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그리고 확진
마침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국인 절반 가까이 걸린 병을 용케도 피해 다녔다. 슈퍼 항체 보유자여서 끝까지 코로나 게임에서 살아남거나 면역력이 좋아서 이미 무증상으로 스쳐갔거나. 둘 중 하나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미크론인지 그놈의 변이인 BA.5에 걸린 건지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훨씬 아팠다. 일주일을 끙끙 앓다가 이제야 뭐라도 끄적일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어디서 역병이 옮은 걸까. 정확히 알 순 없다. 그러나 감염 위험이 높았던 장소는 있다. 8월 5~6일 이틀에 걸쳐 강원도 화천 토마토축제를 취재했다. 7일까지 사흘간 이어진 축제에 10만 명이 왔었더니 어지간히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 나도 끼어 있었던 거다. 코로나 사태 이후 2년 이상 중단됐던 전국 축제가 올해 6월 서서히 재개됐다. 팀장은 3년만에 돌아온 여름축제의 분위기를 현장에서 중계하자고 결정했다. 그래서 주요 축제 3개를 기자가 돌아가며 취재했다. 내가 맡은 게 화천 토마토축제였다. 다른 기자들이 취재한 보령머드축제, 장흥물축제에 비하면 명성도 약하고 규모도 작은 축제여서 큰 부담 없이 현장 취재에 나섰다.
화천. 몇 번 가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동네다. 주민(2만4000명)보다 군인(2만7000명)이 많이 사는 휴전선 접경지라는 이미지는 확실히 강하다. 아니나 다를까. 화천은 축제도 군부대와 함께한다. 축제 이름에 아예 ‘빅토리부대와 함께하는’이라고 내건다. 8월 5일 축제 첫째날 분위기도 그랬다. 군부대 위문행사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내면 문화마을의 작은 무대에는 군복을 입은 장정들이 랩을 하고 있었고, 군 장비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공간도 있었다. 생활체육공원에서는 아예 군부대가 주축이 된 공연행사가 열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야한 옷차림의 DJ와 여성 댄스그룹이 무대에 나섰고 장병들은 짐승처럼 소리치며 환호했다. 화천에 있는 모든 장병이 체육공원에 쏟아져 나온 것 같았고, 군인 가족과 뒷짐 지고 구경하는 주민들도 꽤 많아 보였다. 과연 군부대가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동네다운 풍경이었다.
알고 보니 올해 말 화천에 소재한 이기자부대(27사단)가 해체된단다. 인구 감소, 그로 인한 병력 감소 때문이다. 20여년 전, 춘천 102보충대에 입소했을 때 가장 가기 싫었던 부대가 바로 이기자부대였다. 이름도, 한글로 새겨진 부대 마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화천이란 지역이 끔찍이 싫었다. 철원, 양구와 함께 화천이란 이름에서 어쩐지 사지(死地) 같은 느낌이 풍겼다.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이기도 했다. 다행히 강원도 고성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고 나름 힘들었지만 설악산과 동해를 바라보며 덜 답답한 2년을 보낼 수 있었다. 나에겐 피하고 싶던 동네였던 화천에서 이기자부대의 존재는 퍽 소중했나 보다. 그래서 연세 지긋한 어른들은 이기자부대의 해체 소식을 안타까워했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축제기간이어서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군청의 도움으로 면 중심가에 있는 모텔을 예약했다. 이름은 토마토모텔. 상큼한 이름과 달리 담배 냄새가 절어 있는 낡은 여관 느낌의 숙소였다. 이런 퀴퀴한 방에서 자면 대개 숙면을 못한다. 이튿날 일찍 깼다. 달리기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느 지방 소읍이든 하천을 낀 경우가 많은데 화천 사내면도 산책로를 갖춘 하천이 있는 걸 봐 뒀다. 출장지에서 와서 달리는 건 처음이다. 종일 취재를 해야 하고 컨디션이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던 터라 조금만 뛰기로 했다. 사창천을 끼고 한참 달리다가 조금 더 큰 지촌천변을 달렸다. 어째 천 이름도 좀 살벌한 느낌이다. 집 근처에서는 늘 자동차 소음을 들으며 언덕을 달렸는데, 자동차도 사람도 없고 시원한 물소리 들으며 달리니 무척 상쾌했다. 이대로 10km 이상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딱 5km에서 만족했다. 이 아침 덕에 화천에 대한 좋은 이미지 하나를 갖게 됐다. 달리기 좋은 산골 동네.
