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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광 Jun 09. 2020

달리기와 산책, 그 사이 어딘가

작정하고 땀 내기

여름이다. 저녁 일곱 시에도 해가 있어 밝다. 더워진 건 덤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이렇게 더울 때면 해가 진 저녁시간이 더 기다려진다. 더위 사이를 헤집고 부는 바람에서 선선함을 느끼기 좋다. 요즘처럼 공기가 좋을 때는 그 바람이 더욱 반갑다. 오늘따라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밖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 복싱체육관만 가다가 모처럼 나가서 뛰어볼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정하고 땀을 낼 각오로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때마침 저녁을 든든히 먹어 배를 좀 비울 필요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본격적인 길에 나서기 전, 핸드폰을 체크했다. 제일 먼저 음악. 신나는 힙합으로 고를까 했지만 너무 신을 내면 금방 지칠 것 같아 발라드로 선회했다. 그리고 움직인 거리를 알려주는 앱을 켰다. 시간, 거리를 계산해 평균속도와 소모한 칼로리까지 알려주는 앱이다. 이것 덕분에 더 뛸 맛이 난다.

자전거도로 반, 인도 반. 그리고 저 멀리엔 송파구 어디서나 보인다는 '사우론의 탑'




서울은 마땅히 뛸 곳이 없다. 아파트 단지 내를 제외하면 대부분 ‘차 친화적’ 도로다.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걸어가면 지나치기가 어려운 인도가 많다. 여기에 전동 킥보드나 자전거가 인도로 달리면 비켜줘야 한다. 그러면 또 달릴 도로는 좁아진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 뛰기 좋은 곳이 있다. 넓은 도로 옆 인도 쪽에 가로수 조성을 잘해놨다. 반쪽이 자전거도로여서 다른 반쪽만 써야 하는 게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다른 어딘가로 뛰어가는 것보단 이 길이 있는 블록을 여러 바퀴 도는 게 내 기본 달리기 코스다.


바람이 좋은 건 나만 느낀 게 아니었나 보다. 오늘따라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여럿, 그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또 여럿. 출근복장을 하고 집에 가는 길로 보이는 사람들, 가방 메고 교복 입고 어딘가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저마다 목적은 달라도 같은 도로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한껏 맞았다. 


총 세 바퀴를 돌았는데, 매 바퀴마다 지나친 한 모녀가 기억에 남는다. 비슷한 키, 비슷한 뒷모습으로 친근하게 산책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직 학생인 딸이 어머니에게 정말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래서 딸이 좋다고들 하는구나.





뛰는 건 간만이어서 그런지 달리다 걷다가를 반복했다. 달리기라 하기도, 산책이라 하기도 애매한 무엇. 그래도 계획한 대로 땀은 흠뻑 났으니 성공적이었다. 음, 그거면 됐지.


한계에 다다라 핸드폰을 확인하니 움직인 거리가 3km 조금 넘었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를 들이키며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리 많이 뛴 건 아니었는데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뭐든 자주 하고 꾸준히 해야 된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그래도 땀 한 번 쫙 흘리고 나서 찬물로 샤워를 하니 세상 더위를 다 까먹은 기분이었다. 이거야말로 땀 흘리는 재미가 아닐까. 역시 운동은 밖에서 하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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