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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zy Aug 18. 2022

밝은 밤 _ 최은영

책으로 생각하기

할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손녀 이름이 지연이예요, 이지연. 딸 이름은 길미선.”’



이름이 같다고 나의 이야기가 아닌데 이름을 만나니까 소름이 돋았다. 나와 엄마, 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이야기.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딸들에게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 치열했던 엄마들의 이야기에 책을 읽고 나서 한참을 먹먹하게 올라왔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하면서 할머니가 벌어온 돈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가는할아버지와 자신이 선택한 삶의 댓가를 배우자에게 씌우는 증조할아버지. 여자라는 이유로 참고 견뎌내야 했던 기간들 그래서  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과  무게들 때문이었던  같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고 자매가 없어서 그런가, 모계로 이어지는 서사를 읽다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다 못해 약간의 소외감까지 느껴진다. 나는  저런 챙김을 받지 못했는가에서 나는 그럼 괜찮은 엄마인가로 생각이 넘어가는 . 오늘도 자기의 일을  챙기지 못하는 아이가 시간을 놓쳤고, 아직은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데 맞벌이 하는 집이라 아이가 혼자 챙겨나가기는 너무 가혹한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도움을 받고 싶어도 우리집에서 ‘할머니라는 카드는 협박용으로 쓰이면서도 나에게는 유일한 카드여서 슬프다.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인내심 강한 성격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능력보다도  많이 성취할  있었으니까.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배움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것, 아무것도 꿈꿔보지 않았다는 것, 결혼으로 도피하려 했다는 것, 일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위해서 단 한 번도 노력한 적이 없었다는 것.’


#밝은밤 #최은영




학교를 대충 다니고 2년정도 일 하다 적당한 선에서   결혼으로 엄마아빠에게서 도망쳤다. 사실 내몰림이어서 별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너무 빠른 결정이었다. 결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알았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나의 말과 행동이 결국은 나에게 다시 날아올 화살이 된다는  알았으면 조금  신중했으려나. 지나간 삶의 시간이 너무 무거워서 먹먹함이 치밀어오르다가도 결국 나의 선택이고 행동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아빠나 엄마를 탓하는 마음에 변명처럼 궁시렁거렸지만 단순히 누구의 탓이나 문제로 단정 지을  없는, 사람과 사람에 얽혀있는 아주 세심하고 복잡한 문제란걸 이제 조금 알거 같지만 아직도 부모님 앞에서면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치밀어 올라 서운해 하시는 걸 알면서도 먼저 손내밀고 마음쓰고 싶지 않다. 화해   있을까? 이해 할 수 있을까?


풀어내고 싶은 마음과 무기력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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