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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15. 2022

2만5000번 하늘을 날면 어떤 기분일까

문경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했다

하늘을 날고 왔다. 문경에서. 비행기나 헬리콥터 같은 동력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는 , 바로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했다. 굳이 체험이라고   전문 어쩌다   맛보기로 즐긴 여행객이었다는 , 전문강사가 조종하는 기구에 얹혀 있었다는  강조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비행이었다. 2년 전에도 문경에서 비행 체험을 했다. 물론 취재를 위해서. 몇 해 전 문경과 이웃한 상주에서도 패러글라이딩 도전에 나섰다가 바람이 너무 약해서 포기했던 터라 첫 경험은 퍽 짜릿했다. 9월 초, 1000m 상공에서 바라본 풍광은 그림보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멋졌다. 높고 푸른 하늘에 입체감 있는 구름이 퐁퐁 떠 있었고, 들녘은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백두대간 산세가 큼직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까지 더해져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2년만에 문경을 또 찾은 건 올해 들어 계속 만들고 있는 영상 콘텐츠 때문이었다. 매달 다른 아웃도어 레저를 체험하는 걸 고프로로 촬영해 만들고 있다. 내가 손 들어서 기획한 아이템인데 매달 뭘 해야 할지 찾는 것도, 적절한 장소를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다가 문경을 갔다.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은 패러글라이딩에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비행 전의 설렘과 떨림은 2년 전과 달리 거의 없었다. 강사와 함께 한 몸이 돼서 10여 미터를 달린 뒤 날아올랐다. 몸이 붕 뜨는 순간만큼은 쾌감이 느껴졌다. 활공장 높이가 600m 정도 되는데 베테랑 강사가 고도를 높여 금세 해발 1000m까지 올라갔다. 풍경이 주는 감동이 퍽 크진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갱년기인가, 싶었는데 강사님 말씀. “바람과 고도 때문에 자연스레 눈물이 나는 겁니다.” 여기서 미래의 체험객을 위한 팁 하나. 비행할 때는 웬만하면 안경이든 선글라스든 쓰는 게 좋겠다. 그래야 눈도 안 부시고 덜 시리다. 나도 안경잡이인데 하늘에서 벗겨질까 봐 걱정해서 안 썼다. 그러나 그 정도로 격렬하게 비행하진 않는다.

체험 비행은 문경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시간이 비슷하다. 10여분 날다가 착륙한다. 근데 이날은 영상 촬영 때문에 훨씬 비행시간이 길었다. 30분은 하늘 위에 떠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을 정지 비행했는데 그때 기분이 남달랐다. 저 멀리 먹잇감을 노리며 숨을 고르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된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먹잇감을 찾은 건 아니고, 강사와 문경 맛집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비행을 몇 년째 하신 건지, 하루에 몇 번 정도 하시는지 등을 물었다. 취미로 시작해서 20여 년 경력을 자랑한다는 그는 주말엔 하루 열다섯 번씩 비행을 한단다. 이 정도면 비둘기나 까치보다 더 많이 날아다니시는 게 아닐지. 대회에 출전하면 100km 가까이 비행하기도 한단다. 이쯤 되면 철새와 친구 하셔야 하는 건 아닌지.


슬슬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췄다. 한데 난데없이 강사님이 물었다. “놀이기구 좋아하세요?” “아뇨. 끔찍이 싫어하는데요.”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한 번 희생하시죠? 재미난 장면도 좀 있어야죠.” “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곡예비행이 시작됐다. 윙 오버, 스파이럴… 이런 기술을 시연했는데 청룡열차 뺨칠 만큼 어질어질했다. 구토가 기도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져 “그만! 제발 그만!!” 소리쳤다. 다행히 하늘에서 게워내는 불상사는 잃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착륙했고, 멀미기가 가실 때까지 30분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정말, 오로지 독자를 위한 장렬한 희생이었다. 전문용어로 먹고사니즘. 그러니 남들 평생 한 번 해보기 힘든 걸 체험했다고 부러워하실 일이 아니다.


고생 고생해서 촬영한 걸 편집해서 기사로 만들고 회사 유튜브에도 영상을 올렸다. 제목은 낚시성으로 아이유를 내세웠다. 2020년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한 아이유가 바로 여기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반응은 별로였다. 기사도 유튜브 영상도 조회 수가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마쳤기에 만족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랑할 만한 경험 정도는 된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10년 전 사진. 바짝 쫀 표정.. 안쓰럽다.

작업을 다 마치고 나니 문득 10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체험한 적이 있다. 경비행기를 타고 해발 4000m 상공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다가 낙하산을 펼치고 유유히 착륙했었다. 패러글라이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강의 스릴과 전율을 느꼈다. 그때 재미난 걸 구경했다. 다이빙 업체 사무실에 강사들의 프로필이 걸려 있었는데 이름, 국적, 밑에 다이빙 횟수가 적혀 있었다. 젊은 한국인 강사도 있었는데 다이빙 횟수가 1000번에 달했다. 알고 보니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왔다가 스카이다이빙에 푹 빠져 강사가 됐다고 한다. 어떤 강사는 무려 2만 5000번 뛴 강사도 있었다. 하늘을 날면서 느낀 감격보다 이들의 이력이 더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쯤 되면 거의 인간새, 새인간이라고 할 만하지 않나.


다시 생각이 장거리 비행을 하는 철새로 이어진다. (의식의 흐름 기법인가.) 겨울마다 서해에는 수천 km를 비행하는 도요새, 물떼새들이 찾아온다. 체구가 크지도 않은데 대륙을 넘나드는 그들에겐 대체 어떤 힘이 있는 걸까. 몇 해 전에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무려 1만 2000km를 열흘에 걸쳐 논스톱 비행한 도요새가 관측됐다. 도요새의 비행 요령은 인간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람에 몸을 맡기는 거다. 본능에 따라 적절한 비행 높이, 방향, 또 계절 등을 안다는 건데 인간이 과학과 문명으로 이뤄낸 것보다 저 작은 몸 안에 더 위대한 뭔가가 있다는 사실이 신비하고 또 신기하다. 그러니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나 완전히 새됐다고. 아니면 새X가리라고. 하루에 열다섯 번 정도 비행을 하거나 3000번 정도 스카이다이빙을 한 뒤에야 새됐다는 말을 한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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