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결맘 Dec 04. 2023

5 저절로 되어지는 삶 feat. 장욱진 화백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화가 5명을 꼽으라면 나는 아마 장욱진 화백의 이름을 5번 외치리라. 어떤 아티스트의 작품을 바라보면 텅 빈 관념이 먼저 다가오거나,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가슴이 아파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장욱진의 작품은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웠을 때 나는 오래된 레이온 원피스 냄새처럼 나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그의 그림에는 해와 달이 함께 있고, 까치와 나무가 있고, 집 안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모든 것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한다.


장욱진 <나무> 1986



지난 주말 아들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했다. 아들은 그림을 바라보기 보다는 옆에 그림 설명을 더 열심히 읽는 텍스트 베이스의 인간형이다. 하지만 이제 11살 형님이라 그런지 엄마가 그림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기특했다. 양주에 있는 장욱진 미술관에 종종 들러 보았던 작품들이 많았지만, 서울에서 손쉽게 그의 대표작을 만나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그의 작품을 연대별∙주제별로 묶은 큐레이션 역시 흥미로웠는데, 특히 그가 어떤 마음일 때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는지 언급한 글귀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튀어나온다. 마음속으로부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이 많다. 기쁨, 슬픔, 욕심, 집념들이 엉겨서 열병처럼 끓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 간다. 다 지워 내고 나면 조그만 마음만 남는다. 어린이의 그것처럼 조그만…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돼야 붓을 든다.”

- 장욱진, 경향화랑, <주간경향>, 1979.10.7.


그렇지! 그림은 그려지는 게 아니라 툭툭 튀어나오는 거지! 그림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웃음도 그렇다. 우리는 ‘내’가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는 내 존재의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의 행동 패턴은 단지 5%만 의식에 의해 통제되고 95%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하버드대 경영대학원 Gerald Zaltman 교수). 장욱진 화백은 의식 활동을 조용히 잠재우고 무의식의 추동을 에너지 삼아 작품 활동을 해왔고, 신비롭게도 그의 마음 작용은 2023년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5%의 의식과 95%의 무의식이 대결을 벌이는 삶은 힘겹다. 저절로 되어지는 것에 나의 맡기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삶의 방식, 장욱진 선생님께 또 다시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4 잠들기 전에, 한 번 안아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