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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게워내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기

아픔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부대끼는 속

by 딜피

스스로를 병원에 데려가서 약을 먹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스스로를 우울증 환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는 호르몬의 장난일 뿐,

이를 조절하는 약을 먹으면

단숨에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 울렁거리는 증상이 있었고

이 때문에 쉽게 지쳐 또 집 밖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음 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는 속이 너무 괴로웠다.

울렁거리는 증상과 부대끼는 속, 어지럼증이 동반된 멀미 같았다.

그렇다고 감정이 빠르게 조절되지도 않았다.

여전히 무기력했고, 약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자 회의감이 일었다.


수면 또한 문제가 있었기에 수면유도제도 처방을 받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괴롭혀서 잠에 들지 못해서.


그럴 수 밖에,

아무도 나의 일을 인정해주지 않고,

나에게 너무나도 잔인하게 굴었던 회사가 그대로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좀 어려워도 헤쳐나갈 용기를 찾는 '나'는 없으니까.


그냥 그대로의 상황에서

그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내가

그대로 있으니까 달라질 건 없었다.


차라리 일이라도 바빴으면 달랐을까.

전 팀에서는 악다구니를 쓰며 일을 했다.

보상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인정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매일 타 팀과 싸워가며 바쁘게 일하고,

욕을 하면서도 바쁜 나를 은근히 좋아했던 것 같다.

남들은 1년도 못버티는 팀에서 5년을 버텼으니.


그리고 팀을 옮겼는데 너무 좋은 팀장을 만났다.

함께 일하는 팀장님은

항상 재미있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정말로 함께 좋은 곳에 놀러가기도 하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일을 하게 됐다.

그럼에도 회사 일은 굴러갔다.


그걸 깨닫고

“아 나 좀 더 자유롭게 일상을 챙기면서 일하자”라는

결론이 났으면 참 좋았겠지만,


타고난 성정이 그렇지 못하다.

과거를 곱씹는 저주 같은 기제가 발동하여

“아 그럼 나 그동안 왜 그렇게 일했던거지?

안 그래도 됐던거잖아,

안그래도 세상 안망했던 거잖아”

라는 결론이 나버렸던 것.


스스로가 무척 안쓰러워졌고

지난 세월이 억울해서,

근데 또 어찌저찌 일상을 살다보니

그 깨달음에 대한 감정이 뒤늦게서야 알게되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 증상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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