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한국이라면 초등 1학년인 딸아이는 주 2회 수영을 빼곤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2시 하교 후엔 자유롭다. 아이가 매일 너무 노는 것 같아 마음을 먹고 학습 계획을 짜보았다. 국어, 영어, 수학은 기본이니 문제집 한 두장씩 해야겠고, 한국 학교를 안 다니니 사회 분야 책도 읽히고 이야기 나눠야 하며, 문해력을 위해 한자도 이제는 조금씩 시켜야 할 것 같다. 요즘엔 과학이 중요하니 과학 실험도 해서 호기심을 키워주고, 미술 놀이랑 클래식 음악 감상, 종이접기도 필요하다. 체력은 필수니 매일 줄넘기도 좀 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넣으며 계획을 짜고 보니 하루에 최소 2~3개씩은 해야 한다. 빡빡해 보이지만 다른 아이들도 다 하는 정도 아닐까? 그래, 이제 제대로 해보자 싶어 일정표를 짜고 자료들도 준비했다.
그런데 시작하기로 한 첫날부터 난감하다. 아이한테 이것들을 들이밀 틈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방과 후 아이의 일과는 이랬다. 1. 씻고 간식 먹으며 책 읽기 시작. 책 읽는 아이에게 공부하자고 문제집 들이미는 엄마가 될 수는 없으니 우선 기다렸다. 2. 엄마랑 노래. 간식 먹는 아이 기다리다 심심해서 피아노를 쳤다. 아이가 피아노 치는 내 무릎에 앉는다. 우린 같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 몇 곡을 불렀다. 나도 신나서 그냥 같이 놀았다. 3. 우쿨렐레 연습. 갑자기 기타가 배우고 싶다더니 내 우쿨렐레를 꺼내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교재를 펴놓고 도레미파솔라시도 한 옥타브를 익히더니 악보를 연주한다. 기특해서 방해할 수가 없어서 또 기다렸다. 4. 미니책 만들기 시작. 주말에 전시회에서 본 미니책을 따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생각이 난 모양이다. 종이를 달라더니 미니책을 두 권 만든다. 한 권은 엄마에게 선물로 주기까지 한다. 혼자 잘 노는 아이를 어떻게 방해하나 싶어서 기다렸다. 5.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6. 저녁 식사 후엔 수학 문제집 2장을 풀고, 일기를 쓴다. 이건 늘 해오던 저녁 루틴이다. 유일한 학습 시간. 7. 티슈케이스로 뭔가 만들기를 한다. 자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틈새 시간도 또 이렇게 활용한다. 9. 한글책을 읽고 잔다. 하루 끝.
아이가 너무 놀기만 하며 자유롭게 보낸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정리해 보니 아이는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계획한 활동은 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 집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 보는 것에 따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혼자 켜서 보는 건 안 되지만 아이가 물어보면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다면 시간을 정하고 허락해 주는 편이다. 그럼에도 평소 아이는 TV 볼 생각을 못 할 정도로 뭔가를 하고 노느라 바빠 평일엔 거의 TV도 보지 않으니 진짜 늘 뭔가를 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꽉 찬 하루를 보내는 아이한테 어떻게 다른 활동을 하자고 하겠는가. 책 읽는 아이에게 그만 읽고 국어 문제집을 풀자고 해야 할까? 스스로 만들기 하는 아이에게 그만하고 엄마가 준비한 미술 놀이를 하자고 해야 할까? 클래식 음악 듣고 작곡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혼자 노래를 만들고 있는 아이를 방해해야 할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엄마표 학습과 활동이 아이 주도 활동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꼭 필요하고 지금 익혀야 할 것들은 있기에 고민이 된다. 아이에게 자유 시간을 주지만 최소한의 학습 시간은 확보해야 할 텐데.. 뭔가에 몰입하고 있는 아이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기에 참 난감하다. 우선 저녁 식사 후 수학 문제집을 풀고 일기를 쓰는 시간에 학습을 한 두 가지 추가해 보면 어떨까 싶다. 학습 계획은확 다이어트를 해서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말이다. 이렇게 또 계획을 수정해보고 있자니 마음대로 놀 수 있는 날이 아이 인생에서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싶어 그냥 조금만 더 계속 놀게 두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