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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선생 Aug 03. 2020

다른 생명과 함께 한다는 것




  작가 김영하는 “살아보니 친구는 중요치 않다”며, 그의 산문집을 통해 친구와의 만남에 쏟은 지난 시간을 차라리 자신의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일들에 더 썼어야 했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의 글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오랜 벗과의 해후에 설레어하는 나 자신을 제어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지만,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와 같은 생각을 곱씹게 되는 건 사실이다. 불혹 언저리에 이르고 보니, 만남이라는 행위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다못해 작은 논쟁의 불씨라도 지펴져, 헤어진 후에도 서로 무언가 생각하고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 혹은 계산 하나쯤은 품게 되는 탓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이뤄진 친구 김 모와의 만남, 그리고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분명 그랬다.




  그는 꽤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낸 친구다. 부모님을 여읜 후 형제들과 떨어져 원룸 생활을 시작한 지 일곱 해가 지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릴 생각조차 못할 만큼 정신없이 살아왔다. 꽤 힘든 환경을 무던히 버텨낸 존경스럽고 고마운 벗이지만, 한편으로 아픈 손가락 같은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지켜본 그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늘 자신을 둘러싼 팍팍한 환경과 시름하며 형제들을 도와야 했고, 항상 시간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인간미 없는 주변인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나 애완동물 한 마리 키워볼까. 강아지가 좋을 것 같은데......


“네가? 갑자기 왜? 너 동물 싫어하잖아.”

   삶이 지독히 강요하지 않은 한, 그는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는 것에 항상 부담을 느껴왔다. 때로는 거추장스러워했고, 심지어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를 둘러싼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지 않는바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그가 늘 안쓰러웠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불쑥 던진 말은, 그래서 놀라웠다.


“요샌 나이가 들어 그런지 많이 적적하고 외롭다. 혼자 사는 사람들 보니까 많이들 키우데. 집에 가면 꼬리 흔들어주고 애교 부리는 거 보니까 부럽더라. 잠깐이나마 집에 있는 동안은 나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싶고...”


“그런 얘기는 네게서 평생 못 들을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까지 한 걸 보니 많이 외롭나 보네. 그런데 그거, 생각보다 쉽지 않아. 신중해야 해”

  그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내, 나와 지냈던 강아지와 고양이의 얘기를 요청했고 경청했다. 특히 아버지가 암수술을 받으시고 퇴원하셨을 때, 강아지가 수술부위를 쉴 새 없이 핥으며 곁을 지킨 대목에서는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헤어진 다음 날, 그는 출근하기 무섭게 어디서 어떻게 분양받아야 하는지, 사료비와 진료비는 얼마가 드는지, 훈련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메신저를 통해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예전의 그 라면 상상할 수 없는 관심과 적극성이었다.


  나는 다른 개체의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동질감을 느낀다거나 공통의 화제로 소통하는 즐거움도 이유겠지만, 생명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생태학적 인식의 공유를 통해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우리의 우정에 이런 유대감까지 더해진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답변 요청을 받고 쉬이 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아직 혼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함께 지내는 생명들은 하나같이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집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매 순간 내 뒤를 쫓는다.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일을 하고 TV를 볼 때도, 그들은 오직 나만 바라본다. 그들에게는 나와 소통하고 공유하고 교감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나와 삶을 함께하기로 한 순간부터,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은 그들에게 무의미하다. 나 또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에, 그들을 기꺼이 가족으로 대한다. 나는 그 안에서 사랑과 위로를 얻고, 다시 그것을 그들과 나눈다.



  나는 그들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공존할 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들보다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생명으로서, 그들은 나와 동등하다. 내 믿음은 때때로 인간 중심의 사고 혹은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부정되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피로감에 못 이겨 내 믿음을 거둘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 생명들은 그 어떠한 사고와 세계관 안에서도, 지금보다 조금 더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의 질문에 흔쾌히 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생명이 느껴야 할 외로움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의 상태와 감정을 살피고, 식사를 챙기며 배설물을 치우는 등의 행위를 자신의 목적에 따르는 대가 정도로 생각했다.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그의 생각 속에서, 다른 생명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그 어떤 진지한 고민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그가 혼자인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거나, 그의 생각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내겐 그래야 할 이유도, 그럴 자격도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생명과 존재에 대한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나는 그저 그가 혼자인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세마리의 반려동물을 한번에 입양해 그들이 외롭지 않게 해달라 권할 수도 없었다.


  ‘애완동물이나 한 마리 키워’서라도 삶의 작은 위로가 필요했던 힘든 친구에게, ‘네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상심이 걱정됐다. 그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가 좋은 사람이며 내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생명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는 것으로, 그의 요청에 대한 답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리고 족히 한나절을 고민한 끝에, 나는 비로소 그에게 전할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네가 반려동물을 입양할 준비가 될 때까지, 스스로를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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