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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Nov 27. 2021

엄마는 왜 남의 말만 들어?

빗나가는 사랑


- 안 오니?

- 안 가.

- 너, 이러다 후회한다.

-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






 친정엄마가 여든한 살을 살아온 생신 날이다. 각자의 바쁜 시간을 잠시 멈춰 놓고 친정집으로 시곗바늘을 맞추어 놓았다. 막내 여동생 가족들이 오고, 둘째 제부와 조카가 들어오는데 둘째 여동생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은근히 둘째를 기다리는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그렇지, 못된 기집애.' 나 또한 섭섭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둘째 여동생의 고집은 엄마의 고집 이상이었다.

 발단은 추석 날에 일어났다. 아버지의 삼 형제 중 셋째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둘째는 몸이 아프고, 그래서 아버지 혼자 차례를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근처에 사는 둘째 여동생이 상차림을 도우려고 일찍 친정집에 왔다. 차례까지 잘 지내고 나와 막내 여동생네를 기다리는 동안 모녀의 언쟁이 발발했다.

엄마가 며칠 전부터 다리가 찌릿하고 저려서 잠을 잘 못 주무셨다는 것이다. 동생은 병원에 가서 신경외과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엄마는 주변의 연세 드신 분들이 얘기하는데 침 맞으면 낫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침 맞으려고 한다고 얘기하고, 동생은 그것은 일시적인 방법이니 원인을 찾으려면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대응했다. 엄마는 내가 더 잘 알지, 네가 더 잘 아냐?, 동생은 엄마는 왜 맨날 딸들 말은 안 듣고 다른 사람들 말만 듣냐? 그러면서 점점 수위 높은 언쟁이 벌어졌다. 

사실 엄마랑 얘기하다 보면 속된 말로 열불이 날 때가 많다. 주변 사람들의 말은 높여주고, 우리 가족들의 말은 다 헛된 말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불신감이 오랫동안 몸에 밴 나쁜 습성이다. 그것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서늘해질 때가 많다.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언쟁이 높아지려고 하면 나는 그만 포기하고, 엄마가 편한 대로, 좋을 대로 하라고 자리를 피한다. 절대 엄마를 설득할 수 없다. 그러나 둘째는 전쟁을 선포하듯 서로 하고 싶은 말의 폭탄을 서슴없이 던져댄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전쟁터가 된다. 

 사실 엄마,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둘째 동생이 으뜸일 것이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일 먼저 챙기고, 제일 먼저 발 빠르게 행동한다. 때론 이런 동생이 있어서 언니로서는 얼마나 고맙고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동생은 성실하고 열정이 많다.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동생이기도 하다. 

 

 엄마와 우리들 사이의 사랑은 자주 빗나갔다. 똑같은 곳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모녀간에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엄마의 시선은 늘 타인 쪽이다. 우리들이 권유하는 것들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질 때가 있다. 결국 목소리가 큰 엄마에게 자포자기해 버리면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고 씁쓸하기 짝이 없다. 똑같은 권유에도 타인의 말엔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누구누구가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 하면 우리가 전에 말했잖아, 그러면 언제? 전혀 듣지 못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렇듯 엄마하고 조근조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옛일이 되어버린 지금, 둘째 동생은 포기가 안 된다. 끝까지 신경외과를 고수한 동생은 결국 폭발이 되어 다시는 엄마 집에 안 오고, 다시는 엄마를 안 보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내게 전화해서 다시는 자기에게 엄마 집에 가자는 소리는 하지 말라며 울컥울컥 울음을 삼킨다.

"엄마가 이제 많이 늙으셨잖아. 우리가 이해해야지."

"늙었으니까 우리말을 더 잘 들어야지. 왜 남의 말만 듣냐고! 우리가 더 엄마를 생각하고 더 걱정하지, 남들이 더 알아준대? 앞으로는 절대 엄마를 볼 일은 없을 거야!"

 맞다. 맞는 말이다. 엄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지. 엄마가 잘못될까 봐 더 노심초사하는 건 우리지.

엄마가 아프면 우리는 더 아프지. 그러니까 제대로 검사를 받고 제대로 치료받자는데 그게 뭐라고 38선을 긋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건지. 

 엄마는 기다린다. 화가 누그러지면 오겠지 싶어 문소리만 나면 찌릿한 다리로 일어선다. 동생은 추석 연휴 동안 제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고치처럼 꼼짝을 않고 있었다.

 

 엄마를 축하하는 자리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하나가 빠져 있다. 임플란트 한다고 앞니 하나를 뺀 그 자리가 허전한 지 자꾸 혀로 확인하며 광대처럼 웃는다, 우리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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