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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레야맘 Jun 07. 2023

일곱 살 일기, 에바는 부자다

친구들이 부자라면 어떤 기분일까

아이 친구집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정말 우연히 초대받은 날이 아이 생일 다음날이었는데, 고맙게도 선물과 케이크를 준비해 노래도 함께 부르며 축하해 주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라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잘 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선물로 받은 팔찌는 금팔찌, 그것도 18k인 게 아닌가. 일곱 살 아이가 학교 친구에게 받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선물이라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가 싶기도 했고, 다음 달인 그 친구 생일 선물은 우린 뭘 준비해야 하나 걱정도 되고,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 가족은 지금 남미에 살고 있다. 작년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이곳에 왔다. 많은 국민들이 살기 위해 조국을 등지고 떠난 가난하고 힘든 나라이지만, 이곳에도 부자들은 있다. 아니, 생각보다 잘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한 부자들이기도 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국제학교이다 보니, 아이 친구들 대부분이 그런 상류층 자녀들이다. 평범한 나로선 한국에서는 만날 일도, 만날 수도 없는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이 아이 친구 부모들인 것이다. 학교 행사나 아이들 생일파티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나와는 참 다른 그들의 눈높이나 생활 방식에 여러 번 놀라곤 했는데 이번 아이 생일 선물을 받고 또 한 번 놀랐다.

어찌 됐건 선물은 이미 받았으니, 팔찌를 넣어 두려고 보석함을 꺼냈다. 평소 액세서리를 하지 않는 편이라 오랜만에 열어본 나의 보석함은 참 단출했다. 결혼반지와 목걸이 하나가 전부였다. 내가 가진 유일한 그 목걸이마저 줄이 다 엉켜있었고, 목걸이 줄은 또 어찌나 얇은지 풀리지도 않았다. 목걸이 줄을 풀어보려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일곱 살 된 아이도 돌반지들에, 돌 때 받은 묵직한 팔찌와 목걸이가 있고, 심지어 이제 친구한테까지 팔찌를 받아오는데, 마흔 살 나는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는 남편을 앉혀놓고, 연애 6년, 결혼 10년 기간 동안 어떻게 나한테 결혼반지 말고 뭐 하나 사준게 없느냐 따져 묻기 시작했다. 다른 예물 없이 반지 하나씩 맞추고 결혼한 게 후회된다, 아이 출산 선물도 하나 안 해주고 뭐 했냐, 그동안 사실 나조차 생각도 안 해본 것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갑자기 말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애초에 내가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니 선물할 생각도 못한 게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내가 직접 살 수도 있었고, 내가 원한다면 기꺼이 사라고 했을 남편인데, 나의 또 다른 자아는 엄한 사람을 탓했다. 화려한 아이 친구 엄마에 비해 내가 유독 초라하게 느껴졌던 날이라 그랬던 것 같다.  

부자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직은 어리지만 앞으로 자라며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지만 그들과 우리가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아이가 갑작스레 걱정이 된다. 성인인 나도 이렇게 알게 모르게 마음에 동요가 있는데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더 심할까 싶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경우들을 보기도 했다. 보통 주재원 자녀들은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국제학교에 오는 현지인 아이들은 주로 상류층 자녀들이고 그 아이들의 소비 수준은 상상초월이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곤 한다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한 개도국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사실 벌써 아이는 친구집을 다녀온 뒤 '에바는 부자다.'라고 일기에 썼다. 친구집에 있는 것들 - 에어바운스 놀이공간, 짐(Gym), 장난감이 가득한 놀이방, 침실 등 - 에 대해 일기를 썼고, 친구 침실 그림을 그려놓았다. 예쁜 침실과 침대를 가진 친구가 부럽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해주어야 할까 고민이 됐다.
세상엔 원래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는 거라며 너 정도면 운이 좋은 거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하다가 그냥 우리도 언젠가 예쁜 집을 지어서 살자고, 그때 아주 예쁜 방을 꾸며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무래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부자 친구들의 세계와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아이가 중심을 잘 잡고 현명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나부터 공부하고 생각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이제 나이가 드니 조금은 화려한 장신구로 나를 꾸며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목걸이는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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