 것.' 자신의 발 아래에서 피어나는 꽃을 관찰하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감동하는 것. 어쩌면 <컨택트(Arrival, 2016)>에서 뱅크스가 내린 결단과도 닮아있는 것이다.



3. 웨이먼드


끊임없는 친절은 많은 것을 성취한다. 태양이 얼음을 녹이듯 친절은 오해, 불신, 적의가 증발하게 만든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개인주의를 표방하며 기형적인 형태의 공격과 방어를 일삼고, 다정함을 등한시하는 오만함을 범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인간은 망한다. 우린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몰지각한 일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요즈음, 그 어떤 통찰보다 우리가 간직해둬야 할 것은 다정함과 배려이다. 웨이먼드는 세상과 제대로 싸우는 법을 알고 있다. 자신을 담당한 세무조사관에게 미소와 함께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하는 그의 행동은 바보스럽지 않고 위대하다. 골방에서 턱에 힘을 주며, 안간힘으로 애쓰고, 타인의 이해의 조각들을 향하여 어떤 변화를 기원하는 일조차 해본 적 없는 이들은 웨이먼드를 바보같다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다정함은, 끝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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