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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메트리오 Dec 12. 2020

준비만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인도 델리에서의 인턴십 첫번째 이야기

긴 시간 끝에 군에서 전역을 하고 인턴십을 구하기 시작했다. 군에 있을 때 자유롭지 못해 답답한 느낌이 많이 들었고 해외의 싱크탱크 연구소나 NGO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로망이 예전부터 있어서 싱가포르부터 파나마까지 다양한 국가의 싱크탱크와 NGO에 지원했다. 나름 준비를 해서 2차까지 붙은 곳도 있었으나 결국에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낙담할 무렵 인도 지사의 경제 관련 싱크탱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친구가 지원해보라고 해 무심결에 지원을 한 곳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연락이 와서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기회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해 인터뷰 예상 질문을 뽑아보고 연습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1주일 후 합격됐다는 통보를 받고 기쁨과 안도감으로 찼다. 일하고 싶은 곳에 들어갔다는 기쁨과 전역 이후 변변한 직장에 입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의 해소로 인한 안도감으로. 그리고는 곧 놀라움으로 이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인도에서 인턴십을 한다고? 이런 식으로 인도와 마주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합격 이후 한동안 서류와 씨름했다. 계약서를 읽어본 후 동의한다는 사인을 하고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직업 비자 신청 과정을 거쳤다. 이후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평소보다 챙길 게 많았다. 우선 델리의 특이한 날씨 때문에 챙겨야 할 옷이 너무나도 많았다. 12월부터 5월까지 인턴십을 하기로 했는데 3월만 해도 최저 기온이 18℃ 근처인 반면 최고 기온이 30℃ 초반을 상회하는 기상천외한 일교차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봄·여름·가을옷을 한꺼번에 챙겨야 되는 상황이었다. 7월과 8월에는 최고 기온이 무려 50℃를 훌쩍 넘는다는 기상예보를 보고 그 전에 인턴십이 끝나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스크를 많이 챙겼는데 인도는 겨울철에 미세 먼지가 너무나도 많아 마스크 없이는 돌아다니는 게 불가능했다. 참고로 델리는 작년 2019년 전 세계에서 미세먼지로 5위를 차지한 불명예를 안고 있다. 실제로 델리에서 지내면서 미세먼지 아니면 더위 둘 중에 하나를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많이 들었다. 가끔은 이 주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면서 토론을 벌인 적도 있었다. 둘 다 고르기 싫다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아웃됐다. 옷과 마스크만 해도 짐이 한가득이다 보니 아무리 큰 짐가방이라 해도 모든 게 들어갈 턱이 없었다. 백팩 가방, 회사용 가방까지 거들어 꾸역꾸역 짐을 넣었다. 캐리어는 주머니 쪽이 불룩해져 잘못하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또 다른 준비 과정으로 숙소를 잡는 거였는데 회사가 기숙사를 따로 제공하지 않아서 꼭 해야 했다. 작은 집을 통째로 월세로 빌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과정이 복잡해서 대안으로 에어비앤비 숙소를 택했다. 그런데 숙소를 정하고 나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로 숙소의 장소. 정확히 말하자면 사이트에 나온 숙소의 주소지와 호스트가 메시지로 보낸 숙소의 주소지가 달랐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는 숙소가 Ansal Plaza라는 광장 안에 있다고 표시가 떴다. 그런데 인도로 출국하기 전에 호스트한테 물어보고 주소지를 구글 지도에 넣어보니 Ansal Plaza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있었다. 당황한 나는 어느 주소지가 정확하냐고 물어봄과 동시에 출국하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몰랐으면 어떻게 됐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스트는 미안하다며 정중히 사과했고 이 일은 일단락 났다. 그런데 곧바로 호스트가 여권 복사본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규정상 인도로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은 숙소의 유형에 관계없이 24시간 이내에 FRRO라는 부서로 온라인 서류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일환으로 여권과 비자 내용을 복사해서 보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에는 주민등록번호와 여권 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많다. 그래서 곤란하다고 말했더니 규정을 어기면 둘 다 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에어비엔비 메시지로 서로 핑퐁만 주고받자 신원을 확실히 밝히면 호스트가 나를 신뢰하지 않을까 싶어서 화상 통화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대화를 하면서 국적을 밝히고 인턴십을 목적으로 인도로 가기 때문에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강조를 했다. 그러면서 여권 복사본을 비롯해 필요한 문서를 미리 구비할 테니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같이 서류 작업을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관례 상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여러 번의 설득 끝에 드디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호스트가 깐깐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앞으로 델리에서 벌어질 전초전이라는 점은 모른 채.



산 넘고 산 넘어를 반복하며 몇 주간의 준비 과정 끝에 드디어 델리 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보통 여행을 가면 기대로 가득하지만 이번에는 들뜬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8시간의 비행 끝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밤 9시. 그 시간대에 혼자 택시를 타면 안전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미리 예약한 공항 호텔에서 머물렀다. 온갖 걱정거리, 새로운 언어와 사람들, 시차 때문에 그런지 피곤해서 짐도 대충 풀고 옷 갈아입고 샤워하고는 바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호스트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대에 맞춰 체크아웃을 하고 택시를 예약했다. 택시를 타고 호텔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풍경이 달라졌다. 조용한 호텔은 온데간데없고 큰 대로변에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리는 차로 귀가 멍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호텔에서 나오면서 나쁜 공기를 접한 탓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없는 왕복 8차로에 사람들이 달리는 차를 가로지르며 도로를 건너는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욱한 안개와 미세먼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에서 빠르게 달리는 택시를 보면서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택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진 않았다는 것. 나중에 택시를 계속 타보면서 이 또한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서 와 인도는 처음이지"를 뛰어넘어 "어서 와 이런 난장판은 처음이지"로 초대된 걸까? 지금도 처음 인도의 민낯을 봤을 때의 충격과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델리의 대학가 근처 밤 풍경. 오토바이, 차, 릭샤가 도로에 같이 달리고 있다. 여기는 횡단보도가 있지만 없는 구간도 있다.


호스트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일이 벌어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겠다고 인턴십 시작 날짜보다 일주일 앞당겨서 갔는데 과연 이런 곳에서 적응을 할 수 있을까? 며칠도, 몇 주일도 아니라 무려 여섯 달을 지낼 건데. 걱정이 현실로 되고 그런 현실 앞에 한숨만 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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