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deal Toward Media Scape
이 글은 디자이너인 나 개인이 도시와 매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소개하는 글이다. 동시에 이 관점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구 및 디자인 활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글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나는 도시를, 매체가 연속되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즉 도시를 이루는 모든 것들: 가로수나 건물, 사이니지, 광고사진과 영상 등이 한 데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소통체계로 이해한다. 본문에서 나는 이것을 “매체경관”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들을 도시에서의 생존을 위해 매체경관을 탐색하는 자들로 제시하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민의 의식이 매체를 통해 어디론가 향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생존을 위한 의식의 모험을 일컬어 “의식의 여정”이라 이른다.
바로 이어서는 “하이퍼미디어”와 매체경관의 결합이 시사하는 바를 제시하였다. 이 글에서 하이퍼미디어는 스마트폰과 같이 개인과 매체의 초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상위매체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향후 연구의 지향점이 드러난다. “하이퍼미디어가 결합된 도시의 매체경관은 어떤 형식이 될것이며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나는 이 연구를 이어나갈 방향성의 단초를 글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하였다. 그것은 매체경관을 탐구하는 도시민 스스로에게 향하는 “자의식”이다. 나는 이 글에서 개인의 자의식이 현대인의 실존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을 주장한다. 때문에 하이퍼미디어의 매체경관을 그려내는 일은 도시의 매체와 개인의 자의식이 맺는 관계를 면밀히 추적하는 것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하이퍼미디어의 매체경관이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 발전된 첨단 기술과의 결합, 그리고 이를 갈무리해내는 미적 감흥을 통해서 성취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이 글에서는 결론 지을 수 없는 미지이며, 앞으로 풀어 나갈 과제로 남아있다.
인간의 의식이 어딘가로 향함은 무엇을 위함인가? 나는 이것을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 생각한다. 태곳적 원시 인간의 “멀리 내다봄”은 그들의 생존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시대 인간의 의식이 어딘가로 향함은 무엇을 위함인가? 이 역시 나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 생각한다. 다만 그 의식의 지향은 원시인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현시대 인류가 몸담은 도시의 경관이 원시인류가 속해있던 자연의 경관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현 인류의 의식은 더 멀고 복잡한 차원으로 향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도시의 다양한 매체들이다.
모든 매체는 중간자로서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기능을 지닌다. 송신자의 메시지를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중간자로서의 매체란 커뮤니케이션학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인간 의식의 차원에서 매체란, 개인의 의식을 어딘가로 향하도록 이끄는 것으로 이해해야한다. 예를 들어, 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은 둥근 지구의 모습을 전달하는 전달자인 동시에, 인간의 의식으로 하여금 지구의 실존을 조망하도록 이끄는 견인자이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매체들이 결합된 도시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우리 인간들의 의식은 하루에도 수천번씩 매체들이 이끄는 그 어딘가를 향해 날아간다. 우리의 의식은 쉴 틈없이 움직이며 도시 곳곳을 탐험한다. 이것은 끊임없는 의식의 여정이다.
나는 원시인류가 생활했던 자연의 경관과 대비되는 현 인류의 도시 경관을 이르러 “*매체경관(Media-Scape)”이라 칭하였다. 도시를 이루는 거의 모든 것들은 넓은 의미의 매체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로수는 비록 인공적인 것일지라도, 매체로서 역할 하며 도시민들의 의식을 실제 자연의 나무로 향하도록 손짓한다. 잘 보존된 옛 건물들은 이들의 의식을 역사적 사건들, 혹은 건물을 잘 보존하도록 이끄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안내할 수도 있다. 또한 도시의 다양한 사이니지들은 복잡하게 약속된 사회적 체계의 곳곳으로, 무수한 사진과 영상들은 역동적 문화의 차원 어딘가로 의식을 날려 보낸다. 이것은 도시 속 현생인류의 생존, 즉 생물학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을 아우르는 현대인의 생존이 매체를 통해 움직이는 의식의 향방에 기대어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민들은 의식의 여정속에서 이동과 머뭄, 노동과 유희에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을 채집하여 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이다.
