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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쌤 May 30. 2020

21) 비새는 아파트

관리인이 주고 간 양동이와 천, 출처:수쌤


4층 아파트의 4층에 살던 우리 아파트 침실 벽이 어느 날부터 이상해 보였다. 


벽이 축축해지면서 페인트 안쪽으로 물이 살짝 고여 작은 물주머니 같은 게 몇 개 생겼다. 


아파트 상주 관리인을 불러서 확인시켰는데 별다른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아직 3월 이곳은 겨울인데다, 비도 내리고, 눈도 오고 하는 시기였다. 


드디어 빗물이 고인 그 주머니들이 터지면서 벽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관리인은 양동이와 천 몇 조각을 갖다 주면서 회사에 직접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이메일을 보내도 회사는 이렇다 할 대답을 주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는 퇴근하고 와보니 바닥에 빗물이 흥건해서 가족앨범 윗부분과 침대 밑 box spring이 반절이나 비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천정에선 비가 똑똑 떨어져 도저히 그 방에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월세, 전기세, 인터넷, 일 년 치 집보험 하면 족히 1500불 이상을 월세로 내는 아파트였고, 계약 때 회사에서 준 서류에는 입주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는데 너무나 화가 났다.


이때부터 나와 아파트 회사 간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회사 담당자에게 이런 상태로 살 수 없으니, 1년 계약이 끝나기 전이지만 이사를 나가게 해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이메일을 계속 보내도 담당자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같은 설명을 다시 하게 하더니, 나의 보험회사를 통해서 청구하라고 했다.


보험회사는 나의 잘못으로 인한 청구가 아니므로 아파트 회사와 해결을 해야 하고, Tenacy board에 문의해서 적정한 도움을 받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곳은 세입자의 권익을 위해서 일하는 단체로 아파트 회사나 집주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듣기로는 이런 경우 다른 방(아파트)을 제공하거나 호텔이라도 제공해야 한다고 하던데, 담당자는 지금 현재 빈 아파트가 없다는 게 답이었다. 


나는 일단 젖어버린 box spring 값을 변상할 것이며, 빈 아파트를 빨리 제공하고, 물리적 피해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으로 렌트비 면제나 할인을 요구했다.     


곰팡이 냄새나는 우리 집에 와서 여러 번 같이 물을 퍼 준 건물 관리인이 

“이건 너무 심하다. 사무실에 있는 애들은 이런 현실을 잘 몰라. 내가 전화해서 뭐라도 좀 하라고 다그칠게.”

라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페인트가 여러겹 벗겨지고 악취도 나기 시작했다. 출처:수쌤



관리인의 보고를 받은 담당자는 박스 스프링 값은 물어주고, 한 달 후 다른 호수로 이사 갈 수 있게 해주겠으며, 이사비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요구한 처음 비가 샌 날부터 이사 가기 직전까지의 날까지의 렌트비 할인은 거절했다.     


한 지인이 캐나다인들이 차별(discrimination)이란 단어를 무서워한다며 써보라고 해서 

"내가 캐나다인이어도 같은 대처를 했을까? 나 차별하는 거니?"

하는 질문에도 반응이 없었다. 


한국에선 작은 손해도 참지 못하던 남편이 캐나다에 와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내 몫이 되었다.     


결국 나는 Tenancy Board에 민원을 제기했다. 


세입자에게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이곳에 알리면, 주인은 대부분 세입자의 말에 더 귀 기울이거나 세입자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신청서와 함께 집의 사진과 그동안 회사와 주고받은 이메일도 첨부했다. 


여기까지 가면 일이 복잡해지니 민원 제기를 포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없더라도 공식적인 사과와 이 일이 회사 잘못임은 밝히고 싶었다.     


갈 데까지 가보자 하는 맘으로 민원은 신청했지만, hearing(청문회)를 열어서 중재인과 회사 담당자, 나 셋이서 만난다는데 미리 머리가 아팠다.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영어로 잘 변호할 수 있을지, 전문용어는 다 알아들을지 걱정이었다.


특히나 이 hearing의 날짜가 9월 신학기 중순, 하필이면 그 달부터 24개월에서 18개월로 아이들 연령이 낮아지면서, 유독 힘든 9월을 보내고 있어서 월차를 쓰기 힘들었다. 


내가 사무실로 갈 수 없다면 전화로 해야 한다. 


펑펑 울던 아이들을 재우고 겨우 얻을 나의 휴식시간에 전화로 삼자 통화를 하기로 한 상태에서 Tenancy Board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실제 심사가 들어가면, 네가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더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셋이서 통화하기 전에 서로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네가 원하는 금액을 제시하면 그쪽에서 낮출 텐데, 그것에 만족하면 그걸로 종결되고, 아니면 hearing을 해야 해. 어떻게 할까?“


유치원에서 그런 중요한 통화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커서 일단 동의하고 피해 입었던 기간의 렌트비 반절을 보상금으로 요구했다. 


예상대로 회사는 내가 원한 금액보다 조금 낮춘 금액을 제시했다.  


Tenancy Board의 중재 전에는 보상금을 주지 않겠다던 회사 담당자는 어쨌든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금을 주기로 동의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물 관리인은 자신의 회사를 상대로 돈을 받아냈다는데도, 잘했다며 같이 기뻐해 주었다.



한국에서도 비는 샐 수 있다. 


내 나라가 아닌 타국이어서 더 속상했고, 한국에선 말다툼도 피하던 내가 여기 와선 점점 쌈닭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후 회사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을 때 엄청 기뻤다.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에 걸친 아파트 회사와의 분쟁에서 내 권리를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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