축제 하이라이트는 주말 이틀간 열리는 ‘황금반지를 찾아라’다. 토마토 풀장에 순금을 뿌려두고 찾는 행사다. 이틀에 걸쳐 네 번 진행하는데 30돈에 달하는 순금 반지 40개가 주인을 기다린다. 첫 회차부터 풀장 옆에 서서 촬영했다. 정원 400명이 일제히 풀장으로 뛰어들었다. “찾았다!”를 를 외치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났다. 사회자는 댄스음악을 틀고 분위기를 북돋았다. 금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토마토풀장에서 뒹구는 순간 자체를 즐겼다. 참고로 네 번의 황금반지 찾기 행사에는 토마토 45톤을 투입했다. 먹거리로 장난친다는 삐딱한 시선도 있는데, 화천군이 상품성이 떨어지는 파지 토마토를 전량 수매해 쓰는 거란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두번째 황금반지 찾기 행사가 열렸다. 화천군에서는 이번 회차가 훨씬 사진이 잘 나올 거라 했다. 외국인이 많이 참여하기 때문이란다. 화천군은 여러 채널로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이 축제를 홍보했다. 행사 시간이 다가오니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이 풀장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시작, 신호가 울렸고 또 400명이 풀장으로 뛰어들었다. 외국인 대부분은 금 찾기에 관심이 없었다. 토마토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춤추고 노느라 여념 없었다. 마침 소나기가 퍼부어 더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최대한 생생한 사진을 건져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 외국인 참가자는 좋은 피사체였다. 한국인보다 표정과 동작이 크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마스크를 안 쓰고 있고, 초상권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도 좋은 점이었다. 외국인을 중심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 위험이 여전한데도 이런 축제장에 가는 사람을 무지몽매하다고 힐난하고 축제 주최자가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현장에 와보니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그러니까 죽지 않고 병들지 않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은 놀아야 하고 자유를 누려야 하는 존재다. 비록 어느 정도의 위험이 따르고 대가를 치르게 될지언정. 축제 참가자에게 ‘코로나 안 무서워요?’라고 물어보는 게 의미 없는 이유다.
방역 정책이 의미 없다거나 개인의 자유가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식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누구도 역병에 걸리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병에 대한 공포 못지않게 즐기고 싶은 욕구가 크며, 그 욕구란 걸 오랫동안 억누르니 더 크게 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요새 체감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이런 류의 축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밀집한 장소에서 뒤엉켜 노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축제도 한 발 떨어진 자리서 구경꾼 입장으로 취재했다. 어, 이거 좀 위험해 보이는데, 하며.
축제장에서 몇 명이나 확진자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토마토풀장에 몸을 담그지도 않았고 내내 마스크도 잘 쓰고 있던 내가 감염됐다. 억울한 생각이 들진 않는다. 국민 절반이 걸린 병이 이제야 내 몸에 옮았을 뿐이니까. 처음엔 그냥 몸살인 줄 알았다. 불볕더위에 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다가 소낙비에 홀딱 젖었다가 다시 에어컨 센 기자실에서 덜덜 떨었다가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살면서 한 번도 안 하던 출장지에서의 아침 러닝까지 했으니 몸살을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했던 셈이었다. 그러나 그냥 몸살이 아니었고, 몸살과 함께 코로나 병균도 내 몸에 침투했다. 축제 현장에서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여행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 뭔가 충실히 한 일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휴가 갔다가 걸린 것보다는 나으니까.
일주일을 호되게 앓았다. 39.5도까지 찍었던 체온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코막힘, 기침, 가래도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다만 졸음은 어떻게 해결이 안 된다. 하루 종일 잘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미각이 심각하게 둔화됐다. 맵고 짜고 시고 단맛은 느껴지는데 그 외의 음식 고유한 맛들이 안 느껴진다. 그 탓에 화천에서 챙겨 온 고급 흑토마토의 맛이 하나도 안 느껴진다. 토마토마을을 취재하고 토마토모텔에서 자고 토마토풀장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토마토 맛을 느낄 수 없다니. 이건 좀 억울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