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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Jun 04. 2021

시간의 달달한 조각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6월 3일


 전날 과제를 어떻게든 끝내보겠다고 카페인을 오랜만에 마구 들이킨 탓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직전에 갑자기 애플워치의 스트랩이나 에어팟의 케이스, 반바지 등등 잡다한 것들을 사고싶어져 구경하기 시작한 탓이었을까. 오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본인의 하루를 시작하러 집을 떠날 때까지 눈이 말똥했다.


 겨우 잠들기 시작할 때, 오늘 꼭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알람을 맞춰뒀지만 빗소리에 알람이 묻혔고 그대로 푹 잠에 빠졌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엄마가 같이 머리를 자르러 가자 전화한 벨소리도 못 들을 만큼 푹. 그러니 눈떴을 때 밖이 어두운 건 당연했다.


 평소보다 이른 저녁을 먹기 전, 어제 엄마가 사다준 초코 도넛을 조각조각 내 먹었다.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했고, 자기 전 주문한 스트랩 중 하나가 품절이라고 강제 취소당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건 덤이고. 그래도 기분이 생각보단 괜찮았다. 조각난 달콤함을 삼키면서 그냥 오늘도 밤을 새워서 과제를 하자, 마음먹었다. 먹는 속도가 느려 한참을 그렇게 삼켰다.


 엄마표 저녁은 오늘도 역시 맛있었고, 그 후에 또 집어먹은 수박과 초코 도넛은 달았다. 야식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좋은 소식도 들었다. 그니까 계획이 조각난다고 해서 그 조각이 반드시 날카롭거나 쓰지도 않다.


 언제나 대략적으로 몇 시까진 뭘 대략 끝내야지 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다.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매번 다르다. 오늘은 다디단 편.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마음 같기도 하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남은 시간의 조각을 잘 담아 먹는 것. 그 맛이 초코 도넛처럼 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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