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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현 Dec 28. 2022

우리네 혼탁한 사랑 관념에 대한 경종

영화 <경계선(Gräns, 2018)>


<경계선(Gräns, 2018)>


✔ 영화 정보 

경계선 ⎮ Gräns

개봉: 2019.11.27

감독: 알리 하바시

장르: 판타지, 멜로, 로맨스, 스릴러

국가: 스웨덴, 덴마크



그것은 우선 납작한 별 모양의 실타래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실이 감겨져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실패만이 아니라 별의 중간에는 횡으로 작은 막대가 돌출해 있고, 이 막대기와 맞닿아 오른쪽 모서리에 또 하나의 막대기가 있다. 그 전체가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는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이것에 관한 더욱 상세한 것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드라데크는 유난히 움직임이 많아서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번갈아가며 천장에 있다가, 계단에 있기도 하고, 복도에 있는가 하면, 현관에 있기도 한다.

우리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넌 이름이 뭐니?"라고 그에게 물을 것이다. "오드라데크" 하고 그가 말한다. "넌 어디서 살지?" "정해지지 않은 집" 하고 말하면서 그는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웃음은 폐를 가지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웃음이다. 그것은 마치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프란츠 카프카, <가장의 근심(The Cares of a Family Man)> 발췌-

밤하늘 질서 없이 산개하여 떠오른 별들조차, 우리는 이어놓아 이름을 붙였다. 사수나 황소 모양 따위로 박제해두지 않으면 광범히 쏟아져 땅을 덮치기라도 하는  알았던걸까.


근심은, 그 정체를 규정하기 어려울 때 그 위해가 증폭된다. 그리고 가장 고차원적인 근심이란 규정할 수 없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근심이다. 선연히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게끔 하는 본인들만의 렌즈 그 안에 무엇이든 넣어두고, 구조화 분류해두어야만 안도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오드라데크는 꾸준히 가장의 수심이 깊도록 만든다. 위험한 것이라면 어떤 짓을 해서든 물리쳐 가정을 지키려는 가장인데, 오드라데크는 일단 적으로써 규정이 안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도 그 외에 어떤 생물의 형태도 아닌 듯 보이고, 행동에 그 어떤 규칙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오드라데크가 죽을 수 있는 존재인지 또한 알 수 없다. 이 세계에서 필멸한다는 만물 공통의 명제로 조차 규정이 불가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추측의 성질을 띤 진단 비슷한 이야기 뿐이다. 이를테면 별 모양의 실타래로 그것의 형상을,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그것의 웃음을 비유하는 것 정도인데 이러한 이야기는 철저한 인간 중심 사고 그 이상이하도 아니라서, 불가해한 그 존재의 무엇도 유력히 설명할 수 없다. 이 대목은 인간이 정해놓은 의미들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깨닫게 한다. 인간의 언어는, 정해놓은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설명해낼 수 없다.


혐오하거나, 우열을 가리고 본성의 형질을 정하기에는,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어느 대상을 타자화하기에는 우리도 그저 하나의 종(種)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티나는 욕구를 연기(演技)해온 셈이다. 문명 틈바구니에서 학습한 인간적 기제들을 그간 커다란 저항없이 실천해왔다. 그러나 1차원적 욕구는 결코 학습될 수 없기에 인간의 본성을 닮은 식생으로 채워진 세상 가운데 불편감을 혹처럼 달고 삶을 그저 유지하는 것이다. 그 불편감이란, 학습해 온 것과는 이질적인 욕구들은 흠칫 흠칫 고개를 드는 한 편, 그 결핍감의 정체를 도통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일테다.


그러니까 사유가 가능한 존재로써, '문명' 속에서 '학습'하며 삶은 모종의 외부로 개방되어 있는 관을 마개로 힘껏 잠그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본래 가진 성질을 혼탁하게 하고, 학습 범위 밖에 있는 본성이라면 억제하도록 하여, 본성의 관성과의 끊임없는 충돌로 인한 번민이 생겨난다.



The truth runs wild

그 사실은 어쩔 수 없는거야

Like a tear down a cheek

뺨 위로 흐르는 눈물처럼 말야

Trying to save face,

괜찮은 척 하려고 해,

and daddy heart break

그러면 아빠는 가슴아파하고

I'm lying through my teeth

나는 새빨간 거짓말을 해


This voice inside

내 안의 목소리가

Has been eating at me

나를 갉아먹고 있어

Trying to replace the love that I fake

내가 속인 사랑을

With what we both need

우리가 필요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해

Without losing a piece of me

내 자신을 잃지 않고서

How do I get to heaven?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어?

Without changing a part of me

내 자신을 바꾸지 않고서

How do I get to heaven?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어?


All my time is wasted

지금까지 모든 시간들이 헛된 것 같아

Feeling like my heart's mistaken, oh

내 심장이 잘못된 것만 같아

So if I'm losing a piece of me

만약 내가 날 잃어야한다면,

Maybe I don't want heaven

난 천국에 가지 않을래


- Troye Sivan - HEAVEN 가사 발췌 -


개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기형적인 학습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느 구시대적 학습은 오드라데크를 규정지으려 했던 한 가장과 마찬가지로, 오드라데크만큼이나 불가해한 본성인 사랑의 형질을 좁다랗게 규정지었다. 동성애자 아티스트 Troye Sivan은 그러한 학습과 사회 속에 놓여진 각고를 슬피 노래했다. 문명을 살며 자아를 실현하는 지극히 인간적 행동이, 누군가에겐 뼈를 깎는 듯했다.


벌레를 먹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까 식욕을 모호히하던 어떤 생명이 벌레를 서슴치 않고 먹게 되었음에도, 결국 인간의 법규 앞에서 보다 근원적인 번민을 맞닥뜨린 끝에 어린 생명에게 벌레를 먹여주는 행위자가 된 것은 놀랍도록 전복적인 사랑의 형태였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인도적 사랑에 대한 고찰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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