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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Oct 22. 2024

마음의 풍경화 3

암탉의 경고


​꼬꼬 꼬꼬꼬 꼬르르륵

산에서 닭울음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바라보니 암탉 한 마리가 이리저리 쏘다니고 있었다. 주인이 잡으려다 못 잡아서 누구라도 잡으면 가져가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닭장에서 뛰쳐나와 야생이 되어버린 암탉의 경계심은 극도로 민감했다. 들깻잎이 자라서 숲을 이룬 들깨 밭 사이로 먹이를 찾아 숨어 다니다가 동물의 움직임이나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날개를 푸더덕 쳐가며 사라지곤 했다.

닭 잡는데 이골이 난 촌부들조차 금세라도 잡아먹고 싶어 입 안 가득 침이 고여도 워낙 날쌔게 달아나는 닭을 잡지 못해 늦가을 들깨를 베고 나면 보자고 벼르고 있었다. 그땐 먹이로 유인해서 고기 잡는 그물을 던져서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그 쫄깃한 육질에 술 한 잔 할 생각으로 다들 몰래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닭은 여전히 아무에게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남은 음식물을 밭고랑에 부어 놓고 저만치 숨어서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려와 먹이를 먹고 후다닥 산으로 달아났다. 저 겁 많은 닭은 도대체 어디서 밤을 지새울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암탉이 안쓰럽고 걱정이 되었다.

들깻잎이 누렇게 뜨고 들깨가 익어가던 어느 날 아침, 밭을 지나 산길을 오르려다가 눈앞에 흩어져있는 갈색 깃털들을 보았다. 흠칫 놀라 발밑을 보니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닭의 몸체가 산산조각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마치 내 혈육이 사고를 당한 것 같은 충격과 두려움에 싸여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뛰쳐 내려왔다.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매일까? 처음 매를 보았을 때의 섬뜩함을 잊을 수 없다. 사람이 볼 수 있는 시력의 8배나 좋다는, ​닭도 뱀도 놀라운 시속으로 낚아채간다는 매는 검은 색이거나 쥐색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 높이 날아가는 매의 색깔을 보고나서 깜짝 놀랐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따사로운 겨울빛을 띠고 있었다. 누런 황갈색과 붉으레한 적갈색들이 어우러진 마른 낙엽과 같이 부드러운 빛을 가지다니 얼마나 섬뜩한가. 눈에 띄지 않는 보호색을 하고 바로 옆에서 생명을 위협해도, 채 인식하기도 전에 먹혀버리는 동물들에게 매는 두려움 그 이상일 것이다.
아니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검은 들고양이의 급습이었을까? 들고양이가 소리 없이 다가가 담장에 앉은 새를 노리고 있다가 어느새 휘익 날아서 순식간에 낚아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세상은 얼마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인간도 예외가 아니건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비록 선량하게 살고 있다고 믿어도, 우리 안엔 얼마나 많은 악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가. 종종 그것은 따스한 선의로 포장되어 분별심을 잃게하곤 한다. 매순간  마음을 잘 지켜내지 못하면 위험은 시시각각 다가와 우리의 몸을 갉아 먹는다.

들깨를 베어낸 휑한 벌판에서는 이따금 암탉의 울음소리가 구슬피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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