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이 독이 되는 나이, 40대
'소심함 + 성실함 = 호구 팀장'
이것은 내 전 직장의 마무리를 정리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공식 중 하나이자, 주된 직장에서의 퇴직을 결심하고 나를 '베테랑 신입'의 길로 이끈 좌표 같은 것이다.
성실함, 책임감, 겸손함, 배려...
이 단어들은 첫 회사의 입사 전날 차려진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던 저녁 밥상에서, 또는 떨리지만 설레는 첫 회사 출근날 아침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시며 자랑스러워하시던 내 부모님께서 해주실 법한 꼭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 아니던가. 분명 긍정을 뜻하는 그룹에 속하는 단어들이며, 40대 후반인 내게는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후배를 묘사하는 키워드이다.
내가 그랬다.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고, 주어진 일에는 상사가 시키지 않아도 책임감을 갖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몰입했으며, 내가 한 공로를 알아달라고 내세우지도 않았다. 대신 함께 일한 동료의 공을 사람들에게 칭찬했고, 그들의 힘듦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들이 싫어할 일은 미루지 않고 내가 하려 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기준에서 나의 그런 행동들이 비록 미흡했을지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런 특성들은 사회생활 약 10년 남짓까지 내 이력서에서 나의 강점으로 묘사되었고, 나 스스로도 뿌듯해했던 나를 대표하는 특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나마 10여 년간 그것을 강점이라 내가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참 운이 좋아서였다.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경영진들과 일할 기회들이 직장생활의 시작과 동시에 주어졌고 그들은 나의 그런 특성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에게 그들은 따뜻한 격려, 평균보다 훨씬 높은 연봉 인상률, 좋은 기회, 빠른 승진으로 보상해 주었다. 그 덕에 나는 더욱 그것을 최고의 미덕이라 확신하며, 고집스럽게 고수하려 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렇지 않은 이들을 한심해하거나 경멸했다.
나의 이런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무언가 회사가 버겁게 느껴지고 나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처음 팀장이 되고 몇 년 후였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장점들은 내게 더 이상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벽이 되고 있었지만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었다. 아니 애써 무시하며, 그저 계속 그렇게 성실하게, 조용히, 나아가기만 했다. 아직도 너무 부족해서 이리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라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말이다.
그렇게 또 10여년의 직장생활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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