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기다림 끝에 올해 처음 서울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한동안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낮게 되길 빌면서 계속 미루다가 이러다가는 올해 안에 못 갈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침 서울에 단풍이 한창 물들기 시작해 여행이 간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지인들 대부분 서울에 있지만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드물었다. 때문에 이번에는 여러 사람 만나는 것에 초점을 두면서 단풍 여행을 하는 식으로 맞췄다. 이번이 아니면 올해 서울에 갈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이 들면서 어느 때보다도 여행 계획과 동선을 철저히 짰다.
첫날에는 친동생과 같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석파정과 색색의 단풍으로 절정기를 맞이한 길상사를 방문했다. 고요한 절간 뒤에 놓인 단풍이 지금도 가끔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둘째 날에는 군대에서 알게 된 수녀님과 동생을 만나 미아동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동대문플라자와 을지로 일대를 종일 걸어 다녔다. 셋째 날에는 옛날부터 자리 잡고 있던 학림다방에서 친구를 만나 성균관대를 쭉 돌았다. 그러고 나서 왕십리로 방향을 틀어 동생과 한양대 캠퍼스를 걸어 다녔다. 넷째 날에는 서울숲에서 간밤에 떨어진 은행잎이 수놓은 노란 길을 감상하다 또 다른 동생을 인사동에서 만나 문화의 거리를 활보했다. 4박 5일간의 일정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최소 1년 넘게 못 본 지인을 오랜만에 맞이했을 때의 반가움이었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까라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연스레 대화가 술술 흘렀다. 마스크를 쓰는 것 빼고는 전과 다를 게 없었던 만남.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얘기도 나왔지만 확실히 과거 얘기가 나왔을 때 다들 재밌어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하나씩 꺼내면서 그리운 옛날에 대한 향수병도 들었다.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300명대를 넘더니 급기야 500명대로 훌쩍 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당분간 서울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지인을 만나면서 단풍 구경을 제때 하고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안도감은 이내 성큼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날씨가 추워서 여행을 비롯해 지인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힘들고 지친 일상의 활력소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사실 이런 식의 패턴은 계속 반복되었다. 가족여행이던, 혼자서 가는 여행이던, 친구랑 가는 여행이든 간에 여행 갈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갔다 오고 나서는 처진 느낌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평상시라면 월요병에서 그칠 것이 이제는 매일 월요병에 걸린 마냥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심할 때는 신세 한탄이라는 증상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일이 예전처럼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몸은 2020년 11월에 머물러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해외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던 2020년 3월에 멈춰 있었다. 이러다 내년에도 똑같이 이러고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1년의 괴리감도 크게 느껴지는데 2년 차 됐을 때도 똑같은 상태에서 머물게 되면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몸과 마음의 괴리감에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버에서 인터넷 뉴스를 봤는데 "지옥 같던 그때, 차라리 코로나19 이전이 천국이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너무나도 와 닿는 제목이라 주저 없이 클릭했다. 그런데 기자가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시민들 삶을 취재한 게 아니었다. "엄기호의 사건의 사회학: 재난 이후 과거를 낭만화하는 '레트로토피아', '이후의 이전'을 극복해야 '이후의 이후'가 온다". 시작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이후의 이전에 갇혀있는 나에게 마치 기자가 일침을 날리는 듯했다. 서론에서 기사는 사람들이 이전의 삶을 그리워한다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숨 쉬며 살던 삶, 친구들과 술집에서 만나 침 튀겨가며 얘기하고, 시간 나면 여기저기 여행하며 낯선 사람과 어울리던 그런 삶이 무엇보다 그립다고 언급했다. '그래. 우리가 그리워하는 게 별다른 게 아니라 일상에서 하는 건데 왜 코로나가 일상의 행복을 앗아갔지?' 근데 내가 예전에 이런 활동을 하면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솔직히 아니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평소에는 감사함이 없다. 그러다 손실을 겪어보고 난 뒤에야 정말로 소중한 것임을 깨달으면서 예전이 좋았다고 한다. 군대 가기 전에는 일상의 자유를 당연시하다가 근무를 비롯해 사역, 청소, 점호 등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에 코로나를 겪지 않았다면 최근에 다녀온 서울 여행이 그렇게 재밌게 느껴졌을까?
