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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Jun 10. 2020

해외편) 1-3. 멀티플레이어의 역설

1장. 다시는 주재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주거가 안정되지도 회사의 지원이 좋지도 않은 악조건이었지만 해야 할 일은 점점 많아졌다. 총 다섯 명의 멤버들 중 외국어가 원활한 사람이 나뿐이어서 난 거의 모든 업무에 통역으로 관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비좁은 임대 사무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해외 법인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야 할 사무실의 조건은 일반 회사와 다른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무실을 마련한다고 생각하면 교통 편의성과 회사의 이미지를 생각해 오피스 상권이나 경제 중심지에 있는 번듯한 빌딩에 깔끔한 사무실을 생각하겠지만 자기 집도 마련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사무실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운영 특성상 사무실과 제조 교육과 개발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가 함께 있어야 했다. 쉽게 말하자면 빵을 판매하는 매장에 영업 관리를 위한 사무실과 제빵을 위한 주방이 함께 있는 것처럼 관리와 제조가 한 공간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예산이 충분하다면 사무실은 오피스 지역에 구하고 트레이닝 센터는 임차료가 좀 더 싸면서 넓게 쓸 수 있는 곳으로 구하는 게 좋겠지만 예산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금 회사 규모와 인원에 비춰봤을 때 관리도 힘들고 여러모로 낭비였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이 두 가지 기능을 함께 갖춘 조건의 사무실을 찾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싱가포르는 철저한 계획도시 국가이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 지역이 철저하게 나누어져 있다. 트레이닝 센터는 빵을 굽고 요리를 할 수 있는 설비인 배수와 후드 시설이 필수인데 이 시설은 공단 지역에서만 허가를 낼 수 있고 일반 오피스 지역은 설치가 불가능했다. 그럼 우리가 공단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 보통 공단 지역은 시내 및 거주 지역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아 직원들의 출퇴근과 사무실에 찾아올 손님들에게 적지 않은 불편을 줄 수 있다. 싱가포르가 국토가 작아 출퇴근이 멀어봐야 그리고 불편해봐야 서울만 하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런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글로벌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서울 외곽에서 서울 시내로의 출퇴근은 당연히 지옥과 같을 만큼 고되고 힘들다. 난 이것을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출퇴근으로 몸소 체험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울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이 체감하는 불편함이고 싱가포르에서는 그들이 체감하는 그들만의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내가 좋으니까, 내가 편하니까 타인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사고방식은 타인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든다.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기준이 다 다르다는 것을 몸 소 깨닫게 해 준 일화가 있다. 내가 베이징에서 길을 가다가 중국인 어르신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는데


“여기로 가려면 얼마나 가야 해요?”


“아, 여기? 이쪽으로 쭉 가면 돼. 얼마 안 멀어! 그냥 걸어가도 되는 거리야!”


걸어서 45분 걸렸다. 한 여름에 땡볕에서 걷다가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큰 땅덩어리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이 정도는 먼 거리라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싱가포르는 작지만 작은 만큼 우리에게 가까운 거리도 그들에게는 먼 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사무실을 찾는 일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부동산 에이전시를 세 군데나 써서 우여곡절 끝에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정말 사무실 분위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창고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성을 높여줄 수 있는 지하철 역과 버스 정거장이 가까이에 있었고 제조 설비가 가능한 싱가포르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컨디션이었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계약했다.


사무실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물론 인테리어 예산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저렴한 것들로 사무실을 채워나갔다. 비싼 사무용 책상과 의자를 살 수가 없어서 마치 독서실 책상 같은 칸막이 책상을 샀는데 근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고3들이 빽빽이 모여 앉아있는 것 같았다. 트레이닝 센터에는 제빵용 오븐, 반죽 기계, 커피 머신과 같은 제조 기계와 주방용 조리 도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하나씩 사는 것도 내가 통역을 맡아야 했다. 업체를 검색하고 찾아가서 주문 수량과 가격을 흥정하는 것부터 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통화조차도 내가 대신해줘야 했다. 그리고 내 팀의 직원뿐만 아니라 제조 팀의 직원 채용 면접도 내가 통역으로 들어가야 했고 앞으로 매장을 운영하게 되면 필요해질 밀가루, 설탕, 계란과 같은 원재료 업체 검색과 계약도 모두 나를 거쳐야 했다.


명목상으로는 통역을 위해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좋게 말하면 멀티플레이어고 나쁘게 말하면 일복 터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내 일은 내 일대로 해야 하고 남의 업무까지 도와야 하는 상황이 쉽사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나중에는 점차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난 제조 기사들과 함께 동행하며 싱가포르 최대 밀가루 공장을 가진 회사부터 작은 포크 판매 회사까지 다녔고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영역의 많은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통역을 하면서 자연스레 이쪽 분야의 몰랐던 중국어 단어들도 습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내 명함첩에는 수많은 싱가포르의 공급상들의 명함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난 이 명함들을 보면서 왠지 많은 인맥이 쌓인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존재의 필요성이 조직 내에서 더 커졌다는 것이 가장 뿌듯했다. 여기저기 다 필요한 사람이 되면서 조직의 핵심 부품처럼 여겨지기 시작했고 다른 팀 사람들과의 사이도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멀티플레이어가 된다는 것은 내 일이 아닌 일도 해야 하는 어쩌면 불공평하게 들릴 수 있는 일임과 동시에 내 일이 아닌 일을 할 수 있어서 키플레이어가 되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다 갖춰진 조직에서는 남의 일까지 떠맡는 미련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자본이 적고 법인 세팅부터 시작해야 하는 신설 조직에서는 모든 시작점과 히스토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재원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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