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원의 기억

by 봄날의 옥토

드디어 삼천 원을 다 모았다.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삼천 원을 모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동전이 가득 든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신이 나서 마구 달려갔다.

집 근처에 있는 유일한 아파트, 그 아파트 단지 안에는 큰 마트가 있었다.
마트 안엔 생필품 가게, 꽃집, 작은 옷가게, 문구점 등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중 문구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작년부터 눈여겨보았던 '미미인형'을 사기 위해서다.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백설공주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금발의 긴 머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밤에 자려고 누워도 눈에 아른거릴 정도였다.

부모님을 졸라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린 딸아이에게 인형 하나 못 사줄 형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경제권을 갖고 있어서 어릴 때 나는, 여자아이들이 흔히 갖고 노는 소꿉놀이나 인형 같은 장난감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무척이나 무서운 분이었고, 굉장한 구두쇠였기 때문이다.
말을 붙이기도 두려웠다.

나는 일찍 철이 든 편이었다.
웬만해선 떼를 쓰지 않지만, 그 인형만큼은 꼭 갖고 싶어서 울고 떼도 써봤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몇 달에 걸쳐 어렵게 모은 돈.
그 돈을 쥐고 인형을 사러 가는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드디어 문구점에 들어서서 점원 아주머니께 돈을 건넸고, 나는 작은 인형 상자를 받아 들었다.
투명한 포장 너머로 보이는 인형은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품에 꼭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 인형은 내가 어린 시절 가졌던 유일한 인형이었다.


어른이 되었고, 직장을 갖게 되어 내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자 나는 어린 시절의 결핍을 나도 모르게 하나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인형이었다.
바비 인형, 미미 인형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고, 옷과 소품도 함께 사 모았다.
결혼한 뒤에도 내 공간 한편엔 인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집에 오셨다가 그 인형들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니?" 하셨을 때, 나는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예쁘지?"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며칠 뒤,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울고 계셨다.
"네가 어릴 때, 장난감을 못 사준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릴 때 못 가져서 지금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예뻐서 모으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를 안심시킨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왜 갖고 놀지도 않을 인형을 계속 사 모으고 있었는지를.

엄마의 말이 맞았다.

내 어린 시절의 결핍은 바로 '사랑'이었다.

'표현하는 사랑', 그것이 간절히 필요했다.

왜냐하면,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자식이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하게 키웠을 수도 있다.

엄마 아빠가 서로 감정다툼하기 바빠, 어린 자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부모뿐이다.

부모는 아이의 전부다.


그런 작고 여린 존재에게 부모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는 마음이 충만하고, 그 충만함만으로도 단단히 자라날 수 있다.

단단히 여물지 못한 채 자란 나에게 세상은 꽤 힘든 곳이었다.


이제 나는 나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무엇을 지적하거나 가르치기 전에, "너는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먼저 알려주고 싶다.

진심으로, 그렇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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