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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메트리오 Sep 28. 2020

첫인상이 주는 오판

미국 롤리 첫 번째 이야기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롤리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한 번 놀러 오라고. 그 후 몇 년이 흘렸지만 마음 한 켠에는 미국 여행을 하면 롤리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직접 대면한 지는 무려 6년이 넘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리고 남부 도시인 롤리는 어떠한 분위기를 자아낼지 궁금했다. 그간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등 북부의 도시들을  본 적은 있지만 남부 도시를 방문한 적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결심을 세우고 롤리로 여행을 떠났다. 인천에서 워싱턴 DC로 가는 비행기를 탄 다음 롤리로 가는 표를 끊고 기차를 타게 됐다. 기차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창문을 통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차로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지만 장거리 여행의 경우 많은 시간을 도로에 할애하기 때문에 목적지의 중간 지점들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기차는 다르다. 목적지로 가는 길을 따라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처음에는 워싱턴 DC 특유의 낮은 건물이 줄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워싱턴 근처의 위성도시들을 지나치면서 높은 빌딩들을 마주하게 됐다. 기차가 남쪽으로 달릴수록 점점 시골 풍경이 나오기 시작했다. 빈민가 근처를 지나가면 대낮인데도 휑한 느낌이 가득했다. 밤에는 어떨지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빈민가 사람들의 표정이 찌들어져 있는 가운데 아이들만큼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래, 아이들이라도 즐거워해야지. 이 세상에 아이들마저 웃지 않으면 얼마나 척박할까.



또 다른 묘미는 간식에 있다. 지금은 추억의 한 편으로 자리 잡혔지만 우리나라는 최근까지 간식 카트와 카페 열차가 있었다. 간식 카트는 기차 승무원이 카트를 끌고 다니면 승객이 카트 안에 있는 간식을 살 수 있었다. 간식 종류가 삶은 달걀부터 바나나우유까지 꽤 다양했던 걸로 기억한다. 카페 열차는 기차 한 칸을 카페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일반 카페처럼 메뉴가 있고 승객이 선택을 하는 방식. 미국 기차의 구조는 카페 열차식 구조다. 맨 끝 칸에 가면 샌드위치, 핫도그, 머핀을 비롯해 인스턴트커피, 탄산음료를 판매한다. 롤리로 가는 기차 카페칸에서 핫도그를 사서 먹었는데 왜 이렇게 맛있던지. 야외 수영장에서 핫바를 먹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분명히 평범한 핫도그인데 기차 안 분위기 때문인지 들떠서 그런 건지 맛이 다르다. 지금은 어떨까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여전히 운영하고 있다.



기차로 바라본 롤리의 첫인상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남부에 있어 시골일 거라 속단했는데 인구가 50만에 가까운 도시였다. 70만 인구를 가진 보스턴 시와 규모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 놀랐다. 그렇지만 두 도시 사이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보스턴과 다르게 좁은 골목과 통로가 별로 없고 도로가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다. "나는 신도시야."라고 뽐내는 듯한 느낌. 예상과 다른 첫인상에 놀라고는 곧 롤리 역에 도착했다. 친구가 역 앞에 마중 나왔다고 해서 역 앞까지 짐을 끌고 드디어 친구를 만나게 됐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너무 반가웠다. 서로 안부를 묻고 요새 뭐 하면서 지내는지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다 옛날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옛날 얘기는 항상 단골로 나오는 듯하다. 몇 년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인상 깊은 일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얘기를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임박해서 식당에서 밥을 먼저 먹고 친구 집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정통 남부 스타일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고 해서 남부 요리를 잘한다는 데로 데려갔다.



식당에 들어가니 먼저 빨간색 테이블에 눈길이 간다. 바닥은 흰색과 검은색 타일이 번갈아 있어 마치 바둑알을 연상한다. 오픈 키친은 유리와 철제로 되어 있고 치지직 소리를 내며 팬으로 무언가를 굽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머지는 목재로 되어 있다. 나무로 만든 의자, 바 테이블, 맥주잔 수십 개를 걸어놓은 천장. 되게 이질적인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어보니 컨트리 음악이다. 기타와 함께 들리는 아티스트 특유의 껄렁한 목소리. 남부에 왔다는 게 실감 난 순간이었다.


스테이크에 그레이비소스가 올려진 매쉬드 포테이토


메뉴판을 펼쳐보니 고기 메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튀긴 음식. 치즈가 들어간 메뉴도 드문드문 보였다. 어떤 친구가 남부에서는 피클을 튀겨 먹는다고 말해서 반신반의한 적이 있었는데 메뉴판을 보고 난 이후에는 확실히 믿을 수 있었다. '이런 걸 튀겨 먹는다고?' 할 정도로 특이한 메뉴도 있었으니까. 메뉴를 계속 둘러보다가 핫 칠리 수프를 발견하고는 이걸 시킬까 고민을 했다. 많이 먹어본 적이 있고 미국에서는 흔한 음식으로 북부 남부 안 가리고 많은 사람이 즐긴다. 보통 강낭콩에 토마토퓌레를 얹어 칠리 파우더로 맵기를 조절하는데 여기다가 빵이나 옥수수 칩을 찍어먹으면 맛이 예술이다. 하지만 이번 목적은 남부의 맛을 제대로 보는 것인 만큼, 남부식 스테이크에 매쉬드 포테이토를 시켰다.



곧이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웬걸. 정말로 스테이크랑 그레이비소스가 올려진 감자밖에 없었다. 그레이비소스는 육류를 철판에 구울 때 생기는 국물에 후추·소금·캐러멜 등으로 조미한 소스로, 미국에서는 간혹 감자에 이걸 넣기도 한다. 가니쉬라도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심플하다 못해 허접해 보이는 음식에 실망하고는 스테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후추, 소금, 버터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간 것 같았는데 질이 좋아서 고기 특유의 식감이 살아 있었다. 그다음 매쉬드 포테이토 맛을 봤는데 둘의 조화가 좋았다. 스테이크만 계속 먹다 보면 약간 느끼할 수 있는데 감자가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의외의 면이 있었다. 야채가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사람은 시각의 동물이라더니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을 내렸다. 음식만 해도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 첫인상으로 사람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얼마나 쉬울까.



친구 집에 도착하고 나서 먼저 짐을 풀고 침대용 매트리스를 깔았다. 그러고는 마저 못한 얘기를 하고 오랜만에 같이 게임을 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롤리에서 지내는 다음 날이 어떨지 기대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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