*환경이라는 단어 대신 경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것이 인간 의식의 지향성을 보다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도래할 *하이퍼미디어의 매체경관은 우리의 의식에게 새로운 모험을 제시할 것이다. 이 초연결 매체의 도래는 산업혁명 이후 철도와 항공기의 등장이 초래한 이동성의 폭발적인 증대에 비할 만한 영향력을 지닌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그들의 의식을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지하철 군중들의 모습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르게, 또 더 멀리 나아가는 우리의 의식을 발견한다. 때문에 하이퍼미디어와 도시환경의 결합은 개인의 의식에 가히 제약없는 자유를 부여하며, 전례없이 역동하는 매체경관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퍼미디어의 매체경관이 실현되는 것은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하이퍼미디어가 도시 환경과 결합되기 위한 물리적 조건들, 도시의 인간들과 매체간의 이상적인 상호작용의 형식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결합이 야기할 경제적,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 등이 모두 미지에 놓여있다. 지금 우리는 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목전에 둔 콜럼버스와도 같다. 이 미지의 땅을 향해 모험을 나설 순간이다.
*여기서 하이퍼미디어란 멀티미디어가 비선형적으로 결합하고 개인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매체를 선택적으로 연결하고 활용할 수 있는 매체 간의 관계 혹은 중심 매체를 이르는 용어로 정의된다. 이는 테드 넬슨이 창안한 하이퍼미디어 개념을 현대적 관점 안으로 끌어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그 내부의 매체 간 연결구조는 하이퍼미디어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이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내면으로 향하는 궁극적 의식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외향적 의식을 종합하고 갈무리하는 한 개인의 자의식이다. 한 개인의 자의식은 모든 외부를 향한 의식에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이며, 개인 스스로를 감시하고 규율하는 감시자이다. 예컨대, 한 개인에게 새로 출시된 아이폰을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아이폰을 사용하는 스스로를 조망하는 그의 자의식이다. 그리고 하이퍼미디어는 초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인 동시에, 개인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구분 짓는 매체이다. 연결은 집단의 한 구성원이 아닌 독립된 개인으로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이퍼미디어는 개인의 자의식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비로소 하이퍼미디어로 인해 유목주의적 개인들은 매체경관의 모든 파편적 경험을 쌓아가는 가상의 장소를 그들의 내면에 확립할 수 있다. 바로 이처럼 반복되는 의식의 여정과 개인 내면으로의 끊임없는 회귀가 매체경관의 도시를 살아가는 주체의 실존형식이다.
매체경관을 탐험하는 인간 의식의 여정이라는 나의 관점은 여러 선구자의 이론에 크게 기대어 있다. 현 인류가 몸담은 환경을 매체의 집합체로, 즉 매체경관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매체 이면으로 향하는 의식이라는 개념은 의식의 지향성에 관한 후설의 이론과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 후설의 이론은 우리의 의식이 항상 무엇인가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으며, 바르트의 신화론은 의식이 대상 이면의 이차적 기호를 기민하게 포착한다는 사실을 짚어주었다. 사실 내가 “매체”라 언급한 것들은 바르트의 “신화”들이 인간의 의식을 이끌어가는 측면을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더불어, 인류를 도시환경을 살아가는 원시인으로 바라보는 진화심리학의 관점과 인간을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로 바라보는 빅터 프랭클의 관점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을 탐구해 나가는 인류라는 개념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더해진 A.N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한 개인의 주관이 개인 스스로 그리고 세계 실존의 조건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로부터 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디즘이 파괴적 해체로 흘러가지 않고, 주체의 창조적 실존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개인주의적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푸코가 예견한 권력의 의한 감시는 개인이 스스로를 규율하는 자기 감시의 형식을 빌려 이루어진다.
마셜 맥루언과 빌렘 플루서의 매체철학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이론들은 인간이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과 그 의미를 일깨워 주었는데, 이를 인간 의식과 실존적 차원에서 바라본 역이 바로 의식이 매체를 경유해 여정을 떠난다는 관계를 정립하는 배경이 되었다. 개중에서도, 빌렘플루서의 코무니콜로기 이론은 매체가 더욱 개인화된 주체들의 연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하였기에, 하이퍼미디어의 초연결성과 개인의 격리에 대한 관점을 정립할 수 있었다. 물론 하이퍼미디어가 이루는 가상의 경관들에 대한 실존적 지위는 두말할 것 없이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기대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환경의 물리적 조건들을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고민은 한 명의 디자이너이자 연구자인 나 개인의 경험과 관심에서 비롯한다. 전시디자인 회사에서의 실무는 통제된 전시 환경 내에서 어떻게 관람객의 의식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 고민할 기회였다. 전시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매체는 관람객의 의식을 이끌어가며 특정한 서사를 전달한다. 마찬가지로 도시와 결합하는 다양한 매체는 도시민들의 의식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하이퍼미디어와 결합된 도시는 이러한 여정을 더욱 부추길 것이며, 앞서 약술한 바와 같이 이것은 도시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 때문에 우리에게, 하이퍼미디어와 결합하는 도시의 형식을 그려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며 또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