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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메트리오 Nov 08. 2020

순천만 습지: 때 묻지 않은 자연

지난번 서울대공원 여행에서 단풍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억새로 놓인 호수가였다. 그 여행을 계기로 갈대나 억새를 볼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본 결과 순천만 습지를 여행하기로 했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더불어 대표 여행지인만큼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이동해 종합터미널에서 내렸다. 걸어서 가면 시장이 줄지어 보였는데 먹음직스러운 옛날식 과자부터 시작해 참기름, 나물, 생선 등 각종 냄새가 둘러쌌다. 전에 코로나로 인해 사람 사이의 교류가 줄면서 타격을 크게 입은 곳 중 하나가 시장이라고 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서 혹시나 시장이 썰렁하진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에 도착해 허기를 달리기 위해 시장 바깥쪽에 있는 건봉 국밥이라는 식당에 가서 순대와 순대국밥을 시켰다. 밑반찬이 양은 쟁반 위에 나오고 곧이어 주문한 게 나왔다. 순대를 보통 전라도서는 초장과, 경상도에서는 막장 (또는 쌈장), 서울과 수도권에는 소금과 찍어서 먹는데 3가지 양념이 다 있길래 하나씩 찍어봤다. 소금하고 막장은 예전에도 먹어본 적이 있어서 별 무리가 없었는데 초장에 찍어먹을 때의 새콤한 맛이 생뚱맞아 적응하기 힘들었다. 순대는 짭조름한 양념에 찍어서 먹어야 맛있다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가? 초장에 찍어먹는 건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하고 초장이 담긴 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익숙한 습관을 바꾸기가 힘든데 음식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나중에는 초장에도 잘 찍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처음 순대국밥을 접했을 때는 아예 입에 대지도 못했다. '국물에 순대를 넣는다고? 식감이 흐물흐물해지고 맛없을 텐데?' 보기에도 온갖 잡다한 게 들어간 못생긴 잡탕이라 순대국밥을 내치고 다른 음식에 손을 댔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지금은 잘만 먹는다. "순대가 맛있는 집이라 순대국밥도 맛있네." 하면서 한 그릇을 싹 비웠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대망의 장소로 이동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산 다음 산책로를 따라 가봤는데 다리를 지나는 순간 광활한 갈대밭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갈대밭이 자연을 맘껏 즐기면서 쉬어가라고 했다. 올해 힘들었던 시간과 함께 묵혔던 속이 잠시나마 뻥 뚫렸다. 사이사이 난 데크 산책로로 갈대밭을 찬찬히 감상하면서 다시 한번 드넓은 공간에 감탄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광활한 풍경을 보기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걸어가면서 이국적인 풍경도 드문드문 나왔다. 어떻게 보면 습지가 아니라 평원에 온 듯하기도 했다. 산자락과 함께 넓은 지대에서 뛰어노는 동물들과 같은 배경이 왠지 이 곳과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갯벌과 함께 수십 마리의 오리가 떼 지어 몰리는 진풍경이 보였다. 그제야 습지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군데군데 철새도 눈에 보였다.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풍경이 형성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갈대밭을 돌고 바다의 단풍이라 불리는 칠면초 (습지에 사는 한해살이풀)를 보러 가기 위해 용산전망대 쪽으로 올라갔다. 전망대는 산 위에 위치하는데 오랜만에 신행길에 올라서서 그런지 힘이 꽤 들었다. 중간에 벤치에서 쉬었다가 마저 남은 길을 올라가는데 명상의 길과 다리 아픈 길이라는 두 갈래가 나왔다. 다리 아픈 길을 간 블로거가 진짜로 다리 아픈 길이라면서 명상의 길을 가라고 해서 주저하지 않고 명상의 길을 택했다. 오르막내리막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도착한 전망대. 이때가 오후 5시 가까이라 해가 막 지기 시작해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칠면초는 절정을 지나서 붉은색보다는 자주색에 가까웠다. 칠면초의 색감은 아쉬웠지만 전망대에서 보이는 순천만 습지는 특이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 형성된 갯벌과 습지, 그리고 바다. 그 사이로 배 한 척이 유유히 지나갔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 순천만 습지는 오후 5시부터 입장을 금하고 7시부터는 갈대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들한테 숨을 쉴 틈은 줘야지. 미래에도 이런 모습을 유지하려면  정도의 휴식 간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시간이 급했지만 떠나는 게 아쉬워 갯벌을 다시 봤는데 약속이나 한 듯 오리가 일렬로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구름이 많이 끼어 해와 충돌하면서 하늘에 특이한 풍경을 선사했다. 땅과 하늘 모두 아름다워지는 순간. 순천만 습지는 떠나기 전 한 번만 더 보고 가라며 마지막까지 발길을 붙잡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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