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가꾸는 순간만은 마음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다며 멋쩍어하는, 장미 아저씨가 다짜고짜 밥 한 끼 먹자고 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하자, 날도 더운데, 생사 확인을 위해 얼굴 한번 보잔다.
그는 맥주병을 환영 깃발 삼아 흔들며 잘 지냈냐는 인사말로 반갑게 맞았다. 먼저 도착했으니 두어 잔을 비우는 건 가게에 대한 예의라며 너스레를 떠는 걸 보니 혹시라도 하던 마음이 안심되었다. 이기자! 이런 기회를 자주 얻자는 나의 건배사에 분위기가 후끈 달았다. 그런데 살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 다른 수다스러움과 자신감 넘치는 퍼포먼스가 불안불안했다.
맥주 세 병, 소주 두 병이 비었을 무렵, 뜬금없이 나에게 백일해를 아느냐고 물었다. 알딸딸해진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알 뿐입니까. 저는 그 병을 앓은 사람입니다."라며 호기를 부렸다.
내 나이 아홉 살 때였다. 어느 봄날, 네 살 터울인 동생이 무던히 콧물과 재채기 증상을 보였다. 입가에 마른버짐이 핀 동생은 기침 발작을 일으키며, 구토까지 했다. 저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엄마는 백 일 동안 기침해서 백일해라고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디서 들었는지 엄마는 백일홍 나무를 삶아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동생이 약물을 먹는 광경은 사약을 받아 든 사람의 몸부림, 그 장면과 딱 들어맞았다. 냄새가 고약한 물을 먹이려는 엄마와 악다구니를 써대며 악착스레 게워내는 동생의 엎치락뒤치락은 한바탕 전쟁이었다.
동생의 기침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 무렵, 엄마는 다시 전쟁을 치러야 했다. 동생의 백일해가 나에게로 옮겨온 것이었다. 숨이 넘어갈 듯 콜록대는 통에 나는 기진맥진이었건만, 엄마는 지치지도 않았다. 나는 사육신의 자손답게 순순히 그 사약을 받아 마셨다.
나의 투병기를 듣는 내내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잔 술에 '그놈이', '그 새끼가', ' 어떻게'를 타서 마셨다. 왜 저러실까. 다그쳐 묻는 대신, 나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족 중에서 누가 코로나 합병증으로 백일해가 걸려 돌아가시기라도 한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년에 홀어머니가 돌아가셨다기에 문상을 간 기억이 났다. 부모님이 아니라면, 저렇듯 애통 절통할 사람은 그의 집사람밖에 없을 텐데. 그런데 조금 전, 그의 아내를 ‘빵좋녀’라 부르기로 했다며 낄낄댔다. 그 이유를 묻자 ‘빵을 좋아하는 여자’의 줄임말이라고 해서 배꼽 빠지도록 웃지 않았는가, 내 생각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탁.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내 나이 예순, 이 나이에 백일해 예방접종까지 해야 합니까?”
네? '생후 2개월 신생아들이 맞는 주사를 그가 왜 맞아야 할까'라는 생각 끝자락에 궁여지책으로 겨우 내뱉은 말이 '글쎄요'였다. 그는 또 나를 다그쳤다. 가슴까지 탕탕 치며 ‘이 나이에’를 반복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려면 힌트가 더 필요하다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털어놓은 사연인즉 이러했다. 한 달 전, 손자가 태어났다. 자식이라고는 딸랑 하나뿐인 아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말해 무엇하랴. 천리만리라도 버선발로 달려가려고 문을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머뭇대는 아들의 목소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락거렸다. 혹시 산모나 손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조마조마했다.
‘아버지! 아기를 만나려면 두 분이 예방접종을 하셔야 해요.’
‘코로나 예방접종 말이냐? 걱정하지 마라. 네 엄마랑 나는 6차까지 다 맞았다.’
‘그게 아니라…….’
혹시 여러분은 들어 본 적 있는지? 손자가 태어나면 조부모가 먼저 백일해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두 중늙은이는 한 푼이라도 아껴 보려고 이 병원 저 병원에 전화하기를 예닐곱 통. 물어물어 칠천 원이나 싼 병원을 찾았다. 두 명이면 일만 사천 원을 아낀 셈인지라 흡족한 표정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손자 손녀 만나러 가시나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주삿바늘을 꽂으며 의사는 마냥 즐거운 목소리였다. 그의 탄력 잃은 팔뚝에 묵직한 아픔이 전해왔지만 참을 만했다. 이 주사만 맞으면 갈 수 있는데 이 정도야.
간호사는 병원문을 나서는 그에게 친절하게 안내했다. 항체가 생겨야 하므로 손자를 보려면 이 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무슨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이건 뭐, 내 손자 영접하기가 하느님 만나기보다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구나.' 한숨 한 움큼이 저절로 나왔다.
아들이 동영상을 보냈다. 저도 죄송한 맘이 왜 들지 않았을까. 갓 태어난 아기의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는 와락 눈물이 나더란다. 친구들이 손자와 손녀 사진으로 도배질할 때, 눈 흘겼던 자신을 참회했다. 어 잠깐만. 이건 또 뭐지? 익숙한 목소리에 이어 모습까지 보였다. 그의 안사돈이었다.
'이이고! 예뻐라. 문 서방을 꼭 빼닮았네. 호호호'
그의 눈에서 불이 번쩍 일었다. '이놈이, 이 새끼가, 어떻게.' 이번에는 이 세 마디를 한 술잔에 꾹꾹 눌러 담더니 벌컥벌컥 단숨에 마셔 버렸다.
“선생님의 안사돈은 이 주일 전에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겠지요.”
나로서는 짐짓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건만 그게 그의 분노를 더 폭발시켰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어떻게, 어떻게 우리는 안되고……. 안사돈은 되느냐 말이야. 그리고 출산한 며느리에게 축하금으로 수백 수천만을 안기는 이 못된 문화는……."
그는 불쑥 '내가 왜~이~럴까, 장밋빛 장~미빛.'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술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번에는 손님 없는 옆자리에 대고 고함까지 쳤다.
"옆집이 그러니 나도 해야 한다는 식의, 우리 집사람을 비롯한 시어머니들의 행동은 옳지 않아. 세상이 어찌 되려고…….”
불콰해진 낯빛으로 울분 반, 탄식 반을 토해낸 그는 핸드폰을 슬며시 꺼내더니 내 쪽으로 밀었다. 그의 아들이 보낸 동영상이었다. 어느새 그의 입꼬리는 귀에 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