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졸업을 앞둔 솔직한 심정
2년 이상 이어져온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됐다. 답답했던 마스크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반갑긴 하나 뒤숭숭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우리가 돌아갈 일상이란 게 과연 그렇게 이상적인 세상이었나 하는 삐딱한 마음이 솟구친다. 어떤 면에서는 ‘적당한 거리두기’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계속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으나 코로나라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도 사람과 동물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무너지면서 생긴 것이 아니겠나.
일상 회복이 반갑지 않은 가장 큰 이유라면 ‘정상 근무’일 테다. 1년 반 이상 재택근무를 했다. 만원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고 불필요한 대면 미팅과 회의를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집밥이 성가시고, 이따금 직장 동료와의 만남과 식사 등이 그립긴 하지만 재택근무의 편의가 그 모든 걸 넘어선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직원들에게 ‘사무실 복귀’를 명령하자 퇴사자가 속출하고, 유연한 근무를 보장하는 직장이 인기란다. 그들이나 나나 배부른 고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내는 ‘출근은 30분 늦게, 퇴근은 30분 일찍’ 시대가 종지부를 찍었다. 대중교통 혼잡을 피하기 위한 대처였는데 저렇게 일하고도 업무에 지장이 없었다면 조금 더 유연하게 일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가장 붐비는 시간에 지옥철을 타는 아내가 안타까운 남편 입장일 뿐 회사의 관점을 다를 테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공식적으로 5월부터 재택 종료를 선언했다. ‘팀별 재량 재택근무’라는 조건을 남겨뒀다. 출장과 외근이 많은 우리 팀의 특성상 어느 정도 과도기를 가질 것으로 본다. 과도기가 좀 길길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적응된 상태에서 벗어나길 힘들어 해도 새로운 현실에 또 금방 적응하게 되겠지.
이참에 유럽형 노동 문화가 도입됐으면 하는 허튼 생각도 해봤다. 주 35~40시간 체제 말이다. 코로나 확산 전 네덜란드를 가봤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가열하게 일하고 금~일요일을 쉬는 주 4일 근무가 일상이었다. 그래서 목요일 밤을 화끈하게 즐기는 ‘불목’ 문화가 있더라. 너무 헐렁하게 사는 것 아닌가 싶지만 여가시간이 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히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국가나 기업 입장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얻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을 테다. 여러 제도가 뒷받침돼야 겠지만 최소한 이런 방향성만이라도 우리 사회가 공유했으면 한다.
지난 2년간 자영업자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방역의 고삐를 강하게 조였던 시기에는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집합 금지를 내렸는데 이때 이태원, 홍대 등 번화가는 유령도시처럼 썰렁했다. 한데 이렇게 살풍경한 도시의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서울이 다른 도시처럼 보였다. 오후 6시만 넘으면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는 유럽의 어느 골목 같았다. 노동자는 일찍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도시는 밤이 되면 네온사인이 꺼지고 어둠으로 차분해지는 모습. 너 사대주의자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적어도 이런 식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해서라면. 방역지침이 해제되기 무섭게 식당, 카페, 술집, 헬스장, 목욕탕이 자정 너머까지 영업을 이어가는 모습을 무작정 반가워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부산 출장을 다녀왔다. 평일 아침인데도 김포공항은 북적였고,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김해공항에 착륙하고 비행기가 게이트에 닿자마자 선착순 이벤트라도 있는 것처럼 승객들이 앞다퉈 뛰쳐나갔다. 뒤쪽 좌석 사람들이 더 다급했다. 문이 안 열렸는데도 복도에 사람들이 엉겨서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현기증이 났다. 한참 앉아 있었더니 옆자리 커플이 눈치를 줬다. "왜 이렇게 굼떠?" 이런 눈빛.
비행기에서 앞 좌석 승객부터 차례대로 내리는 건 전 세계 공통 매너다. 아니 문명인이라면 견지해야 할 상식이다. 지난 2년간 정부 지침에 따라 우리 국민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지켜야 할 매너, 유지해야 할 타인과의 거리가 가볍게 무시당한 장면을 보니 안타까웠다. 사실 비행기 착륙 후 뛰쳐나가는 문화는 한국인이 유별난 측면이 있다. 미국에서 이렇게 한 번 해보시라. 미개인 취급당한다. 또 사대주의자라 해도 할 말 없다. 적어도 미국인은 비행기에서 차례대로 내리기 매너는 금메달감이다.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험상 궂은 아재도 자기 차례가 돼야 슬슬 일어나서 내린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안착할 줄 알았다. 다른 사람과 몸을 접촉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고, 거리에서 침을 뱉지 않고, 비행기에서 차례대로 내리고, 지하철에서는 조용히 통화하는 것 같은 상식 말이다. 한데 방역 해제와 함께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문화도 내팽개쳐진 것 같다.
이런 문제는 진짜 심각한 게 아닌지 모른다. 일상이 회복되면 다시 옛날처럼 수많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면서 탄소 배출이 늘어날 테다. 휴지기를 가졌던 세계적인 휴양지는 다시 몰려든 인파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나도 자주 비행기를 타고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서 지구에 해를 가할 것이 뻔하다. 이 정도로 강력한 전염병이 전 지구를 덮었는데 이렇게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아니 옛날로 돌아가고 있으니 어쩌면 인간만큼 답이 없는 존재도 없는 것 같다. 코로나 졸업을 앞두고 마음 한편이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