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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맘 Dec 06. 2023

6 우리가 무의식을 들여다봐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아마 1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옆 집에 살던 부부가 장기 여행을 떠나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던 오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화분에서 자라던 오이는 그다지 튼실하지 않았는데, 베란다 대각선 끝에 있던 배관에 자신의 덩굴을 위태롭게 걸쳐 놓고 있었다.

오이야, 미안해


‘여기 말고 저기에 덩굴을 걸치면 더 안정적일 것 같은데…’


나는 오이의 덩굴을 떼어서 더 가까운 빨랫줄로 위치를 옮겨 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오이 덩굴은 빨랫줄을 움켜쥘 기색도 없이 점점 시들어만 갔다. 나는 덜컥 겁이 나면서 오이에게(그리고 옆집 부부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괜히 내가 간섭해서 살아내려 발버둥 치는 오이의 노력이 오히려 좌절된 것 아닌가.


요즘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 오이를 가끔 떠올린다. 의식(나의 짧은 판단)이 무의식(오이의 생명력)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뿐이다. 앞서 장욱진 화백 관련 글에 적었듯 인간의 행동 패턴은 5%만 의식에 의해 통제되고 95%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하버드대 경영대학원 Gerald Zaltman 교수). 우리가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최대 10초 전에 이미 뇌(무의식)는 결정을 마친 이후라는 뇌과학 연구 결과도 다수 존재한다. 의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역동하고 있는 무의식을 잘 들여다보고, 그것을 믿고 지켜보는 일 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의식을 내려놓고 무의식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삶에 두려움을 가진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류처럼 갑자기 윈시인이 내 안에서 뛰어나올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 나의 무의식은 둘이 아닌 하나다. 당신은 이미 무의식의 작용 그 자체다. 의식의 작용은 그만큼 미미하다. 이미 생동하고 있는 나의 전체와 싸우느냐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의식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일상의 틈틈이 무의식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이미 저절로 그렇게 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무의식 작용은 이미 일어나고 있고, 우리의 순간순간을 이끌고 있다.


둘째, 무의식을 통제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삶의 방식을 획득하면, 우리는 이미 되어지고 있는 것과 싸우며 낭비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선채로 집채만 한 파도를 맞는 것, 파도 위에 나를 뉘인 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정도의 차이겠다. 후자의 방식을 채택하면 자연히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고,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셋째, 무의식적 마음 작용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면, 우리는 마음의 고통을 시간의 흐름에 실어서 흘려보낼 수 있다.


넷째, 무의식은 창조성의 원천이다. 마법사의 모자처럼, 우리는 그 안에서 토끼나 나올지 장미꽃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Elizabeth Gilbert)와 장욱진 선생처럼 이것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면 우리는 창조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다섯째, 자신의 무의식 작용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타인도 그렇게 대할 수 있게 된다. “아 저 사람의 무의식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구나.” 안다면 내 마음 안의 갈등이 줄어들게 되고, 삶이 훨씬 평화로워진다. 빈 배가 와서 부딪혔을 때 당신이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처럼(장자),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부딪힘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저절로 되어지는 생명의 힘을 믿고 나를 온전히 맡겨보자.

우리가 세계를 믿으면, 믿을 만한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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