본론에서는 재난을 당한 뒤 이후의 삶을 특징짓는 건 혼란과 고통이며 사람들이 그간 경험으로 축적한 유형 체계가 무너진다고 얘기한다. 삶의 대부분은 익숙한 사람과 사건, 또는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율주행' 모드로 살아가는데 재난은 이러한 자율주행 모드에 제동을 건다. 맨바닥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일일이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하고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면서 고통스러운 사유 과정을 거치는 대신 '배 째라’가 나오고 ‘운명론’이 등장한다. 현재의 삶이 위축되면서 비로소 과거의 삶이 자유로운 삶이었다고 회상하게 되면서 과거를 낭만화한다. 읽으면서 기자가 내 마음을 들춘 거 같아 내심 부끄러웠다.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들어맞는다. 새로운 판에는 새로운 규칙을 짜야 되는 점을 알면서도 그게 싫거나 귀찮아서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기보다 익숙한 것에 매달리고 있었다. 집에서 요리해야 할 상황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나 배달에 의존하는 점.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하지 못한다 싶어 옛날 여행 영상만 보면서 새로운 방식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점. 언택트가 자리 잡히면서 필수가 된 IT 지식 함양과 코딩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던 점. 옛날 시트콤 대표 격인 프렌즈를 돌려보면서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빠져드는 것까지 쳐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다.
끝으로 재난이 종식된다고 해도 이전 삶에 회귀하고 집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해야 하며 상실에만 초점을 둔 레트로토피아적 사고를 버리라고 기사는 촉구한다. 몸과 마음의 시간 격차로 불균형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후의 이후’라고 부르는 시간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두 시공간이 동시에 극복돼야 한다. 하나는 상실된 채 살아가는 이 혼란스러운 이후의 삶, 그리고 또 하나는 이후의 삶을 배태한 이전의 삶이다. ‘이후의 이후’란 ‘이후’만이 아니라 ‘이후의 이전’을 극복하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이행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전 삶’을 낭만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삶’에서 드러난 ‘이전 삶’의 암흑을 직시하며 미래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후의 이후'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상실로 뒤덮일 이후가 어떠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후의 이후'를 안고 가는 건 실로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함을 인간이 좋아할 리가 없다. 매일매일이 예상 불가능한 날로 채워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저 문장을 곧이곧대로 읽는다면 왠지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느낄 수 있지만 기존의 습관을 고치거나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게 '이후의 이후'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행위 자체가 '이후의 이후'로 한 발씩 떼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로 새로 들인 습관 중 하나는 일부러 매주 1명씩 화상채팅 일정을 잡는 것이다. 전에도 화상채팅을 했지만 빈도도 훨씬 낮았고 아주 친한 사람하고만 했지 그 외에는 할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판의 등장으로 강제로 단절을 겪으면서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아주 친하지 않다 해도 얼굴 보는 사이라면 화상채팅이 어색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작은 변화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로 인한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날짜를 잡으면 그 날이 다가오는 게 기대가 됐다. 그리고 화상채팅 대상의 폭을 넓히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와 관점을 경청할 수 있게 되었다. 제각각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정심이 들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집어내 놀라움이 들기도 했다. 덤으로 해외에 있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해외에 있는 듯한 느낌도 간혹 들었다.
이제 벌써 12월이다. 곧 있으면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하게 된다. 2021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이후의 이후'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한다. 하지만 혹여 2020년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자책하지도 않을 거다. 향수병은 예전부터 존재했었고 우리는 지금까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왔으니까. 새로운 판이 불러들인 변화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되 이 과정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려 한다.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존의 습관을 고치고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데 노력하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