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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Aug 12. 2023

프로이트가 타노스에게 말했다. “내가 네 애비다”

알고리즘영단어:eros, thanatos, amor,morph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두 가지 중요한 추동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생에 대한 충동이고, 또 하나는 죽음을 향한 충동이다. 신화속의 이름을 빌려 전자는 에로스eros, 그리고 후자는 타나토스thanatos라고 불렀다. 에로스는 인간의 영속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에 대한 수식어로 영원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 붙는것은 당연해 보인다. 사랑으로 인간은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후손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심지어 죽음도 부정할 수 있다. 라틴어로 아모르amor는 죽음을 부정한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 a 와 죽음을 의미하는 mor가 합쳐진 단어다. 사랑은 생명을 잉태하게 하고, 후손은 계속 이어진다. 개체의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인간이라는 계통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인류를 영원하게 한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필멸적인mortal 존재이지만, 계통으로서의 인간은 불멸immortal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타나토스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무기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이다. 타나토스는 모든 것을 죽음으로 이끈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향해 있다. 마치 존재하는 순간부터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타나토스는 종종 죽음본능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동물적인 본능instinct과는 다르다. 애초에 독일어 trieb는 영어의 drive에 해당한다. drive는 일종의 추동력, 운동하는 경향성 등의 의미가 더 강하다. 


타나토스에 포함된 타나토thanato-는 죽음을 의미한다. 인도유럽어의 뿌리로는 죽다, 사라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죽음과 관련한 여러 단어들이 타나토스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안락사euthanasia는 최근 다시 주목받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과거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만 은밀하게 행해졌지만, 이젠 어떻게 죽는가 하는 문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안락사라는 단어는 행복하다는 뜻의 접두사, eu와 죽음이라는 thanatos의 결합이다. -sia는 병이나 증상등에 붙는 접미사다. 


Eu-가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유토피아(E)Utopia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혹은 거친 말을 좀 순화해서 좋은말로 바꾸는 것은 완곡화법euphemism이라고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좋은 유전자만을 선별해서 후손을 만들어 내는 것을 우생학eugenics이라고 한다. 좋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이름에도 사용된다. 유진Eugene, 유도라Eudora, 유니스Eunice등에도 좋다는 뜻의 Eu-가 포함된다. 카톨릭에서 말하는 성체는 유카리스트Eucharist라고 하는데, 좋다는 뜻의 eu와 은총을 의미하는 charist로 만들어진 단어다.

Thanatology는 죽음학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죽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몇 년 전 실제로 예일 대학교 철학과에서 죽음에 대한 강의가 열리기도 했었다. 셀리 케이건Shelly Kagan이라는 철학과 교수의 죽음에 대한 공개강의는 온라인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기도 했다. 첫 강의에 교탁위에 올라가 양반다리를 하고 자신을 그냥 셀리라고 편하게 불러 달라던 모습이 기억난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는 현대의 가장 강력한 신화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시리즈를 통해 유명해진 타노스Thanos의 이름은 그의 급진적인 생각과 파괴적인 공격성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명이다. 타나토스가 죽음의 충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타노스의 이름이 왜 타노스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타노스의 생각은 19세기 영국의 멜더스를 생각나게 한다. 인구증가로 인한 자원의 고갈, 인간사이의 갈등과 전쟁으로 인해 타노스는 극적으로 인구를 감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타노스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맬더스의 생각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필사적으로 인간의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타노스의 생각은 영화속에서 화려한 스펙타클과 여섯 개의 스톤을 가지고 화려하게 이루어진다. 악당의 꿈이 실현되다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햄릿으로 대표되는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부터 <토템과 타부> 등의 저술에서 소개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양가적ambivalent 태도는 정신분석학의 가장 큰 주제가 아버지에 관한 것임을 말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타나토스라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게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타나토스에서 어벤저스의 타노스가 유래했으니, 결국 프로이트가 타노스를 등장하게 한 셈이다. 

헐리우드에서 “내가 네 아비다”I’m your father. 라는 말은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서 반복 재생산되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매우 선구적인 밈meme이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루크 스카이워커는 다스 베이더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다스 베이더는 말한다. “루크, 내가 네 애비다”Luke, I’m your father. 다스 베이더는 자신의 숙적인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였다. <토이 스토리2>에서 대마왕Zurg는 버즈에게 말한다. “내가 네 애비다.”  


타나토스는 잠의 신 힙노스Hypnos의 형제다. 둘은 모두 밤의 신 닉스Nyx와 어둠의 신 에레보스Erebus의 자식들이기도 하다. 그리스식 명칭인 힙노스Hypnos의 이름은 최면과 관련된 영어단어에 보인다. 최면술hypnotism이나, 최면의hypnotic 등의 단어에 남아 있다. 힙노스는 로마신화에서 솜누스Somnus가 된다. 솜누스의 이름 역시 잠을 의미하는 단어로 영어단어에 남아 있다. 불면증은 insomnia 라고 한다. 자면서 걸어다니는somnambulate 몽유병은 somnambulism이라고 한다. 


잠의 신 힙노스의 아들은 모피우스Morpheus다. 모피우스가 대중들에게 유명해지게 된 것은 아마도 1999년의 기념비적인 영화 <매트릭스>에서 였을 것이다. 신화속에서 모피우스가 사람들을 꿈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과 반대로, <매트릭스>에서 모피우스는 가상의 세계에 갇혀있던 네오를 실재세계로 안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모피우스는 꿈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morph-라는 말은 형태, 모양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형태론은 morphology라고 한다. 전쟁 중 부상자를 위해 사용되는 모르핀morphine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마치 모피우스가 와서 그들을 보듬어주는 것처럼 고통을 잊고 꿈을 꾸게 해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실존주의적 소설 <변신>의 영어제목은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다. 형태morph를 바꾼다meta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메타meta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뒤에 따라 붙는 명사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혹은 그것을 뛰어 넘는, 그것의 뒤에오는 등등의 의미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Physics라는 책은 물질적인 세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등 무형적인 것에 대한 책은 그 다음에 쓰여지게 되었다고 해서, 메타피직스metaphysics라고 불렸다. 메타피직스metaphysics는 보통 형이상학으로 번역한다. 형이하학적인 것은 물질적, 형이상학적인 것은 정신적인 것에 해당한다. 

카프카의 <변신>은 아주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일어나보니 자신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에겐 실존이 위협되는 절대적으로 심각한 사건이지만, 가족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자신의 방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고뇌한다. 하지만 주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벌레로 변해서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던 잠자는 어느날 들려오는 여동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정작 여동생의 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은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벌레인 주제에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실존의 부조리함은 고스란히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결국 잠자는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의 냉대와 무관심속에서 죽는다. 그가 죽고 난 후, 가족들은 좀 더 명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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